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경제... 무엇이, 왜 문제인가? J노믹스의 종착역
문재인 경제... 무엇이, 왜 문제인가? J노믹스의 종착역
  •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성균관대 초빙교수
  • 승인 2018.09.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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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경제원리

비행사가 조종을 할 때는 자신의 감각을 믿으면 안 되고 계기판을 믿어야 한다. 하늘에 올라가면 전후좌우가 분간이 안 되어 우리의 감각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사막을 건널 때도 규칙이 있는데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야 된다.

경제정책을 두고 계기판이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장과 경제원리이다. 동서고금 모든 나라 모든 정부에서 시장에 순응하고 개방하면서 경제원리를 존중한 경우는 경제적 기적을 일궈 국민 모두가 그 과실을 향유했다. 따라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시장에 저항을 하거나 시장을 억누르는 경우는 시장의 보복을 받아 경제가 쇠퇴했다. 경제원리를 무시한 경제정책은 언제나 실패했다. 경제원리의 정확한 이해가 경제정책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전국 소상공인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참가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전국 소상공인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참가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다들 경제학이 어렵다고, 경제정책에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경제학은 어렵지 않으며, 경제정책에는 정답이 있다. 정책담당자들이 경제학이 가르치는 쉬운 경제원리를 모르거나 원리를 알더라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다른 가치나 목적을 위해 경제원리를 애써 외면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경제정책이 실패한다.

그 어렵다고들 생각하는 경제학이 제시하는 경제원리는 과연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경제학도들의 필독서인 사무엘슨 교수의 ‘경제학’을 능가하는 책을 집필해 달라는 출판사의 특별 요청을 받은 멘큐 하버드대 교수는 명저 ‘경제학 원론’ 제1장에서 10대 경제원리를 요약 제시하고 있다. (1)사람들은 선택에 직면하고 하나를 택하면 다른 것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2)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수반되며 세상엔 공짜가 없다. 특정 선택의 비용은 그 선택으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시장에서 갖는 값어치이다. (3)거래와 교환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 (4)사람들은 유인과 제재에 반응한다. (5)시장은 경제문제를 거의 해결한다. (6)정부는 아주 드물게 시장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 (7)한 나라 국민이 얼마나 잘 사느냐 하는 것은 그 국민이 얼마나 많은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면의 제약으로 7가지 원리만 소개했는데 너무나 상식적이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간단한 경제원리을 몰라서 못 지키거나 알더라도 다른 목적 추구를 위해 지키지 않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추구하는 정책이 실패로 귀착된다.

이해하기 어려운 국정 구상과 전략

현 정부의 각종 정책 특히 J노믹스를 이해하려면 국정과제 기본구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1)국민이 주인인 정부, (2)더불어 잘사는 경제, (3)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4)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5)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큰 범주의 구상을 밝히고 이를 뒷받침할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J노믹스 또는 ‘사람중심 경제’로 표현되는 경제정책은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표어로 놓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5가지 전략으로 (a)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b)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c)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d)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 (e)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 등이 제시되고 있다.

참으로 유려한 말들의 성찬이다. 어느 정부든 경제정책의 목적과 방향을 어디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수단을 강구하느냐 하는 것은 각 정부의 몫이다. 경제 관련 다섯 가지 전략 중 첫 세 가지 전략인 일자리경제 공정경제 민생경제는 J노믹스의 몸통으로 기본적으로 분배와 공정을 강조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전략인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은 곁다리로서 성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비어있는 상가에 붙은 임대문구. 자영업자의 폐업은 계속 늘어만 간다 / 연합
서울의 비어있는 상가에 붙은 임대문구. 자영업자의 폐업은 계속 늘어만 간다 / 연합

대선 과정에서 수많은 떼거리 전문가들이 쏟아낸 개별 정책들이 그냥 나열되어 있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경제부문 국정과제이고 J노믹스인 것 같다. 이들 국정과제와 정책의 세부적 내용이 앞서 언급한 경제원리에 부합하는지는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 경제부문 국정과제 자체를 제시된 그대로 살펴보자. 5가지 개별 전략을 세세히 살펴보면 각기 모두가 다 문제이고, 5가지 전략 간의 정합성은 찾아 볼 수 없으며, 5개 전략으로 총합적으로 ‘더불어 잘사는 경제’가 어떻게 달성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좌파 정권이기에 성장보다 분배와 공평을 강조하는 정책 정체성은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J노믹스는 좌파정부 자신들의 정체성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어설픈 구상이다.

