트럼프에게 ‘神의 한수’는 있을까?
트럼프에게 ‘神의 한수’는 있을까?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9.1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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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김정은을 한방에 무릎 꿇릴 ‘신의 한수’를 가지고 있을까? 워싱턴과 해외 외교안보전문가들이 대체로 고개를 가로 짓는 반면, 국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미북 협상의 전망을 처음부터 비관적으로 예측했던 미 보수주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연구소 브루스 클링너 동아시아 수석연구원은 지난 달 논평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비핵화 시한을 포기하고, 인권 유린에 대해 눈감으며, 미국의 대북제재 압력을 거둬내면서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노선을 현실적으로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이전의 실패와 다를 바 없는’ 외교적 실패의 길을 트럼프 대통령도 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 미래한국 고재영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까지도 ‘북한은 완전한 핵폐기를 수용했다’고 했지만, 정작 싱가포르 회담의 공동합의문은 이전의 6자회담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전에 밝혔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원칙은 합의문에 한 줄도 등장하지 않았고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아젠다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 군사훈련은 도발적이고 비싼 훈련’, ‘주한미군 철수 가능’, ‘최대한 압박(Maximum Pressure) 같은 말이 싫다’였다. 모두 김정은이 원하는 내용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의 원칙 CVID는 이후 PVID로 바뀌었다가 최근에는 FFID로 바뀌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와 ‘검증 가능’을 거부하며 비핵화에 대해 순차적인‘주고받고’식 이행 요구를 들고 나오자 CVID의 ‘완전한(Complete)’의 개념은 ‘영구한(Permanent)’으로 바뀌었다가, 이 개념마저 사라지고 ‘충분한(Full)’으로 바뀐 것이다. 외교적 미사여구로 ‘마사지’된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해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미 의회 상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는 ‘물타기(water downed)’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결국 미북 협상에서 주도권을 김정은이 쥐게 되었다고 해석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지난 8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북핵 외교전문가인 짐 월시는 CNN에 출현해 “전통적이지 않은 전략이었지만, 때로는 전통적이지 않은 전략이 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神의 한수, 최대압박의 재등장?

트럼프에게 神의 한수를 기대하는 이들은 대개 트럼프의 전략이 북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중국에 있다는 데 방점을 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템파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서 “미국과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언급하며 “우리는 북한과 잘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중국과 너무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전략이 사실상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카드라는 주장은 실제로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최대 기념일인 9·9절 행사 방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중국으로서는 자신의 국영기업인 공상(工商)은행들을 통해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북한과 미국법에 저촉되는 거래를 해 온 사실이 미 의회에 의해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이 중국 5개 국영은행들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의 규제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중무역 전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대북 경제금수의 마지막 카드인 ‘북한보유 달러화 자산동결’이 남아 있다. 그 효과는 2005년 9월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가 유감없이 보여줬다. 미 재무부는 9·11 테러 이후 제정된 애국법 311조를 적용해 마카오의 BDA를 ‘돈세탁 금융기관’으로 지정했다. 이 은행에 북한 통치자금 2500만 달러가 예치돼 있었고 마카오 금융당국은 대규모 자금이 일시에 인출되는 ‘뱅크런’이 발생하자 BDA 자산을 동결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 계좌도 동결됐다.

북한이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 당시 6자회담에 참석했던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금융은 피와 같고, 금융이 멎으면 심장이 멎는다”며 계좌 동결을 해지해달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북한이 2007년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담은 2·13 합의에 동의한 것도 BDA 제재 효과가 워낙 컸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재무부조차도 예상보다 훨씬 큰 효과에 놀랐다는 후문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를 타결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와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BDA 제재는 북한 정권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 사례로, 미국은 대통령의 행정명령 방식으로도 이런 제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특히 BDA 방식은 대북제재의 ‘구멍’으로 지적돼온 중국 기업·금융기관 등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장 둔화에 심각한 부실자산 문제까지 겪고 있는 중국 은행들의 줄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서 비핵화 시한과 구체적 방법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다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의 정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은 지배적이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유보하며 느슨하게 봐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미국법에 의해 철퇴를 맞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최근 우리 정부에 남북철도경협에 대해 ‘제재 위반’임을 통보한 바 있다. 그러한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당근과 채찍의 협상술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을 지렛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벗어나야 하는 프레임이다.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8월 31일 ‘트럼프가 불만을 터뜨리지만 대상을 잘못 찾았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등을 통해 주장하는 중국책임론이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전체적이고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고 고의로 흑백을 뒤바꿔 책임을 전가하려 들면서 꿍꿍이를 꾸미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북핵 협상의 해결 방안으로 ‘쌍중단’(북한 핵·미사일과 한미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동시에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손안에는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마술지팡이가 있는 게 아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과 조선(북)”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국이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단 트럼프의 ‘중국책임론’이 그만큼 중국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럽다는 이야기도 된다. 문제는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고 북핵 문제로 중국의 국익이 지속적으로 손상되는 상황에 대해 1인체제를 구축한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허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 비핵화가 늦어질수록 트럼프의 초점은 중국책임론에 맞춰진다
북한 비핵화가 늦어질수록 트럼프의 초점은 중국책임론에 맞춰진다

