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전 국회의장 “내가 참여했던 남북정치회담, 그들의 선전장 전락”
박관용 전 국회의장 “내가 참여했던 남북정치회담, 그들의 선전장 전락”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0.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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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하는 정치 회담은 항상 그들의 정치 선전장이 되곤 했다.

1985년 4월 9일 북한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이 채문식 국회의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남북불가침 선언’ 채택 문제를 논의하자며 남북 국회회담을 제의해 시작됐다.

당시 첫 예비접촉이 1985년 7월 23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남한 측에서는 권정달(민주정의당)을 수석대표로 정시채(민주정의당), 나(박관용.신한민주당), 신순범(신한민주당), 강경식(한국국민당) 등 5명이, 북한 측에서는 전금철(조선노동당)을 단장으로 주창준(조선노동당), 최장룡(조선노동당), 염국렬(조선사회민주당), 우달호(천도교청우당) 등 5명이었다. 양측은 회담형식, 대표단규모, 회담장소, 회담일시, 대표단 왕래 절차 등의 문제에서 합의했지만 의제에서 이견을 보였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나는 이러한 남북 국회회담에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는데 11차까지 갔지만 팀스피리트 훈련을 문제 삼은 북한의 무기연기 요청으로 열리지 않았다. 1988년 7월 9일 대한민국 국회의 서울올림픽대회 북한참가촉구결의문 채택과 이에 대한 북한이 남북국회연석회의를 제의해 준비접촉이 재개됐다.

1990년 1월 24일 10차 준비접촉에 이르기까지 양측은 본회담 의제를 비롯한 회담형식, 대표단 구성, 운영절차 등을 협의했지만 퇴장과 보이콧을 반복하며 실제 3번만 회담이 이뤄졌다. 북한의 거짓 평화 선전장일 뿐이었다. 북한은 불가침선언을 주장했지만 남한 측은 불가침을 비롯한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섭, 조약 체결 등은 남북한당국 또는 최고책임자회담에서 협의,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현 국회가 남북 국회회담을 한다고 하는데 어떤 취지로 하는지 의제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조절해야 하는 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점을 따지고 국민적 여론을 모아야 하는데 요즘 같이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분위기에서 심각하게 돌이킬 수 없는 의사결정을 할까 우려된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남북 국회회담의 의도와 의제, 방향을 잘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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