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날것도 아니고 익힌 것도 아닌...우리 문명을 찌운 거의 모든 발효의 역사
[신간] 날것도 아니고 익힌 것도 아닌...우리 문명을 찌운 거의 모든 발효의 역사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0.01 0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마리크레르 프레테리크은 요리와 음식 전문기자이자 평론가. 《블링블링 요리Cusine Bling Bling》 《내 잎을 따봐요Effeuillez-moi》 《친환경 레시피Recettes ?co》 등 10여 권의 책을 냈다. 또한 잡지 《퀴진 악튀엘》 《갈라 구르망》과 개인 블로그(www.dumieletdusel.com)에 음식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이 책 《날것도 아니고 익힌 것도 아닌》은 수년간 해온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자 성과다. 

저자는 선사시대 메소포타미아, 아프리카, 이누이트, 마야 문명과 고대 로마, 갈리아, 중국, 몽골, 일본 등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독자들을 발효의 세계로 이끈다. 이를 통해 발효의 역사와 식품 산업의 혁명을 이야기하고,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의 미덕을 찾기 위해 우리의 오래된 미래인 발효 문화를 지켜나갈 것을 촉구한다.

발효는 어쩌면 인류 문명과 그 기원을 함께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고고학적, 신화적, 역사적 자료들을 살펴보면 발효는 불을 이용한 가열 조리보다 그 출발이 빠르다. 인류는 소와 말 같은 가축을 길들이기 훨씬 이전부터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들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과학적 규명은 최근의 일이다). 좀 더 급진적으로 말하면, 인류는 농사와 가축 길들이기를 통해 발효 음식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역으로 발효 음식을 먹기 위해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발효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룬다. 발효 음식은 어떤 곳에서는 ‘별미’로 통하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혐오 식품’으로 치부될 정도로 토착성, 지역성, 호불호가 분명한 아주 오래된 문화적 현상이다. 동시에 발효 음식은 인류가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이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온 수많은 미생물들이 개입하는 적극적인 생명 활동이기도 하다. 전 세계 곳곳에 산재하는 수많은 맥주와 포도주, 치즈와 버터, 젓갈과 간장, 빵과 죽, 그리고 우리의 김치까지 모든 발효 식품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에 그치지 않는다.

발효는 음식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즉, 어떤 의미를 가진 채 우리의 인간관계, 인간사의 다양한 통과의례, 개인과 집단의 기억, 사회집단의 정체성, 나아가 종교적이고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발효 식품에 결부되는 상징적·문화적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발효 식품은 살아가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때때로 목숨까지 구한다. 맛도 좋고 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둘째, 발효 식품에는 식도락적 가치와 영양학적 가치를 초월하는 상징적 측면이 있다. 
셋째, 발효 식품은 완전히 토착적인 것으로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본래의 특색을 잃을 위험이 있다. 
넷째, 발효 식품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사와 이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이 음식은 공동체를 대표하고 문화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은 발효 식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발효 음식의 긍정성은 최근 100년 동안 현대 식품 산업의 놀라운 발전(동시에 부정적 발전)에 의해 퇴색되거나 심지어 부정당했다.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현대의 ‘위생제일주의’가 발효를 부패와 동일시하면서 발효 음식을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된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체한 것이다. 

하지만 광우병 파동처럼 최근의 극심한 식품 관련 사고를 겪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고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발효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발효의 부활은 생태학, 경제,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발효는 인체에 안전하면서 경제적인 식품 보존 방식을 제공한다. 진공 밀폐는 특수한 장비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부추긴다. 가령, 밀폐 용기를 살균하려면 가열 과정이 필요하고 가스나 전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통조림을 만들려면 캔을 세팅하는 장비가 필요하다. 

냉동 보존은 북극권에 살지 않는 한 냉동고와 전기 공급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 반면에 채소, 고기, 생선을 젖산발효시킬 때에는 음식물을 담을 용기, 약간의 소금, 누름돌 정도만 있으면 된다. 석유, 가스, 전기 같은 에너지는 전혀 필요치 않다.발효는 먹거리에 대한 오늘날의 관심과 맞아떨어지는 대단히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토착 발효 식품들을 상세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발효 음식에 대한 우리의 앎을 증진시킨다. 

향료와 함께 말린 오리 가슴살(프랑스), 쇠고기 육포 ‘시네 헹’(라오스), 양배추와 함께 먹는 고기 소금 절임 ‘콘드비프’(아일랜드), 땅속에 묻은 연어 ‘그라블락스’(스칸디나비아), 고대 그리스의 타리코스를 현대화한 ‘안초비 소금 절임’(지중해 일대), 가장 만들기 쉬운 꿀물술의 일종인 ‘테지’(에티오피아), 호밀빵으로 만드는 전통 러시아 맥주 ‘크바스’,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 귀리죽인 ‘포리지’(스코틀랜드), 양배추를 발효시킨 고전적인 알자스 요리인 ‘슈크루트’(프랑스와 중유럽)가 바로 그런 발효 음식들이다. 물론 한국의 김치도 최고의 발효 식품이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인 발효 음식의 세계로 흥미진진한 여행을 떠나보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