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펑위 사건과 대한민국의 봉침 사건
중국의 펑위 사건과 대한민국의 봉침 사건
  •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 승인 2018.10.08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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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6월 미국의 ABC 방송은 2개월 전 중국 허난성 주마덴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보도했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차도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수십여 명의 행인과 수십 대 이상의 차량운전자들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 쓰러진 여성이 2차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된 사건을 보도한 것이다. 94초 분량의 CCTV 영상은 남의 불행에 무관심한 중국인들의 냉혹한 인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2011년에도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두 살배기 아이가 차량 2대에 연달아 치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데도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공분을 산 것이다.

이렇게 사고를 당한 피해자를 외면하는 시민들의 냉혹한 무관심을 고발하는 동영상은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영상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중국인들은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는 냉혹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일까? 왜 유독 중국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일까?

허난성의 뺑소니 사건을 보도한 ABC 방송에서 중국의 소설가 텐유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중국의 도덕성은 바닥 수준이지만, 솔직히 내가 현장에 있었더라도 선뜻 이 여성을 도우려 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선의의 노력이 처벌되는 사회

그 해답은 2006년 중국 난징에서 벌어진 소위 ‘펑위 사건’에 있다. 2006년 11월 어느 날 아침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할머니가 한꺼번에 밀려든 군중에 의해 밀려 넘어지게 되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일용직 근로자 펑위는 쓰러진 할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고, 할머니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할머니를 도와주었던 펑위는 오히려 할머니 가족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되었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우리 돈 2300만 원을 청구했고 1심 법원은 펑위가 약 66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펑위는 1심 판결에 항소했고 양측은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합의를 통해 법정싸움을 종결했다. 펑위는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인지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다”라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중국의 방치된 뺑소니 사건
중국의 방치된 뺑소니 사건

이 사건은 당시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중국인들에게 “선의로 베푼 행동이 오히려 자신에게 화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펑위 사건이 “중국의 사회,도덕 수준을 50년 후퇴시킨 사건’으로 알려진 이유다.

(훗날 펑위가 실제로는 자신에게 가해 책임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말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고,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민국 의료계에도 중국의 펑위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 5월 한의원에서 한의사로부터 봉침을 맞은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피해자의 유가족이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준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이다. 피해자는 30대 초등학교 여교사로, 허리통증 치료를 받기 위해 한의원을 찾았다가 봉침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봉침을 맞고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일어나 사망하게 된 것이다. 환자가 쇼크 상태에 빠지자 당황한 한의사는 같은 층에서 개원하고 있던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한의사의 긴급한 도움을 요청 받은 의사는 응급의약품을 챙겨 뛰어갔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피해자 유가족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된 것이다.

환자의 유가족은 봉침을 시술한 한의사를 상대로 9억 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의사를 피고에 포함시켰다. 유가족의 변호를 맡은 원고측 대리인 신현호 변호사(법무법인 해율)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피고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의사의 도움 요청에 대해 가정의학과 의사가) 처음부터 오지 않았더라면 몰라도 응급 상황에 갔다면 (그 순간부터) 보증인적 지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즉 “한의사의 도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면 모르되, 응했다면 그 순간부터 적어도 민사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아직 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판결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의사가 선한 의도를 갖고 구명 활동에 참여했다가 오히려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펑위 사건과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일어난 펑위 사건은 불행을 당한 이웃에 대한 중국인들의 무관심, 외면을 유도했다고 알려졌다. 펑위 사건을 알고 나면 영상 속에 보이는 중국인들의 무관심한 행동들을 비난하기가 어려워진다. 펑위 사건은 어쩌면 이웃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살 수 있었던 수많은 생명을 잃게 한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방 봉침 부작용 환자 살리려다 범죄자 된 의사

그렇다면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일어난 펑위 사건에 대해 의사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을까? 중국과 동일한 반응이 나왔다. 의사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대한의사협회는 한방 부작용 무개입 원칙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즉 한방치료를 받다가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했을 경우 치료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사들의 입장 변화에 의해 누가 피해를 입게 될까. 피해는 죄 없는 수많은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어떤 의사가 억대의 손해배상청구의 위험을 무릅쓰고 선의를 베풀 수 있을까. 중국에서 일어난 펑위 사건으로 인해 중국인들의 도덕성이 50년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일어난 펑위 사건 역시 의사들의 도덕성을 강제로 후퇴시킬 것이 명확하고, 그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응급 처치에 참여한 가정의학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유가족들과 소송 대리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한방에서 사용하는 봉침 주사제는 안정성을 검증받거나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다.
한방에서 사용하는 봉침 주사제는 안정성을 검증받거나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30대 여교사의 봉침 사망사건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의원에서 시행되는 봉침 치료는 일반인이 생각하듯 살아 있는 벌의 침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봉침주사라는 이름의 주사제를 사용하는 치료법이다. 그리고 이 주사제는 안전성에 대해 검증을 받거나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주사제가 아니다. 봉침주사는 대한약침학회라는 학문적 이름을 가진 주식회사에서 제조하는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되며, 규모 있는 한의원은 직접 생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주사제들은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유통되고 있으나 정부기관은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식약처의 허가를 득하지 않은 주사제가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 주식회사 대한약침학회가 불법 주사제를 대량으로 생산하다가 고발되어 대표이사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여전히 주사제를 생산하고 있다. 6년간 270억 원어치의 불법 약침을 제조 판매한 것에 대한 동일한 금액인 271억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지만 벌금은 황제노역으로 대체되었다. 정부가 한방의 불법행위에 눈을 감고 있는 이유는, 막연히 ‘우리 것’으로 알려진 한방에 대한 초법적 관대함 때문이다. 불법에 눈 감은 정부의 왜곡된 관대함 때문에 30대 여교사가 사망했다. 그녀는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갓 결혼한 신부였다.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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