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군사합의서’에 숨은 비수(匕首)
‘남북군사합의서’에 숨은 비수(匕首)
  • 고성혁 역사안보포럼 대표
  • 승인 2018.10.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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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란은 결과적으로 일본을 이 땅에 끌어들였다. 그로부터 일본이 1910년 한일합방을 선언하기까지는 16년이 걸렸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과정은 주도면밀했다. 단계 단계마다 문서로 공식화 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 1905년 한일협상조약(을사조약)을 거쳐서 한일병합에 이르렀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되는 결정적인 문서는 1905년 을사조약(원명은 한일협상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조선의 외교권은 일본에 박탈되었다. 조약에 서명한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을 우리는 ‘을사5적’이라고 부른다. 외교권을 상실한 조선은 그렇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역사는 돈다고 했던가? 특히 지난 9월 남북군사합의서를 보면 마치 구한말 한일의정서와 을사조약을 연상시킨다.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것처럼 남북군사합의서로 인해 휴전선 일대 국군은 사실상 훈련권을 박탈당하는 결과가 되었다. 우리 국군이 홍길동도 아닐진대 ‘적’을 향해 사격훈련조차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일의정서나 을사조약도 겉으로는 한·일간의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본질은 ‘조선 식민지’를 목표로 한 것처럼, 남북군사합의서 역시 북한의 대남전략이 숨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전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자유한국당 김영우 남북군사합의검증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0월 2일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맺은 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우리 군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아주 불평등한, 정전협정 이후에 우리 군이 맺은 가장 불평등한 위험천만한 군사합의를 했다”라면서 “남북군사합의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치 평화를 위한 합의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방어 위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우리 군의 모든 능력을 제거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지난 9월 19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각각 서명했다./ 연합

특히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와 관련해서는 “국방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군의 생명과 우리 국민들의 생명, 또 영토를 지키는 일인데 상대방의 선의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군사합의서는 ‘쌍방’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전협정 이후 1500여 회 이상 군사적 도발을 해 온 것은 북한이라는 측면에서 군사합의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위원장이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우리 군이 맺은 가장 불평등한 위험천만한 군사합의”라고 말한 부분은 인상 깊다. 그동안 군사적 도발의 주체는 북한이었음에도 ‘쌍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북한 군사 도발에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유엔사를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

남북군사합의서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북한이 깊숙하게 ‘숨겨놓은 칼’을 엿볼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를 흠집 내고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남북군사합의서 내용 상당 부분은 ‘유엔군사령부 권한’에 속하는 것이 많다. 유엔군사령부와 사전 협의 없이 ‘남북군사합의서’를 진행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남북군사합의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내 GP(guard post) 철수 건에 대해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미 상원 인준청문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축소는 유엔군사령부의 관할’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서는 ‘비무장지대 내 모든 활동은 유엔군사령부의 관할’이라고 못 박았다.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남북군사합의서는 유엔군사령부와 명백하게 충돌하고 있다.

남북군사합의서 1조 ①항에는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쌍방은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구축에 따라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합의한 판문점선언을 구현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실행 대책들을 계속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라고 언급한 부분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노린 듯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 다음날인 2009년 5월 26일 한국은 PSI 95번째 가입을 전격 선언했다. 38선 이남의 영해와 공해, 그리고 인도양 등 먼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북한 선박은 한국 해경이나 해군이 자유롭게 수색, 압수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2002년 미국은 스페인 해군에 요청해 남포항에서 북한무기를 싣고 시리아로 향하던 ‘서산호’를 해상에서 검문한 바 있다. 그 이후로도 북한 선적 화물선은 미국 정보당국에 의해 상시 추적당했다. 아마도 이런 것을 의식한 듯 ‘남북군사합의서’에 1항에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북군사합의서에는 미국 주도의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항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5조 2항과 3항은 앞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엔군사령부의 기능과 중복되거나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쌍방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③ 쌍방은 남북군사당국간 채택한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며, 그 이행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 평가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부분은 남북군사합의서의 ‘숨은 칼’이라 할 수 있다. 유엔사를 사실상 직접 겨냥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 역시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남북이) 대화를 계속하더라도 모든 관련 사항은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중개·판단·감독·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유엔사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론에는 반대되는 발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 남북군사합의서

