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 김범수 미래한국 편집인
  • 승인 2018.09.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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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세상 사람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명만이 볼 수 있다면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것일까.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러한 판타지를 모티브로 쓰인 소설이다. 시력을 잃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차례로 맹인이 되어 가는 도시. 군인과 경찰들 마저 눈이 멀어 모두 떠나간 도시에서 홀로 감염되지 않은 주인공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눈이 먼 자들은 그것이 아수라장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폭력과 배설은 일상이 된다.

그러한 도시는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 좌파 이데올로기에 눈먼 권력은 자신들의 전염병을 세상에 퍼뜨려왔다. 복지에 눈먼 그리스가 그랬고 반미에 눈이 먼 베네수엘라가 그랬다. 사회주의 전염병은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증상을 가져다준다.

김범수 발행인
김범수 발행인

우리는 북한 정권의 세기적 폭정과 인권 문제에 오랫동안 눈이 멀어 있더니 이젠 북핵 문제와 우리 내부의 경제 문제에도 맹인이 되어가고 있다. 성과 없는 비핵화 남북정상회담에 우리 기업인들이 조공 사절처럼 끌려가면서도 누구도 저항하거나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전체가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핵화 쇼비즈니스가 한참인 이 시간에도 우리 중산층과 서민들은 치솟는 집값에 신음하고 있다. 한번 망가지면 경제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부동산정책이 나락으로 치닫는 순간에도 우리는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된 정책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정의’라는 레테르를 빌려 입은 사회주의 전염병은 우리로 하여금 시장의 작동 원리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서 구렁텅이에 처박히자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부동산시장이 ‘자본주의의 투기판’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실패한 부동산시장 억제정책이 문재인 정부에서 그대로 다시 등장하고 실패도 반복되고 있지만 눈이 멀어 버린 이들에게는 그것이 보일 리 없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열심히 저축해 더 넓은 집을 갖고자 했던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을 ‘불로소득을 챙기려는 부동산 투기세력’으로 몰고 있는 여당 대표부터 눈이 멀었다. 일자리를 늘린다며 마구 돈을 풀어 그 유동성이 갈 곳 없어 강남 부동산에 몰리는 현상을 두고 ‘하이에나 정글’이라며 세금폭탄을 터뜨린 청와대 수석은 강남에 주택 공급을 축소시켜 가격만 더 높일 뿐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가장 먼저 눈을 감았다. 부동산정책에서 실패한 경제는 건설경기의 불황으로 이어지고 건설경기의 불황은 실업 증가를 낳는다고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고한다. 하지만 눈먼 자들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토지공개념’과 같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황당한 상상으로 그려 놓은 이념지향이었다.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는 해피엔딩이다. 가장 먼저 눈이 멀었던 이가 자연 회복이 되면서 눈이 먼 차례로 사람들은 시력을 되찾기 시작한다. 대한민국도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회복되는 시기가 언제부터인지,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난리와 고통을 겪고 난 후에나 그렇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치유를 앞당겨야 할 야당 정치세력과 보수 시민사회가 또 다른 눈먼 자들의 집단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방향을 헤매며 나뉘어 있거나 과거에 얽매여 주저앉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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