각 개별 전략을 살펴보자. 첫 번째 전략인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는 혹평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아무리 살펴봐도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전략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면 소득주도성장이 된다는 말인가, 소득주도성장을 하면 일자리 경제가 된다는 것인가? 일자리 경제는 무엇인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경제인가? 아니면 일자리가 중심이 되는 경제인가?

두 번째 전략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경제가 무엇인지와 이를 어떻게 달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공정경제의 일반적 의미는 공정한 경제 즉 사회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대접받는 경제일 터인데 ‘활력이 넘쳐나는’ 구절이 형용하는 공정경제는 대기업의 횡포를 제한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 협력하는 경제를 의미한다. 대기업을 억눌러 경제가 활력이 넘치는가?

소득주도성장의 허와 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라는 세 번째 전략은 상대적으로 덜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 또한 민생경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물으면 답이 궁해지고 민생경제에 어떤 내용을 담아내면 서민층과 중산층을 위하게 될까 하고 물어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네 번째 전략의 경우도 지금까지의 1~3차 산업혁명 모두를 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4차 산업이란 말이 유행하니까 갖다 붙인 말이지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이뤄 내거나 선도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우리나라는 3차 산업혁명에 성공했고 이를 선도한 나라이지만 사실 당시 정부도 민간도 3차 산업혁명이란 말도 거의 없었다. 더더욱 3차 산업혁명을 위해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없고 ICT 혁명의 주체는 민간기업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이라는 다섯 번째의 전략의 경우, 창업과 혁신성장에 중소벤처가 큰 역할을 해주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중소벤처 자체가 미약한 우리 현실에서 창업과 혁신성장을 중소벤처가 주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난망이다. 창업과 혁신의 주체가 왜 꼭 중소벤처여야 하는가?
 

8월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전국 소상공인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참가들이 솥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
8월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전국 소상공인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서 참가들이 솥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

좋은 말들로 엮어는 놓았으나 내용이 없거나 분명하지 않지 않은가? 일은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소득주도성장은 오늘날 J노믹스의 핵심 정책과제로 부상했다. 문재인 정부 자체의 국정운영 구도에 따르더라도 소득주도성장은 J노믹스의 5대 전략 중의 하나에 불과한데 다른 전략들을 압도하며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전략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라는 표현에 나타나듯 당초에는 일자리 경제만 잘 구축하면 소득주도성장이 되는 구도였는데 뜬금없이 소득주도성장만이 그 자체로 부각되고 정부가 설명하고 추구하는 그 의미와 내용 그리고 추진 방법이 불분명해 정책 당국과 국민 모두 혼란에 빠져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현 정부가 내세운 J노믹스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경제로 정리된다. 우선 수단과 목표를 고려했을 때 소득주도에 내세운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분배인데 이걸 성장이라는 말에 갖다 붙인 것이 문제이다. 혁신경제가 성장인데 그 내용은 별로 없거나 그다지 강조되고 있지 않다. 내세우는 목표와 수단이 서로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법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사회적 정의라면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효율성(성장)과 형평성(분배)이라는 두 개념이다. J노믹스에서 혁신경제는 성장을 지향하고 공정경제가 분배를 지향하기에 혁신경제와 공정경제의 내용을 충실히 정책으로 담아내면 성장도 분배도 모두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 등 성장과 전혀 관계없는 것들을 소득주도라는 미명하에 ‘성장을 위한 수단’이라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어느 정책에서든 그 정책과 관련해 개념과 용어를 제대로 분명히 쓰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점에 있어서도 소득주도성장은 크게 문제가 있다. 정부도 전문가도 모두들 소득주도성장이라 무심코 내뱉고 있는데, 현 정부가 강조하는 관점에서 보면 소득주도라 하기보다는 임금주도라 하는 것이 맞다. 사실 국제노동기구(ILO)의 공식 보고서에 임금주도(wage-led)란 말이 등장하긴 한다. 경제학계에서는 투자주도성장과 수출주도성장이란 말은 잘 정립되어 있고 많이 회자되는 데 반해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은 매우 생소하다.

