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설계자 덩샤오핑....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면 덩샤오핑을 읽어라 
[신간] 설계자 덩샤오핑....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면 덩샤오핑을 읽어라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0.12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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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덩샤오핑을 읽어야 하는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숨가쁜 외교전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북한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그 전범典範이 될 만한 곳이 덩샤오핑이 최고지도자로 있던 당시의 중국이다. 덩샤오핑은 스스로 “마오와 중국 혁명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으며 중국과 구소련의 외교 대립에서 마오의 지시에 따라 맹활약하던 심복이었다가 결국 거대한 기아를 본 후 마오쩌둥의 대약진 정책을 전환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마오쩌둥 사후에는 후계 다툼에서 이겨 ‘위대한 조타수(마오쩌둥)’의 경제정책과 문화대혁명의 과오를 결국 수정해냈다. 그는 계획경제 대신 서구와의 외교 개선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동시에 자유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서 주저앉히면서도 마오의 공과까지 담아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확립시키고 이후 현대 중국의 길을 닦아놓은 실용주의자다. 

현재 중국의 3대 금기인 타이완, 티베트, 톈안먼에 대한 정책 노선에는 모두 덩샤오핑의 흔적이 가득하다. 덩샤오핑은 1913년에 티베트가 독립을 선포한 이후 티베트를 ‘재통일’하기로 한 중국공산당의 결의를 서남국의 책임자로서 완수했고, 1989년에는 자신의 후계자로 예정해둔 자오쯔양까지 실각시키며 수도 한복판 톈안먼 광장에서 다당제를 요구한 학생 시위를 군대로 진압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1979년에 경제개혁의 성과를 바탕으로 홍콩, 마카오에 이어 타이완을 재통일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일국양제 원칙은 지금도 중국 외교의 지향점이다. 
 

중국공산당 창립자 마오쩌둥은 대기아를 부른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실패가 보여주듯 과오가 매우 뚜렷한데도 국공 내전 승리의 단초가 된 대장정으로 인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중국공산당 지도자다. 그런 반면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실패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중국을 가난에서 구해낸 공이 있음에도 왜 중국인들에게 너그러이 평가되지 않을까? 마오쩌둥의 후계자 화궈펑을 무너뜨리고 범시론파와의 경쟁에서 이긴 후 덩샤오핑은 경제개혁과 언론의 자유 등을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1979년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후 경제개혁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새로운 발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변화에 전 세계적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덩샤오핑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체구는 작지만 강력한 지도자. 세 번의 불명예를 당한 후에도 다시 정계에 발을 디뎌 결국 최고권력자에 오른 덩샤오핑은 수많은 사람에게 중국이 결국 문명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 가득한 영감을 주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은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사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타임》 표지에 등장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인 적이 많았다. 스스로 “나는 다른 사상의 영향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나는 곧장 공산주의에 도달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공산주의 외의 다른 사상을 공부한 적이 없으면서도 “고양이가 검은지 노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쥐를 잡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고양이입니다”라며 마오쩌둥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약진 실행 단위인 인민공사 대신 가족도급제를 지지해서 중국 인민을 기아에서 구해냈다. 마오 치하의 베이징으로 복귀한 뒤 오랜 친구 저우언라이를 비판했으면서도 저우언라이가 제시한 4개 현대화를 이어받았고, 자신을 세 번 실각시킨 마오에 대해 “중국 혁명의 전체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마오쩌둥 동지의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모두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시각에서’ 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오쩌둥을 드높였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면 덩샤오핑을 읽어라 

지금 미국과 무역 분쟁이 한창일 정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은 향후 100년은 ‘도광양회’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설계자요 실행자조차 중국이 이렇게까지 시장경제와 공산당 독재체제의 결합으로 성공적인 세계의 공장이 되리라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또한 마오쩌둥 개인숭배와 1인 집권 체제가 불러온 문화대혁명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이후 덩샤오핑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를 현재 지도자 시진핑이 ‘중국의 꿈’과 ‘일대일로’를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무너뜨리기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설계자 덩샤오핑》은 가깝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웃 나라의 권력 핵심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충실한 관찰의 기록이다. “덩에게 있어 또 다른 기념물은, 그가 일생을 통해 의도적으로 강화시킨, 공산당이 조종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기계이다. 중국이 21세기에, 그 지도자들이 여전히 마르크스와 레닌뿐만 아니라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까지 충성하는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으로 남아 있는 것은, 특히 마오 사후에, 그가 기울인 노력 덕분이다.” “사회주의의 길, 무산계급의 독재, 공산당의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4항 기본원칙”을 내세워 자유화를 탄압하면서도 “인민의 민주는 적에 대한 독재 그리고 민주에 기초한 중앙집권과 분리될 수 없다”고 여긴 덩샤오핑의 생애를 담은 《설계자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최고 권력이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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