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되고 있는 국가통계의 신뢰성
훼손되고 있는 국가통계의 신뢰성
  • 박성현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8.10.2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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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분배지표를 조사하는 가계동향조사의 변천 과정

정부는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통계에서 올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저소득층의 소득만 줄어드는 등 갈수록 악화된 분배지표로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 논란이 커지자 급기야 8월말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신임 청장이 부임하여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통계청은 현재 분리해 조사·공표하고 있는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분기)과 ‘지출부문’(연간)을 2020년부터 다시 합쳐 표본설계와 표본규모를 바꿔 분기별로 공표한다고 9월 18일 개편된 ‘가계동향조사 통합작성방안(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이 (안)이라고 하는 것은 국회예산 심의 과정에서 변경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계동향조사에 대해 그 동안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통계청은 2016년까지 분기별로 함께 조사·공표하던 소득과 지출 통계를 2017년에 분리했다. 기존 소득 통계가 ‘가계부 기장’ 방식이어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응답률이 낮아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고, 또한 이 조사는 2인 가구 이상의 가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제대로 가구소득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비평이 있어 왔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통계청은 이 가계동향조사를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고, 올해부터 국세청·한국은행 자료와 통합해 작성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와 일원화하여 연 1회 가계소득 지표를 공표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지출 통계는 연간 주기로 재편해 따로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계 동향조사가 통계청의 계획과 달리 꼬이게 된 것은 작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민주당은 작년 말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 파악’이란 이유로 소득동향조사를 존속시키기로 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28억 원 배정했다. 소득주도성장을 홍보하려는 것이었다.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 효과로 소득이 늘어나는 모습을 분기별로 확인하기 위해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올해도 소득 통계를 계속 작성·공표하도록 독려한 것이다. 원래 규모를 줄여가며 서서히 소멸시키려던 통계를 다시 살리기 위해 통계청은 표본을 큰 폭으로 보강했다.

표본가구수를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보강하면서 고령·저소득층 가구 비중을 높인 것이다. 이후 정부는 작년 4분기에 분배지표인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하위 20% 소득 대비 상위 20% 소득 비율)이 4.61배로 0.02배 떨어지며 조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자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라고 만족감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영향 등이 본격화되면서 작년 2분기 대비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소득이 1분위(소득 하위 20%)에서 7.6% 감소하고, 2분위(소득 하위 20∼40%)에서도 2.1% 감소했고,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10년 만에 최대인 5.23배로 악화되자 태도가 바뀌었다. 정부는 ‘작년에 표본을 바꾼 것이 문제’라는 식의 해석을 내놓으면서, 통계청장을 경질까지 했다.

‘가계동향조사 통합작성방안(안)’ 내용

표본 변경문제는 통계전문가들의 영역으로 표본을 최근의 성별·연령별 인구구성 변화를 반영해 비율대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정부의 지적은 전문가의 영역을 침해한 것으로 타당하지 않다. 국가 통계를 정치인들에 의한 ‘오기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 통합작성안은 2016년까지 사용하던 방식대로 소득과 지출 통계를 다시 합쳐 공표하겠다는 게 이 안의 계획이다. 이는 통계청의 기존 방침을 2년 만에 뒤집은 것으로, 통계 전문가들의 계획보다는 정치인들의 입맛에 맞는 통계를 생산하려는 의구심을 들게 하고 있다.

이 작성안의 골자는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20년부터 새 가계동향조사 땐 현행의 다목적표본 대신 전용표본을 활용해 정확성을 높이고, 소득과 지출조사를 합쳐 통합조사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면접조사 방식을 가계부 기장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이는 통계청이 애초 가계부 기장 방식에 문제가 있어 면접조사 방식으로 바꾸려던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현재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부문은 8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분기별로, 지출 부문은 1만 2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연 단위로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새 개편안은 2020년 1분기부터 공통 표본 72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지출을 통합 조사해 분기별로 공표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표본과 규모, 조사 방식과 기간 등이 모두 바뀌게 된다. 통계청은 조사방식을 바꾸는 데 들어가는 예산이 130억 원에 달한다고 보고 내년도 예산으로 신청했다. 단 시계열의 안정성을 위해 내년은 기존 조사와 개편된 통합조사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통합작성안을 발표하면서 통계청은 현행의 가계소득조사는 원래 경제활동인구조사(취업과 실업 등 경제활동 특성을 파악하려는 것이 주목적)를 위한 다목적표본으로 분석 결과에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대체하여 전용표본을 사용하면 저소득, 고소득 가구에 대한 표착률이 높아져 소득 분배지표 정확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통계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안과 관련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중립성이 생명인 통계청이 손바닥 뒤집듯 방침을 바꿔 통계를 생산한다면 통계의 연속성가 신뢰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통계 개편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통계청은 꾸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정치적 동기로 통계청장을 경질하고, 새 청장은 임명된 지 한 달도 지나기 전에 통계 방식을 바꾼다면, 그 통계가 중립적이고 신뢰성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새 청장은 임명된 직후 경제장관회의에서 “장관님들의 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 ‘좋은 통계’가 정권을 위한 통계가 아니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통계가 되었으면 한다.