두 번째 神의 한수, 군사옵션?

트럼프 행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의 한수는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북한의 무성의한 핵협상과 관련해 ‘한미훈련을 재개하겠다’는 발언은 김정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민주주의수호재단 맥스웰 연구원은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포대나 미사일 전력에 변화가 없고 120만 병력의 70%가 비무장지대 인근에 배치돼 있는 등 한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미 연합군은 준비태세를 갖춰야만 하며 훈련 재개는 한국을 어떤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것이라는 한미동맹의 강력함과 결의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고도 지적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원한 이유는 이 훈련이 한미동맹의 핵심 기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며 북한의 목적은 한미동맹을 파기하는 데 있고 군사훈련을 동맹의 중추 역할로 봤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훈련은 재개돼야 한다며 이는 준비태세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동맹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북 협상이 결렬되면 핵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도 김정은에게는 자신의 정권 안위 차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은 최근 칼럼에서 ‘북·미 관계 흔들리면서 다시 내년 3월 위기설이 퍼질 것’이라는 이슈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전략은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대북정책이 크게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중간선거 다음 목표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는 것인데, 그때까진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고 북한을 더 강하고 충분히 압박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따라 북한도 핵무기를 가진 상태에서 지난해 가을보다 더 강하게 저항할 것으로 예상되며 한반도에 핵전쟁이 난다는 절체절명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측은 워싱턴 일각에서도 존재한다. 만일 미북 협상이 결렬되면 전 세계로부터 미국의 국제질서 주도권에 의문을 갖게 되며 미국으로서는 이를 허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고 미국도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핵공격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로 전 세계의 위기 상황을 분석하는 민간단체인 ICG, 즉 국제위기감시기구는 올해 국제사회에 우려되는 10대 갈등 중 한반도의 핵전쟁을 제일 중요하게 꼽았다. 보고서는 10가지 갈등 중에서 ‘북한’을 첫 번째로 꼽으며 미국의 실용적인 대북 외교 정책이 없다면 미국이 스스로 북한에 군사 행동을 취할 위험에 처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마이크 멀린 전 미 합참의장도 미국 방송사 A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핵전쟁이 가까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과 핵전쟁을 하더라도 1시간을 못 버틴다는 분석이 나온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 핵전쟁을 결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다. 결국 북핵 협상 결렬시 트럼프의 군사옵션은 북한 김정은을 굴복시키게 될 것이라는 낙관이 등장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권은 과연 미국편에 설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 정권은 과연 미국편에 설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문재인 정권은 미국편에 설 것인가

트럼프의 북핵 협상이 어떤 식으로 가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운명은 크게 변화를 맞게 된다. 만일 협상이 북한의 의도대로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은 남북연방이라는 체제 변환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북한의 의도가 베트남처럼 비핵화-개방이 아니라, 핵을 가진 베트남이 되거나 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통일전술로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남북연방, 문재인 정부의 용어로는 남북연합의 체제로 가게 될 경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역사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체제논쟁을 통한 남남갈등과 더불어 사회주의 종북노선이 국시(國是)가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북한은 남한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 통치하려 들 것이고, 남한의 좌익 정권은 레짐 체인지를 통해 30년 넘는 장기 집권을 이루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핵 협상이 결렬될 경우 대한민국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결심하게 될 경우 문재인 정권은 누구 편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이 본질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연 ‘결단의 순간’에 동맹인 미국의 편에 설 것인가. 그 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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