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맛, 그 지적 유혹... 책 속 음식에 숨겨진 이야기
[신간] 맛, 그 지적 유혹... 책 속 음식에 숨겨진 이야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0.16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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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읽기를 사랑하고 음식과 그 맛에 대한 지적 욕망이 남다른 이가 책을 쓴다면 어떤 책이 나올까? 《맛, 그 지적 유혹》이 바로 그런 책이다. 

우리 대부분은 책을 읽을 때 그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집중한다. 글쓴이의 의도나 메시지를 파악하느라 작품의 이면에 드리운 작가의 은밀한 의도는 놓치기 쉽다. 예를 들면 책 속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음식과 맛, 그리고 그것들을 도구로 이용하여 작가가 암시하고자 한 등장인물의 성격과 그가 처한 시대와 사회적 상황, 분위기들 말이다. 

저자 정소영은 《맛, 그 지적 유혹》에서 책 속 음식에 숨겨진 풍부한 암시와 상징이 책 읽기의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작품 하나하나에서 한 인간을 규정하고 당대의 정치?사회?문화적 특성들을 반영하는 은유의 도구로 쓰인 음식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해석 자체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책을 읽다보면 음식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고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만이 아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력하고 지적인 인문학적 장치임을 깨닫게 된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가 하는 일상적 행위 중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가장 잘 투영되는 행위이다. 인간은 누구나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욕구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이 속한 사회의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다. 

허삼관은 피를 판 후 살기 위해, 그리고 다시 피를 팔기 위해 돼지간볶음을 먹고(《허삼관 매혈기》, 위화), 엠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 위해 저녁 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베이츠 씨네 집에 돼지고기를 보낸다(《엠마》, 제인 오스틴). 영혜는 어느 날 기이한 꿈을 꾸고 난 후부터 고기를 거부하다 극단에는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채식주의자》, 한강), 오브프레드는 금지된 자유를 은밀히 즐기는 수단으로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서로 다름으로 인한 갈등이 음식을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살아온 배경과 경험, 추구하는 삶이 다르다는 것이 에이미의 크레이프와 닉의 팬케이크을 통해 대비된다(《나를 찾아줘》,길리언 플린). 데이지가 만드는 초록 빛 민트줄렙과 샤르트뢰즈는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꿈을 좇는 개츠비의 무모한 도전을 묘사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게 사용된다(《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마르쿠스 사무엘손이 ‘진짜’ 플레이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와 그가 자란 스웨덴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예스, 셰프》, 마르쿠스 사무엘손 외). 어머니를 잃은 후 식욕을 잃었던 시오는 호비가 만들어준 치즈 토스트를 먹으며 처음으로 식욕을 느낀다. 시오에게 호비의 음식은 엄마의 집밥을 먹을 때와 같은 위로를 선사한 것이다(《황금방울새》, 도나 타트). 

그들이 먹는 음식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 그 이면의 이야기들은 작품 속 인물이나 상황에 입체성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품 속에 내재된 은밀한 의미의 층을 풀어놓는 저자의 입담은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는 물론 익히 책을 읽은 독자에게도 독서에 대한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 현상으로, 욕망과 유희의 대상으로, 때로는 위로와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하는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음식 이야기와 함께 각 작품의 사회적 배경이나 문화, 이야기에 얽힌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깃거리는 책 속에 거론된 작품을 떠나 정소영이라는 작가의 글 자체를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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