소득에는 임금소득(근로소득), 자산소득, 사업소득이 있는데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은 임금소득이다. 자산소득, 사업소득에 관련된 것은 없고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 성장을 꾀하자고 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로 쓰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지 않은가? 모든 학자들이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꼭 써야 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이란 말 대신 근로소득주도성장이나 임금주도성장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최저임금제와 일자리 창출의 파노라마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자. 소득주도성장을 주된 정책으로 추진한 나라가 없다. 가장 근접한 사례는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발견된다. 남미는 저소득층에게 최저임금을 올린 것이 아니고, 석유 등 자연자원을 팔아 다 나눠주는 소득주도성장을 도모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나라가 성장하기는 커녕 근본적으로 망했다. 노르웨이는 연안의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국부펀드를 만들어 GPFG라는 기관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GDP가 480조 원인데 국부기금 규모는 1190조 원으로 GDP의 2.5배에 달하는데 노르웨이는 원금과 수익을 모두 해외에서 운용한다. 인구가 540만 명에 불과하나 1인당 소득이 8만 달러에 달하는 노르웨이는 나라의 미래를 대비해 더 많은 수익창출을 위해 골몰하지, 이 기금으로 국민에게 선심을 베푸는 정책은 일체 펼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일자리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최저임금을 올려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도모하고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근로자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일자리 창출을 지상과제로 내세우는 정부가 최저임금을 어떻게 인상할 수 있는가? 그것도 군사작전 하듯 강압적으로 매년 두 자리 수의 인상률을 모든 기업체 특히 영세 자영업자에게 어떻게 강요할 수 있는가? 여유로운 삶은 높은 생산성의 결과로 얻는 높은 소득에 의해서만 뒷받침되는데 가뜩이나 생산가능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시점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최저임금의 인상은 그 인상으로 근로자의 임금소득이 증대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의 상승으로 나라 전체의 소득분배가 개선된다는 전제하에서 시행되는 정책이다. 어느 정책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고 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냉철한 머리를 사용해 모든 관련 변수와 상황을 잘 고려해 정교한 정책을 펼칠 때 원하는 목적이 달성된다.

자본주의경제체제 하에서 임금은 노동력의 공급자인 노동자와 노동력의 수요자인 사용자의 자유로운 거래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최저임금제(minimum wage legislation)는 정부에 의한 시장개입의 한 형태로 국가가 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임금의 최저한도를 설정하고, 이 최저한을 밑도는 임금수준으로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의 산업조정중재법에서 처음 시작되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세계 각국에서 정착을 보게 된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부터 시행되어 왔다.

100여 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각국의 다양한 경험에서 최저임금제의 실시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는 물론이고 실증적으로도 상당한 결론이 도출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최저임금제가 누구를 위한 제도이며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 제도인가 하는 것이다.

저소득 노동자계층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돕느냐 하는 것인데, 최저임금제의 실시가 저소득 근로자계층을 돕는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24시간 영업하던 맥도날드도 영업시간을 축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24시간 영업하던 맥도날드도 영업시간을 축소했다.

최저임금제의 효과를 구체적 사례로 살펴보자. 어떤 사회에 1만 명의 경제활동가능인구가 있는데 실업률이 10%라 9000명이 일하고 있으며 시간당 시장임금이 5000원이면 노동자의 총임금액은 4500만 원이다. 이제 정부가 최저임금을 6000원으로 고시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체의 해고가 없고 기존 취업자 모두가 그대로 일하면 실업률 10%는 그대로 유지되고, 총임금액은 5400만 원으로 증대해 대박이 난다. 문제는 임금이 올라가면 반드시 고용이 감소하는 데 있다. 시급 6000원으로 종전의 총임금액 4500만 원이 확보될 수 있는 취업자 수는 7500명이다. 즉 고용이 9000명에서 1500명이 줄어도 총임금액은 변함이 없다. 이 경우에 실업자는 2500명에 달해 실업률은 25%로 상승한다. 만약 시급이 6000원으로 오를 때 고용이 7000명으로 줄면 총임금액은 최저임금인상 전의 4500만 원에서 4200만 원으로 감소하고 실업률은 10%에서 30%로 급증한다.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 전 5000원이라도 받던 근로자 중 2000명이나 실직으로 무일푼이 된다.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듯 임금이 오르면 노동수요가 감소한다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을 정책 당국자들이 정말 모른단 말인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더 올라간 것은 해고되지 않고 시장에 남아 있는 근로자의 경우이지 해고된 근로자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 전의 시급도 못 받아 무일푼 신세가 된다는 것을 이 정부 정책 담당자는 정말 모른다는 것인가?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대체로 미숙련 저소득 근로자라는 사실도 정녕 모른다는 것인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는 집단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 근로자임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최저임금제 시행 후 고용이 얼마나 감소할지 그리고 노동소득분배율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의 임금에 대한 탄력치의 크기와 노동과 자본 간의 대체탄력치의 상대적 크기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이들 세 가지 탄력치의 크기가 얼마인지 알고 있을까. 노동과 자본의 대체탄력치가 높고 노동수요의 탄력치가 노동공급의 탄력치보다 높은 것이 현실인 우리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임금인상은 고용감소, 총임금 감소, 노동소득분배율의 감소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자명한 논리와 사실을 정부는 물론 전문 학자들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감정적 논의만 전개되고 있어 안타깝다.

