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국회회담의 종착역
남북 국회회담의 종착역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10.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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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문희상 국회의장은 5당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오는 11월, 남북국회회담 개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남북국회회담의 주요 아젠다가 무엇이 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만 ‘자신이 제안’했고,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부터 동의 답변이 왔다’고만 밝혔다. 문제는 이 남북국회회담의 핵심 아젠다가 다름 아닌 남북연방제 통일 방식에 대한 논의라는 사실이고, 이 이슈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지난 달 남북 정상회담 기간 중에 평양에서 있었던 ‘의문의 노쇼(No Show)’라는 한 사건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난 9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3당 대표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일정 중 북한 대표단과의 면담 자리에 사전 통보 없이 나타나지 않은 ‘노쇼’ 사건이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중에 외교적으로 심각한 결례였다는 비판과 함께 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평화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노쇼 당사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튿날인 9월 20일, 범여권 3당대표와 북한 대표단의 면담은 예정에 없던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참석으로 재개됐다. 결국, 3당 대표의 ‘노쇼’는 김영남과의 만남이 불발된 것에 항의적 성격이 배경이라는 분석들이 나왔지만, 김영남 위원장과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지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 면담의 의제는 다름 아닌 ‘남북연방제 통일’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국회회담 제의 안이었지만, 이슈는 남북정상회담에 묻혔다.

다음날인 9월 21일, 정동영 평화민주당 대표는 YTN의 라디오 프로그램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서 3당 대표가 북한에 제의한 남북국회회담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올해 안에 남쪽의 100명, 북쪽의 100명 이렇게 해서 평양에서 1차로 남북국회회담을 열어서, 남북연방을 의제로 통일방안을 연구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정동영 대표는 이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국회회담은 결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 이 이슈는 미북협상과 남북정상회담에 가려져 있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의 복심, 남북연방

미북간에 북핵협상이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전개되는 가운데, 문재인의 청와대와 민주당의 남북관계가 ‘연방제통일’을 향하고 있다는 관측은 정설이다. 다만 남북연방을 위한 여론 정지작업은 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범여권 3당간에 역할 분담이 이뤄져 있고, 현재로서는 DJ정신을 이어받았다는 민주평화당이 바람을 잡고 있다.

지난 9월 14일, 개성에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와 관련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에 일하는 분들은 남과 북을 따지지 않고 한 울타리에서 한 식구로 살아간다. 2층의 남쪽 사람도 4층의 북쪽 사람도 모두 3층에서 만날 것이다. 그렇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개성을 벗어나 한반도 전체로 확대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고 논평했다. 그러자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이 이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논평을 내놨다. 그는 “개성 연락사무소는 통일의 첫 단계인 남북연합의 길을 여는 것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3단계 평화통일론은 1단계 남북연합, 2단계 남북연방, 3단계 완전통일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1단계 남북연합이다. 남북연합은 외교권, 군사권 등 남북의 모든 주권 사항과 체제를 그대로 두고 남과 북이 정상회담과 각료회담을 정례화하고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교류 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개성 연락사무소가 남북 연락 사무국의 역할을 함으로써 그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가 세워지기를 기대하며 남북연합의 목표인 코리아 연합의 길을 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남북연방제 혹은 남북연합은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관이기도 하다. 2017년 4월 25일 JTBC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낮은 단계 연방제’ 문제로 충돌했다. 이날 토론이 열리기 며칠 전, 문재인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행사에 참석해 “남북국가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6·15 선언에서 밝힌 통일의 길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에 찬성하느냐”고 질문했고, 문재인 후보는 “낮은 단계 연방제는 우리가 주장하는 국가연합하고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은 문재인 후보로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남북관계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수용해서 하겠다는 공약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남북연방제는 결국 북한의 대남적화를 위한 통일전선전술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북한은 남북연방제 통일에 대해 북한 주민들에게 이를 알린 적도 없거니와 조선노동당 강령은 여전히 통일 방안에 대해 ‘사회주의 적화’를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대부분은 연방제통일안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으며 통일이라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김정은 장군이 천명한 사회주의 조국 통일’뿐이라고 말한다.

남북 두 정상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종전선언이 담긴 판문점 선언을 한 후 오찬을 하고 있다 / 연합
남북 두 정상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종전선언이 담긴 판문점 선언을 한 후 오찬을 하고 있다 / 연합

남북연방은 북의 대남 적화 통일전술

중국과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변호사 고든 창은 최근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보수 성향 매체인 ‘더 데일리 비스트(The Daily Beast)’에 ‘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이 한국을 북한에 갖다 바치는 일을 방치하고 있나(Why Is Trump Letting Moon Jae-in Hand South Korea to Kim Jong Un)?’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김정은에 노선을 일치시킨 문재인은 북한 비핵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며 “문재인의 핵심 목표는 바로 김씨 왕조의 숙원과제인 낮은 단계 연방제 실현에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문재인은 심지어 북한을 한국에 위협적인 존재로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호평과 인기를 얻었던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는 탁월한 외교적, 정치적 관점을 가진 명대사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 중에 하나는 ‘평화는 상대가 적(敵)이기 때문에 추구한다’는 구절이다. 다시 말해 평화를 추구하겠다면 상대가 적(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야비한 독재자 김정은의 거수기에 불과한 북한 최고인민회의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회가 만나 남북국회회담으로 연방제 통일을 논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적과 동지’라는 국제 질서의 규범을 벗어난다. 그 결과는 남북 예멘의 참혹한 내전이 증명했다. 한반도에도 겨울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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