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국제법 기준에 맞추려면....1978년 캠프데이비드합의 참고해야
‘종전선언’ 국제법 기준에 맞추려면....1978년 캠프데이비드합의 참고해야
  •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국제법센터)
  • 승인 2018.10.02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공개 브리핑을 내용을 요약정리하였다.

종전선언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기대를 모으고 있다. 종전선언과 관련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아니다. 지난 2007년10월 4일 남북 정상회담 직후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제4조를 통해 이미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을 제시했었다.

‘남북관계 발전과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제4조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하였다”고 언급했다. 다만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제4조는종전선언 ‘추진’을 위한 ‘협력’만을 언급했으므로 판문점선언보다 추진 동력이 크지는 않았다.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둘러싼 논의가 활성화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핵심은 종전선언이 무엇이고 종전선언이 어떤 법적 함의를 가지는지 더 나아가 종전선언은 앞으로 수립하고자 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 이슈브리프는 남북 더 나아가 3자 또는 4자가 종전선언을 추진할 때 이 선언이 단순히 상징적선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국제법상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는 아니나 그럼에도 종전선언을 하고자 한다면 그 선언은 비핵화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언급과 함께 향후 체결될 평화협정의 내용 또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캠프데이비드협정의 주역들, 좌로부터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카터 미 대통령, 이스라엘 수상 (1979.3.26 백악관 )
캠프데이비드협정의 주역들, 좌로부터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카터 미 대통령, 이스라엘 수상 (1979.3.26 백악관 )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간 평화협정 체결의 방향을 제시했던 1978년 ‘캠프데이비드합의’(Camp David Accords) 사례는 실효성 있는 종전선언의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참고해야 하는 사례이다.

종전선언과 관련해 제기되는 논의들

종전선언이 무엇인지를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war)의 국제법상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통일되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국제법상 전쟁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몇몇 저명한 국제법학자들이 제시한 전쟁의 정의만 있을 뿐이다. 이에 본 이슈브리프는 일단 국가의 무력사용, 전쟁법 등에 관한 한 세계적인 국제법학자인 이스라엘 출신 요람 딘스타인(Yoram Dinstein)이 제시한 전쟁의 정의를기초로 전쟁의 종료, 즉 ‘종전’(termination of war)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딘스타인은 “전쟁은 기술적이든 실질적이든 둘 이상 국가들 간의 적대적 상호 작용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와 같은 딘스타인의 전쟁 정의에 의하면 상호 간에 실질적 적대행위가 없다 하더라도 종전을 위한 대표적인 방법인 평화협정 체결 등을 통해 법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전쟁이 종료되지 않는 한 ‘기술적’(technical) 차원에서 전쟁 상태에놓여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전협정이발효한 1953년 7월 27일부터 한반도에서 실질적 적대행위가 사실상 종료되었다 하더라도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즉, 한국전쟁은 법적으로 명백히 종료되었다고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술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전쟁 상태인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판문점선언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에 의하면 [정전협정 → 종전선언 → 평화협정]이라는 순서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순차적 단계가 된다. 그러나 국제법을 고려했을 때 종전선언이 반드시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평화협정 제1조가 법적 종전은 물론 새로운 평화의 도래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영국과 청나라 간에 벌어진 아편전쟁을 법적으로 끝낸 1842년 난징조약 제1조는 “이후 영국 여왕과 청나라 황제 간에 그리고 영국 신민과 청나라 신민 간에 평화와 우호가 있어야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더구나 정전협정은 기본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이 곧 이뤄질 것을 전제로 체결되어왔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종전을 목적으로 체결된 1918년 11월 11일 정전협정 제34조4는 (그 후 여러 차례연장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정전 기간을 단지 36일로 예정했었다. 즉, 정전협정은 평화협정 체결 및 발효와함께 창설될 새로운 법적 체제를 향한 ‘잠정적’(provisional) 체제를 구축할 뿐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제4조도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외국 군대의 철거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이에 건의한다”라고 규정하여 정전협정 발효로 인한 잠정적 체제 구축만을 예정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잠정적 성격만을 가진 정전협정이 65년 가까이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법적으로는 종전선언이 필요하지는 않으나 추후 체결될 평화협정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종전선언의 정치적 또는 사실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종전선언 없이 평화협정 체결로곧바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법적 장애물은 없다는 점이다. 즉, 논리적으로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종전선언을 판문점선언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이상 이종전선언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집중되어야 한다.