실패를 태생적으로 배태한 J노믹스

일자리 창출을 정부가 한단다. 그것도 공무원을 늘리고 민간부문에는 최저임금으로 해고되는 근로자를 세금으로 막겠단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교사수를 늘리고 IT와 AI 생산성이 향상되어 훨씬 적은 공무원으로 종전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음에도 철밥통 공무원을 더 늘리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일자리 창출은 민간기업이 하는 것이다.

J노믹스는 경제원리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마련된 것 같다. 경제의 놀이터인 시장을 외면하고 정부를 앞세우니 그리고 경제원리를 지키는 것이 경제정책 성공의 필요조건인데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J노믹스의 실패는 태생적인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성장부진, 실업증대, 분배악화, 투자절벽, 혁신약화 등 우리가 관찰하는 바와 같은 사태이다.

작금의 한국 경제의 문제는 활력이 넘쳐야 할 기업이 탈진한 상태이고, 수동적 입장이어야 할 정부가 만용의 칼을 휘두르는 데서 야기되고 있다. 정부가 문제의 해결사이기는 커녕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다. 기업은 대외 경쟁과 정부의 옥죄기로 힘이 쇠진한 상태이다. 특히 최근 들어 정부의 윽박지름으로 기업가들의 가슴은 피멍이 들고 있다. ‘시장은 경제문제를 거의 해결한다’와 ‘정부는 아주 드물게 시장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라는 두 경제원리를 J노믹스는 정면으로 거슬리고 있다.

J노믹스는 ‘사람들은 선택에 직면하고 하나를 택하면 다른 것은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와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수반되며 세상엔 공짜가 없다’라는 경제원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정부는 힘이 있기에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공짜가 많다는 환상에 빠져있다. 아무리 정부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무상복지는 결코 무상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무상으로 복지에 쓰이면 교육 방위 사회간접자본 등의 용도에의 투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거래와 교환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기에’ 모든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J노믹스는 통신시장 노동시장 부동산시장 유통시장 등등 모든 시장의 가격이나 거래에 정치논리를 들이밀며 개입한다. 교환과 거래를 막는 정도가 심해 우리 경제는 자유시장경제가 아니고 사회주의 지시경제에 준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소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소득을 높일 수 있는가? J노믹스는 소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인 양 그리고 국민의 한 계층으로부터 빼앗아 다른 계층에게 주면 소득이 늘어나는 것인 양 한다. 소득은 착취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은 누군가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얻는 대가이다. 따라서 소득을 많이 얻으려면 남보다 더 질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더 많은 양의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 삼성자동차가 연간 60조 원의 이윤을 어떻게 창출하는가? 어느 회사도 소비자나 근로자를 착취한 일이 없고 두 회사 모두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그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기꺼이 가격을 지불했기 때문에 세계 유수의 기업이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는 낮은 나라에 비해 국민들이 더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소득이 높은 것이지 국가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보조해 주고 실업급여를 제공하기에 소득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짓누르고 경제원리를 무시하는 경제정책을 펼친 것은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고 역대 정부가 다 그랬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정치논리가 힘이 커짐에 따라 점차 시장이 힘을 잃고 경제원리가 뒷전에 밀리게 되었다. 그 결과는 우리 경제는 점차 활력을 잃었으며 현재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세 가지 요체(要諦)는 첫째 정책 기조를 친시장적으로 잡아야 하며, 둘째 여타의 국가정책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경제정책 내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책정해야 하며, 셋째 정책목적에 부합되는 정책수단이 적절히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는 반시장적 정책 기조 때문이었고 이명박 정부의 부진한 경제성과는 정책목표 설정의 불명확성과 혼동에 기인한 바가 크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은 위의 세 가지 요체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

정부의 실패,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

특히 J노믹스에 있어서 정책의 우선순위 책정의 모호성 문제와 정책목적과 정책수단 간의 비정합성 부조화 문제는 심각하다. 정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이 J노믹스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모두 분배를 개선하는 방책으로 제시했더라면 논란도 혼란도 훨씬 적을 뻔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54조 원이나 퍼부은 결과 치곤 너무 초라하며 일자리 창출은 커녕 있는 일자리를 없앤 주범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고민하는 그 어떤 문제도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새로운 것이 없으며 문제에 대한 답도 역사 속에 이미 나와 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부류는 현명한 사람으로 경험을 하지 않고도 아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보통 사람으로 경험을 하고나서 아는 사람이며, 세 번째 부류는 바보로 경험을 하고도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도 우리의 역대 대통령 상당수는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역사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임 정권을 부정하고 역사와 대화하지 않았기에 실패했으며 비극적 종말은 예상된 것이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을수록 폭주했고 폭주의 결과는 늘 대형사고로 끝났다.

