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보고서 분석] 김정은에게 주도권 넘겨준 트럼프
[헤리티지 보고서 분석] 김정은에게 주도권 넘겨준 트럼프
  • 브루스 클링너 동아시아 수석연구원
  • 승인 2018.09.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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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번역 / 한정석 편집위원

싱가포르 합의에 대해 비합의가 존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평양은 워싱턴이 먼저 신뢰 구축의 토대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신뢰의 토대를 추구하라는 것인가? 한국전쟁을 끝낼 평화조약, 정권에 대한 안전보장, 그리고 경제제재 철회다. 이러한 조건들이 달성되지 않는 한, 평양은 비핵화를 향한 첫 걸음인 핵프로그램의 구체적 제안마저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북한은 또 트럼프 대통령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술책을 펴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의 미북관계의 진전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평양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해 ‘싱가포르 합의 정신을 거스르며 깡패같이 CVID를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완전한 비핵화에서 한 발 물러선 트럼프는 오히려 김정은에 끌려가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사진은 6.12 싱기포르 회담/ 연합
완전한 비핵화에서 한 발 물러선 트럼프는 오히려 김정은에 끌려가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사진은 6.12 싱기포르 회담/ 연합

평양은 트럼프가 그의 참모들의 생각보다 더 적은 조건들로 북핵 합의에 이르는 것에 안달을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에 북한 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인 군비축소가 아니라,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해법과 제재 해제라는 평화적 선언에 사인한 것이라 주장한다.

비록 미국과 북한 지도자간에 최초의 역사적인 회담이 있었다고 하지만, 미북간의 공동성명은 여전히 그 어떤 새로운 지평도 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싱가포르의 합의는 2005년 6자회담의 공동성명보다 더 허약한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북 정상의 예비회담에서 ‘북한은 유엔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프로그램(CVID)을 향해 나아갔다’고 했지만, 싱가포르 코뮤니케에서는 그러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고, 트럼프-김정은 공동성명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미사일과 핵실험 중지, 생물학적 무기와 화학무기의 검증, 또는 북한인권에 관한 의제도 없었다.

반 거들충이로 설계된 싱가포르 합의는 미북 양자간에 서로 합의한 바에 충돌하는 장면들을 낳았다.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 후에 나온 성명은 비핵화에 거의 아무런 진전도 없었으며 서로 입장이 다른 것이어서 충격적이었다.

준비 안 된 협상이 불러온 북한의 오만함

북한은 일방적인 비핵화 군축 요구를 거절해 왔으며 그 대신 국제적 군비축소라는 더 광범위한 명제들을 삽입하고 싶어 했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핵클럽 멤버라고 선언한다든지, 미국을 포함한 다른 핵무장 국가들이 핵을 포기한다면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든가 하는 주장이 그것이다.

북한 정권은 비핵화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양보들을 얻어내는 것을 선호했다. 유엔 제재와 국제법 규제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마치 범죄자가 경찰관에게 은행을 털지 않는 조건으로 뭘 봐주겠냐고 묻는 것과 같다. 북한의 완강한 태도 앞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신속한 비핵화와 고강도의 제재, 그리고 관철하고자 했던 CVID와 같은 이전의 노선들을 포기했다.

브루스 클링너 동아시아 수석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동아시아 수석연구원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에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으로서는 ‘빠른’ 비핵화를 원하며 “그러한 비핵화는 시한 연장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폼페이오는 이후 “비핵화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에 비해 시간이 걸릴 것이며, 비핵화에는 시한이 없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폼페이오는 지금 “궁극적인 비핵화의 타임라인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비핵화 속도에 성급할 필요가 없다”면서 협상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와 동일시했다. 결국 북한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 셈이다.

미 행정부가 북핵에 대해 수많았던 유엔 결의로 제정된 CVID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들 역시 존재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구하고(permanent),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 sible) 비핵화(dismantlement) 노선(PVID)을 채택했다. 그리고 나서 후에 최종적이고(final) 완전하게(fully), 검증되는(verified)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FFVD 아젠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폼페이오의 최근 의회 증언에 대해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상원 의원들은 폼페이오의 새로운 용어들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희석시킨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최대한의 압박(Maximum Pressure)’을 선언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이를 이행하는 미국법을 시행하지 않았다. 예를 들 어 지난 6월 1일 북한의 김영철과 만난 후 트럼프는 평양과 ‘이야기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이유로 수 백 개에 달하는 북한 제재를 미뤘다. 트럼프는 심지어 ‘나는 최대한 압박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후 300개에 달하는 북한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유보했는데, 이는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 9년 반 동안 미국이 제재를 가한 누적된 숫자와 같다. 여기에 더해 미 재무부는 북한을 불법적으로 지원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약 60여 개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유보했다. 뿐만 아니라 백악관은 의회가 북한과 불법거래를 하는 수 십 개의 중국은행들에 대한 제재 건의에 대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해 비핵화 시한을 포기하고, 인권 유린에 대해 눈감으며, 미국의 대북 제재 압력을 거둬내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노선을 현실적으로 수용했다. 지난 6월 폼페이오 장관은 상원 외교위원회 증언에서 현재의 대북전략을 ‘인내의 외교’라고 설명했다.

정상회담 초기에 듣기 좋은 성공적 메시지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 대신 평양은 비핵화 이슈에 진실로 필요한 진전들을 유보하고 지연시키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을 구축해 왔다. 마치 마술 공연을 하는 마술사가 자신의 속임수를 위해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듯이, 김정은은 워싱턴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이나 불필요한 핵실험장 폐쇄와 같은 것을 선보였다.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결하려는 외교적 노력에는 긴 실패의 역사가 자리한다. 이 실패는 아직까지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심과 우려는 확정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협상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하며 합의에 조급해서는 안 된다.

협상은 비핵화를 향한 전진을 북한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하고 북한 정권의 안전보장을 해치는 미국의 행위를 줄이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유엔 결의를 위반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지, 미국이나 동맹국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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