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의 눈물과 정권의 ‘입맛통계’
통계청장의 눈물과 정권의 ‘입맛통계’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9.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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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지난 해 7월 임명 시 “응용계량 분야에 정통한 개혁성향의 노동경제학자”라고 치켜세웠던 황수경 통계청장이 전격 경질되면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다수 여론은 취임한 지 12개월 밖에 되지 않는 통계청장을 경질한 것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배치되는 통계를 생산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고품질의 국가통계 생산 및 서비스를 통해 신뢰받는 통계행정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며 황 청장을 임명했던 청와대가 경제 지표가 악화된 시점에서 단행한 경질 인사는 정치적 논란을 더 부추겼다.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은 황 전 청장이 경질된 후 가진 언론 인터뷰다. 지난 8월 27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그는 ‘가계동향조사 소득 통계 신뢰도 문제 때문에 경질된 것이냐’는 질문에 “저는 (경질 사유를) 모른다. 그건 (청와대) 인사권자의 생각이겠죠”라며 “어쨌든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 윗선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임식에서도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고 발언했다.

경질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 청와대의 석연찮은 통계청장 경질에 여론은 통계의 톡립성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경질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 청와대의 석연찮은 통계청장 경질에 여론은 통계의 톡립성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후임인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이 같은 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한 발언도 논란을 부채질 했다. 강 청장은 “장관님들의 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현재까지 실패로 귀결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를 통계로 뒷받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비판 중심에 섰다. 이에 여론은 “통계자료를 조작해 국민들을 속여보겠다는 것이냐”며 차갑게 반응했다. 강 청장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으로 소득 불평등 전문가다. 강 청장은 이후 통계청 중립성 논란이 일자 “특정해석을 염두에 둔 통계 생산은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다.

침대에 사람을 맞추겠다는 식의 정부

그러나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9월 5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도 “통계청이 당연히 맞는 일을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에 대한 경질 이유를 두고 일부에서 제기한 가계동향조사 표본오류와 시계열 비교방법, 통계해석과 그 범위, 통계생산 업무 소홀 등의 주장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정치적 논란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통계청은 애초 가계동향조사를 지난해까지만 작성하기로 했다가, 황 청장 취임 후 정치권 및 학계 등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올해도 계속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5500가구였던 표본 가구 수가 올해 8000가구로 늘었다. 하지만 정부 기대와 달리 최근 2분기 연속 하위 20% 계층의 소득분배지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표본 설계의 적절성을 문제 삼는 주장이 여권 등으로부터 나왔다. 통계청이 표본 가구를 늘리는 과정에서 저소득 가구를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해 최하위 소득이 대폭 줄어든 것처럼 ‘착시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황 전 청장이 물러난 것은 이로부터 사흘 뒤다. 공교롭게도 지난 1·4분기 가계동향조사 표본 문제를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던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신임 통계청장에 임명됐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증폭됐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거짓말 한다”고 썼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명재상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는 말을 남겼다. 통계조작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국정 책임자들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면 통계전문가들은 이번 통계청장 경질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좌파진영 “표본오류” 주장은 허구, 통계전문가 “정권이 독립성 흔들어”

남궁평 성균관대 명예교수(경제학부 통계학 전공)는 미래한국과 통화에서 “전임 통계청장이 눈물을 흘리며 이임사를 했는데, 그게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 교수는 “지난 번 통계청 직원이 발표하는 걸 보고 소득주도성장으로 가는 정부 관계자들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다. 통계청장이 그래도 상당히 뚝심이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결국 경질됐다”며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는 정권이 바뀌어도 통계청장이 장수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관(官) 중심을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은 통계 기구의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장 릭 타베르니에 프랑스 통계청장은 취임 이후 세 번째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6년 이상 재임하는 동안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두 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흔들림 없이 통계청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존 폴링거 통계청장이 임기 중에 총리가 바뀌었지만 거취의 변화 없이 만 4년 넘게 재임 중이다.

남 교수는 실제 경제지표와 무관한 표본 부적절성의 문제라는 여권 중심의 주장에 대해선 “표본을 무작정 늘리는 건 안 되겠지만, 통계청 표본 전문가들이 그동안 포함 안 됐던 걸 포함시켰는데 사실 그게 더 정확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의 착시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에 대한 일축이다.

남 교수는 “그동안 어느 정부든 통계학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을 홀대했다. 통계학은 모든 학문 분야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통계학 교수 등 행정능력을 겸비한 전문가가 통계청장을 맡는 것이 옳다는 게 개인적 소신”이라며 “어느 정권이든 통계가 신뢰받기 위해선 통계청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통계청장 경질 논란과 관련해 허명회 고려대 교수(고려대 정경대학 통계학과 과장, 스탠퍼드대 통계학 박사)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허 교수는 통화에서 “가계동향 조사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만든 것인데, 그 결과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이유로 인사를 경질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전문성 없는 재경부 등 외부 인사를 심기도 했지만 통계청은 이때까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통계청장을 (정치적 이유로) 흔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전임 통계청장 임기는 1년 밖에 안 됐다. 통계청장은 최소한 2년 임기는 무조건 보장돼야 한다”며 “(통계의) 편향성 여부를 떠나 질적인 것, 테크니컬 한 것은 전문가들이 따질 순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인사를 묻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입맛에 맞는 통계를 생산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굉장한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이번 논란으로 그동안 성실히 일해 온 통계청 직원들이 그렇게 쉽게 정권 입맛에 맞는 통계를 생산하리라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염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 싶진 않다”며, 통계청 독립성 문제와 관련해선 “어떤 사람들은 소속 부처를 옮긴다든지 하는 기구 개편을 대안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건 효과가 없다고 본다”며 “결국 통계청이 하는 일에 대해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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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2018-09-28 08:58:46
이젠 대 놓고 조작하겠다는 야기. 이 정부는 4.19혁명이 왜 일어 났는지 모른다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