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 “이승만의 건국 정신을 되찾아야”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 “이승만의 건국 정신을 되찾아야”
  • 김상민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9.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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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70주년 기획, 이승만을 말한다

-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승만 하면 몇 세기에 한 분 나타날까 말까 한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을 저희 건국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게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긴 해도, 또 이승만 하면 내가 마치 불효자식이 된 것 같은, 또 잘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고 기틀을 만들어 주신 그 은혜를 우리가 배은망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아주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우리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이승만 대통령만이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기여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은 아주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오랜 전제군주 정체에 종지부를 찍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을 세웠지요. 그런데 이 건국이야말로 그동안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양반과 상민이란 계급의 틀을 완전히 없애고 건국을 계기로 해서 국민 모두가, 만민이 평등하게 되는, 또 동시에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그런 나라를 만든 것인데, 이것이 제일 큰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김일성이 모택동과 스탈린과 합작해서 침략을 해왔는데, 이에 대해 참전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을 끌어들여 나라의 땅 한 평도 빼앗기지 않고 나라를 지켜낸 인물입니다. 더군다나 서방 모든 지도자 그리고 언론의 뭇매를 맞아 가면서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조약을 만들어 마치 휴전선상에 만리장성을 쌓아놓은 것처럼 되어 오늘날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다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기여한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건국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

-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애족을 점수로 평가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야 항상 100점 이상, 100점 플러스 알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현재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의 뿌리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말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하여튼 나라의 창피죠. 역대 대통령들의 책임도 크고요. 어렵지만 고쳐 나가는 노력을 계속해야죠. 저는 그것이 지금에 안 된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우리 남북이 자유통일 되는 날 화려하게 부활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일부 사학자는 1919년 4월 13일 상해임시정부의 시작이 곧 대한민국의 건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정하지도 않고 기념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건국일은 당연히 국가의 명절인 건국절로 지정하여 기념해야 되는데, 국가가 이를 시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임시정부 수립일은 존중해야지요. 그런데 그날을 대한민국 건국일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왜냐하면, 정부라는 것은 국민이 있어야 하고, 영토가 있어야 하고, 주권적 지배권이 갖춰져야 정부라 할 수 있는데, 임시정부는 그게 없었습니다. 그것을 건국일이라고 한다면 그럼 8월 15일 광복될 때까지 그 수많은 독립운동은 왜 했습니까? 나라가 있는데 왜 독립운동이 필요합니까? 그러니까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의 실정을 보면, 광복절 행사를 광복회가 주관하고 있는데, 광복회가 주관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지금까지 70년이나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의 건국 공로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 중 단 한 사람도 제 나라를 세운 생일날에 훈장과 포장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그날을 기리는 것은 물론 독립유공자들한테 훈포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국일 행사를 하면서 이제 건국 이후의 공로자들에 대한 훈포장을 나라의 생일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독립유공자 표창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공무원들도 나라의 생일에 당당히 훈포장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행사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안 회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건국 50주년 사진전을 감행하셨습니다. 또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장은 1995년부터 97년에 걸쳐서 <위대한 생애 90년 이승만>이란 책을 발간했는데요. 조선일보의 기획 사업이었나요? 아니면 개인적인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가요?

제가 1985년 건국 40주년 때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8월 15일 지나고 며칠 뒤에 이한빈 선생의 칼럼을 봤는데, 그 칼럼 내용이 대한민국이 선 지 40년이 됐는데 그날 아무 행사도 없고, 언론도 아무 언급이 없이 지나가는 이런 나라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그걸 보고 굉장히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50주년에는 뭔가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10년간 이러저러한 준비를 하고서 시작한 것이 조선일보 기획사업으로 <이승만과 나라세우기>를 건국 50주년에 맞춰서 했습니다.

그때 이한우 기자가 특별임무를 맡아 연재하도록 함으로써 <위대한 생애 90년 이승만>이라는 책이 상·하권으로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기로 건국 50주년이 되는 1998년 8월 15일에는 하루 전날 예술의 전당에서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개최해 우리들이 그동안 나라를 세우고 열심히 해서 이렇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들을 소개했고, 2000년 6월 25일에는 ‘아, 6·25’라는 전시회를 통해 6·25는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임을 강조하는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전체 전시회의 맥락은 당시에 좌파들이 “이 나라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라느니, 마치 정상국가가 아니고 장애국가인 양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그런 사회 풍조에 저항하기 위해 그것을 기획했던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말년 1960년 4·19 학생운동으로 186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고 수천 명의 학생들이 부상을 당했지요.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의 총재로서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야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죠.

당시에는 대통령 부정선거 때문에 4·19가 일어났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상대 후보는 조병옥이라는 민주당 후보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선거 직전에 갑자기 병사해서 이승만 대통령의 당선은 확정적이었습니다. 다만 자유당은 부통령 선거를 걱정했습니다. 대통령이 고령인 데다가 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시 유고가 될 경우 그를 이을 사람은 자유당 후보가 돼야 한다는 그런 논리와 집념 아래 부정선거가 획책되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4·19가 터지고 학생들이 많이 죽고 다치자 이승만 박사가 다친 학생들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 달려가 “부정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젊은이는 젊은이가 아니다”라며 젊은이를 격려했고 4·19학생운동 자체를 비난하거나 저항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태가 악화되자 스스로 비서관들을 불러 하야 성명을 직접 구술하고 경무대를 떠났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3·15 부정선거의 원흉이라는 용어 자체는 제거해야 하지 않나,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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