종전선언의 주체와 효과는 무엇인가

종전선언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대하여도 논란이 있다. 남과 북만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남·북·미 더 나아가 남·북·미·중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우선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만 반드시 종전선언의 주체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1차 세계대전 종전을 위해 체결된 정전협정과 (법적 종전을 이룩한) 평화협정을 예로 들어보자. 1918년 11월 11일 체결된 정전협정5에는 일방 당사자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프랑스 출신 페르디낭포슈(Ferdinand Foch) 및 영국출신 로슬린 위미스(Rosslyn Wemyss)가 그리고 타방 당사자로 4명의 독일 대표들이 서명했다. 하지만 법적 종전을 완성한 평화협정인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이유조약6에는 독일을 포함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무려 28개국이 서명하게 된다. 이는 정전협정의 당사자와 종전선언의주체 더 나아가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논리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과 북은 물론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등어떤 경우의 수도선택될 수 있다. 이는 종전선언의 주체 문제 역시 전략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중국도 종전선언에 참여한다면 종전선언의 실효성을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종전선언의 내용 또는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 체결과관련하여 중국의 의사가 일부라도 반영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종전선언이 가져오는 효과는 무엇인가? 정치적 종전인가 또는 법적 종전인가? 현재 종전선언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체결 또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로생각하고 있다. 즉, 일단 종전선언을 한 이후 본격적으로 평화협정 체결 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는 종전선언을 ‘정치적’ 선언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종전선언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한반도를 규율하는 법적 체제는1953년 7월 27일 체결되고 발효된 ‘정전협정’이 된다. 즉, 종전선언은 아름다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법적함의를 가져다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정전협정 제1조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있는데, 종전선언이 이뤄진다 해도 현재 존재하는 군사분계선이 종전선언 즉시 남북 간 국경선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종전선언이 이뤄진다해도 여전히 정전협정은 유효하다는 의미이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 합의’ 사례

지미 카터는 1977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즉시 중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78년 9월 17일 ‘캠프데이비드합의’(Camp David Accords)라는 역사적 합의에 당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와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이 서명했다. 캠프데이비드합의는 1979년 3월 26일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졌다.

캠프데이비드합의는두 가지‘틀’ (framework)로이뤄져 있다. 하나는 ‘중동 평화를 위한 틀’(Framework for Peace in the Middle East)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틀’ (Framework for the Conclusion of a Peace Treaty between Egypt and Israel)이다. 그런데 ‘중동 평화를위한 틀’에도 평화협정 체결 관련 내용이 존재하므로 두가지 틀 모두 분석할 가치가 있다. 본 이슈브리프는 평화협정 체결을 이끈 캠프데이비드합의 분석을 통해 현재 남과 북이 추진하는 종전선언의 내용 및 법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1978년 9월 17일 합의된 ‘중동평화를 위한 틀’은 평화협정 체결시 반영되어야 할원칙 또는 취해져야 할 조치 등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승인(recognition), 경제제재 해제, 상대국 국민에 대한 적법절차 보호 제공 등이다. 이는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간 평화협정 제3조 제3항7을통해 구현되었다.

중동 평화를 위한 틀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틀’보다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중동 문제에 관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합의를 나열했다. 그런데 중동 평화를 위한 틀 내에 포함된 하나의 주제가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이긴 하나평화협정 체결 및이행 시기 등 평화협정 자체에 대한좀 더 상세한 합의 내용이 필요했으므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체결을 틀’ 도 함께 만들어졌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틀’ 내용 중 가장 특징적인 내용은 평화협정 체결 및 이행 시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즉, 1978년9월 17일부터 3개월이내에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했으며, 평화협정 체결 시로부터 2~3년 이내에 평화협정 내용이 이행될 것을 목표로 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체결을 틀’ 내에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경까지 이집트의 주권 존중, 시나이반도로부터 이스라엘의 철군, 수에즈운하를 통항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권리 등이 포함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 제1조부터 제5조까지를 통해 구현되었다.

‘비핵화’는 종전선언 유효화의 조건

캠프데이비드합의의법적 지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수 있으나 캠프데이비드합의는 법적 구속력 없는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 또는 정치적 합의(political agreement)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캠프데이비드합의는 발효를 위해 비준을요건으로 하지 않았으며, 조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구속력을 보여주는 ‘shall’ 대신 ‘will’ 등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법적 구속력 없는 캠프데이비드합의의 형식과 정치적선언인 종전선언의 형식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선언도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 이후 체결될평화협정에 상당한 영향을미치거나 법적 함의를가질 수있다.

평화협정 체결을 좀 더 포괄적이고 상위 개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을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후 전개될 미국과 중국 간 경쟁 또는 협력의 출발점이자 최소한의 합의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전선언 내에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용되어야 할 원칙 또는 조치 등이포함되거나 구체적인 분쟁해결수단 등이 포함된다면 종전선언을 통해서도한반도 평화체제의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이는 캠프데이비드합의 내 ‘중동 평화를 위한 틀’이 잘 증명한다.

판문점선언에 대한 논란 중 가장 부각되고 있는 면은 ‘비핵화’ 문제이다. 판문점선언 제3조는 총 네 개의 항을 통해 [불가침 → 군축 →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 완전한 비핵화] 순서를 제시했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 비핵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논란을 야기했으나 2018년 5월 2일 통일부 장관이 출입기자간담회를 통해 비핵화 마지막 단계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오히려 종전선언 내 비핵화 문제에 관한 틀이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남북의 국경선 문제에 관한 틀’ 역시 종전선언 내에 포함될 수있다. 즉, 군사분계선이 국경선으로 전환될지, 비무장지대는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 북방한계선(NLL)은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등에 관한 원칙 또는 로드맵이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