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괴뢰’로 시작된 북한
‘소련 괴뢰’로 시작된 북한
  • 미래한국
  • 승인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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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 탄생의 진실’/시모토마이 노부오 著 /이혁재 譯·기파랑 刊(2006)
‘주체의 나라 북한’은 정치神話에 불과 金日成은 소련장교로 출세하는 것이 꿈1998년 개정된 북한 헌법 전문에 따르면 “(김일성 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쟁을 조직 령도하시여”,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이룩했다고 나와있다. 「북한정권탄생의 진실」은 일본 호세이대학 법학부에 재직 중인 시모토마이 노부오 교수가 구소련과 중국 측 사료를 바탕으로 북한의 형성과정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북한이 1930년대 이후 김일성의 항일투쟁 결과 형성된 ‘주체의 나라’라는 주장이 정치신화에 불과함을 밝히고 있다. 특히 북한의 건국에 대한 사실(史實)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소련의 괴뢰국가”로서 북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러시아어 직역1945년 8월 대일참전이란 목적 아래 소련군은 한반도에 들어온다. 저자는 “그 소련적군(제25군)의 점령기간 중, 소련의 강력한 지도 아래 만들어진 국가가 북한”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현대 러시아 역사가 안드레이 라니코프의 연구를 인용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형성에 있어서 소련이 한 역할이나 개입 수준은 동유럽 위성국가에 대한 것 이상이었다고 한다. 소련은 분단국가의 존재방식을 포함, 헌법과 군대에서 지도자 선택까지 결정했던 것이다.북한의 국가기구도 소련의 복사판이었다. 스탈린이 사실상의 분단국가로서 북한을 건국하기로 최종 결단한 시점은 1948년 4월 24일이다. 모스크바 교외의 스탈린 별장에서 몰로토프, 지다노프 등과 헌법 제정 및 독립준비를 결정했음이 스티코프 대사의 일기를 통해 판명되었다. 1947년부터 소련헌법을 기초삼아 준비했는데, 일부는 스탈린이 직접 집필했다. “당시 회의에는 그 어떤 북한 지도자도 참가하지 않았다. 소련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결정했는지 잘 알 수 있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국명도 러시아어를 직역한 것이다. 또 남북노동당은 1949년 7월 1일 통합되었는데, 실제 통합 설계는 1년 이상 전에 이미 모스크바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김정일에게 러시아식 이름 ‘유라’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김일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그의 꿈이 원래 소련의 군인으로서 출세하는 것이었음을 밝혔다.
▲ 1948년 북한의 5.1절 기념식.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고 소련 국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려 있다
“만주 게릴라였던 김일성 등이 소련군의 88여단에 편입된 뒤, 만주나 한국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은 없다. 일본의 패배 직후에도 하바로프스크 교회 ‘뱌츠코에’에 있었던 김일성은 한반도로 돌아가기 보다 소련군대에서 복무하며 장군이 되는 것을 확고한 미래상으로 그리고 있었다고 당시 그와 친교가 있었던 소련군 장교 코비젠코 등이 회고하고 있다.”소련군 대위 김일성이라고 자처하게 되는 김성주는 과거 게릴라 활동을 벌이기는 했지만, 1940년 이후의 경력은 소련 군인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김일성은 자식들에게 러시아식 이름을 지었다. 예를 들어 김정일의 아명은 ‘유라’였다. 스탈린, 6·25 전술 지시까지 내려 6·25전쟁 발발과 소련의 관계, 스탈린,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관계도 소련측 사료가 공개됨에 따라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해졌다.스탈린은 원래 김일성의 남침 전쟁에 대해 시큰둥한 입장이었다. 김일성은 1950년 4월 25일 스탈린과의 회담에 이르러서야 소련군 수뇌부의 ‘GO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구소련 사료는 참전을 결단한 스탈린이 ‘필리포프’ 등의 이름으로 상세한 전술까지 지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248쪽.#김정은 기자 hy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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