지도자나 국민 다수가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공자도 “미래를 설계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역사는 결코 비판과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과 교훈의 대상이다. 우리는 역사 앞에 좀 더 겸허해야 하고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도자들이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나라의 번영 여부와 정책의 성공 여부는 지도자들의 인기 여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지도자들이 지나간 역사에서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얼마나 인지하고 그 교훈을 거울로 삼느냐에 달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의 실패를 막는 하나의 첩경은 노무현 정부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세계적 호황 덕분에 세계 경제는 5.1%나 성장했으나 한국 경제는 그보다 낮은 4.5% 성장에 그쳤다. 역사상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낮은 기록이 노무현 대통령 때 세워졌다. 각종 반시장적 정책들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 때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되었었다. 이에 놀라 당시 청와대는 양극화 이슈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우리 기업의 해외로의 대탈출이 일어났는데 무려 2만 3000여 개사에 달했다. 올해 세계 경제가 3.9% 성장하는 데 반해 우리 경제는 2.9%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 또한 문재인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들 때문이다.

운동경기의 심판처럼 정부는 경제활동의 심판자이며 더 나아가 경기규칙의 결정자이다. 촛불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 정치 논리로 대기업을 옥죄는 정부, 기업가를 적대시하면서 노조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심판자인가? 불공정한 규칙을 제정하고 편파적으로 심판을 보는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있는가? 공정한 경기규칙과 엄정한 심판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인다. 문재인 정부는 불확실성이 투자증대의 가장 큰 적임을 모르는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총 규모로는 15대 강국이나 1인당 소득 규모로는 세계 35위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성장이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10.5%와 8.8%%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이 1990년대에 6.2% 수준으로 하락하더니 2000~2009년 기간에는 4.7%로 하락했고 2012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2.3~3.3%로 급락해 낮은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2018년엔 세계 경제가 3.9%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나 우리 경제는 2.9%에 그칠 전망이다. 우리 경제가 5%만 성장하면 실업 양극화 복지 등 많은 당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기업 설비투자의 계속적 부진으로 성장의 기반이 통째로 내려앉고 있다. 성장을 고양시키는 방안의 요체는 국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혁파가 관건이다. 정부의 투자활성화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해외 우량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저히 사업할 풍토가 아니라며 떠나는 기업들을 붙잡아야 한다.

2000~2017년 동안에 해외로 나간 우리나라 기업 수는 6만 5782개사에 이르고 이들 기업의 해외 투자금액은 3500억 달러에 달한다. 2017년 한 해만 해도 3411개사가 해외로 나갔고 이들의 투자금액 437억 달러(약 50조 원)는 국내설비투자액 약 1/3 수준에 해당된다. 해외로 나간 이들 기업 중 10%만 돌아와도 실업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외형적 양적 투자확대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포춘(Fortunes) 500대 기업 모두가 앞 다퉈 투자하고 싶어 하는 여건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성장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어설픈 구도를 내세우기 보다는 정통 경제이론을 살펴봐야 한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옛날 방식으로 회귀하지는 것이냐?”고 항변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옛날 방식인 정통 경제이론에 따라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는 기적적인 성공을 손에 쥔 바 있다.

정치와 경제는 전혀 속성이 다르나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남북이 화해하여 평화통일을 이뤄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절제가 있어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3조와 제8조에 나오는 ‘사람중심’이라는 말이 뜬금없이 우리 경제와 연결되어 ‘사람중심 경제’가 정부의 표어로 나타나는 것은 통일을 위해서도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지도자들과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아무리 정책을 잘 못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계속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반드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19세기 말 북미의 미국과 남미의 몇 나라는 어께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선진국이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 추진된 좌파 인기영합 정책으로 남미의 옛 선진국들이 추락을 거듭해 오늘날 국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통을 겪고 있다. 새로 선출된 여당 대표는 소득 4만 달러를 이야기하나 필자는 4만 달러로의 진군이 아니라 2만 달러로의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성균관대 초빙교수
메릴랜드 경제학박사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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