포퓰리즘 정권과 통계 조작의 유혹

12년만에 다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아르헨티나에선 12년을 집권한 좌파 포퓰리즘 정권에서 공무원 수를 2배 가까이 늘려 근로자 다섯 명 중 한 명이 공무원이 되었고, 복지 지출을 급속히 늘리면서 나라의 경제가 붕괴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세금만으로 선심 쓰는 데 한계가 있자 돈을 찍어 냈다. 그러자 물가상승률이 연간 30%를 넘었다. 이 숫자가 부담되자 정권은 물가상승률을 10%라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통계와 현실 차이를 숨기기가 힘들어지자 일부 통계는 발표를 중단시켜버렸다. 이 나라에서 제출한 통계를 유엔은 믿지 않고 있다.

9년 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는 노동자 4명 중 1명이 공무원이었고,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추려 그리스 정부는 적자 규모를 축소 발표했다. 사실상 재정 파탄 상태인 베네수엘라도 중앙은행이 경제지표 통계를 조작해 발표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포퓰리즘 정권에 의해 재정 파탄이 나는 나라들을 보면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즉, ‘포퓰리즘 정책 → 공무원 증원 → 복지 비용 과다 지출 → 현실을 속이기 위한 통계 조작 →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우에 정부가 발표하는 국가 통계는 신뢰성을 상실하고, 결국 정권은 붕괴되고, 나라는 헤어나기 힘든 경제 궁핍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이렇게 경제가 망해가는 나라들의 패턴을 분석해 보면 우리에게도 교훈을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나라는 통계를 조작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통계조작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첩경이다.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독재국가는 국가 통계를 있는 그대로 대외에 공표하기를 꺼려하거나 두려워한다. 자기의 민낯을 세계에 보이기 싫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그러하다.

현재 북한의 1인당 GDP를 포함해 북한의 모든 중요 국가통계(산업현황, 과학기술 현황, 무역 현황, 국민 보건 현황 등)를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단지 추측할 뿐이다. 남북협력을 진행시키면서 가장 먼저 북한에 요구해야 할 사안으로 북한 통계를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제공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남북협력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무엇을 얼마나 협력해야 좋은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통계의 신뢰성을 확보해 가는 길

이번에 개편된 ‘가계동향조사 통합작성방안(안)’을 보면서 국가통계 작성에 관심이 많은 통계학자인 필자로서 우리나라의 국가통계가 더 큰 신뢰성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통계 행정을 위해 개혁해야 할 점을 적어보기로 한다.

첫째, 국가통계의 정치적 도구화는 매우 위험하며, 이를 원천적으로 피하기 위해서 우선 통계청의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통계청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통계청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통계전문가들에 의해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통계는 국가 정책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기초 자료가 되기 때문에, 잘못된 통계로 왜곡된 정책을 실시할 경우 국가적 손실과 희생이 엄청나고, 민생의 고통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통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 장기 임기제를 실시하는 국가도 많다. 오스트레일아의 통계청장은 임기가 7년이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도 4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한다. 우리도 한국은행과 같이 통계청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해 줘야 하며, 4년 이상의 장기 임기제 보장, 국회 청문회 실시 등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

둘째, 통계청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통계청은 기획재정부 산하의 외청으로 차관급 청장이다. 이제 국가에서 필요한 통계는 재정, 경제 만이 아니라 환경, 과학기술, 산업, 노동 등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더 이상 기획재정부 외청으로 있지 말고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총리실 산하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차관급에서 벗어나 장관급 기관으로 격상되어야 하고 국무회의에 통계청장이 참석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데이터 경제시대이며, 공공 데이터가 모든 국가의 주요 정책을 주도하는 국면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의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작성하는 모든 공공데이터의 표준화와 개방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하여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산업 등의 발전을 가져와야 한다. 이를 위해 통계청이 통계 생산 뿐 아니라 통계의 관리와 이용에도 큰 역할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산업을 보면, 공공데이터가 제대로 개방되어 있지 않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전혀 발전이 안 되고 있다. 모든 부서에서 만드는 공공데이터를 통계청이 수합해 가칭 공공데이터센터를 만들고, 공공데이터를 이용하려는 모든 고객에게 표준화된 질 좋은 공공데이터를 개방한다면, 데이터를 가공하고 정보화하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고, 경제를 살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소득주도성장과 관련된 소위 ‘통계 논쟁’을 통해 정부가 이를 좋은 교훈으로 생각하고, 선진국형인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된 통계청 운영을 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는 데 통계청이 앞장 서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성현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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