6·25전쟁 이후 북한 정권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남한 내 유엔사 해체다. 따라서 유엔사 권한과 상충(相衝)되는 남북군사합의서는 북한이 의도하는 목적 그대로일 수 있다. 만약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나온 안건을 유엔사가 반대한다면 법적 효력도 문제될 수 있거니와 한·미간의 마찰이 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남북군사합의서는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전략에 그대로 이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남북군사합의서 문항 약 70%는 유엔사의 권한을 침해하는 조항들이다. 1조 2항의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동 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 금지구역 내에서 고정익항공기의 공대지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하였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해당 공역 (空域)은 ‘P-518’ 공역으로서 유엔군사령부 관할 공역이다. 특히 항공 분야는 우리 공군이 북한에 월등히 앞서 있는 부분이다. 북한의 재래식 전력을 무력화 시키는 아군의 수단은 공군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전방지역 작전 상황을 조기 경보하는 수단은 우리 공군의 조기경보기다. 그런데 남북합의서에 따르면 조기경보기 정찰비행조차 금지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 독소조항이다. 또한 북한은 열악한 상황에서 항공기 운영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쌍방’이 똑같이 금지한다면 불평등하기 이를 데 없는 협정인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한다고 남북군사합의서에 명시했다. 북한은 왜 남측 덕적도를 명시했을까? 그것은 덕적도는 해군 대잠수함작전에서 필수적인 대잠헬기의 전진기지다. 덕적도에서 비행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서해상에 북한 잠수정에 대한 감시 작전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우리 군의 손과 발을 묶은 독소조항

남북군사합의서 1조 ④항은 우리 국군의 손과 발을 묶은 어처구니없는 조항이다. ‘④ 쌍방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발적인 무력충돌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지상과 해상에서는 경고방송 → 2차 경고방송 → 경고사격 → 2차 경고사격 → 군사적 조치의 5개 단계로, 공중에서는 경고 및 신호 → 차단비행 → 경고사격 → 군사적 조치의 4개 단계의 절차를 적용하기로 하였다.’

이 조항 때문에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김성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일 외교 안보 통일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남북군사합의서를 언급하면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언제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이 있었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과거 여러 차례”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이 어떻게 우발적 충돌이냐? 모두 다 북한의 의도된 무력도발 침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단계 군사적 대응조치 부분은 더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2차 연평해전에서 ‘밀어내기’ 전술을 취하던 참수리 357 고속정은 북한의 조준사력에 침몰했다. 이후 북한의 해상 도발에 대해 군은 경고방송ㅡ경고사격ㅡ조준사격 3단계로 축소했다. 즉각 대응을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번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르면 이러한 즉각 조치는 힘들게 되었다. 3단계에서 5단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분계선 1km 이내 감시초소를 없애고, 5km 이내에서 사격 훈련을 중지하며, 서부전선은 20km, 동부전선은 40km까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은 국군의 손과 발을 꽁꽁 묶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북한이 과연 약속을 지키는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우리에겐 전혀 없다.

NLL을 무력화 시키는 조항들

4조 ③항은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듯하다. ‘③ 쌍방은 북측 선박들의 해주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 등을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이 조항으로 황해도 해주는 NLL로 사실상 해상 봉쇄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해주에서 서해로 나가려면 장산곶 끝까지 올라가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 해주 직항로라 함은 북한 화물선이 NLL을 가로질러 서해로 가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 때 5·24 조치의 일환으로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금지되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조치였다. 그런데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사과조차 받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남북군사합의서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주해협통과금지조치가 해제되어 버리는 상황이다.

남북군사합의서 3조는 NLL상에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치를 골자로 하고 있다.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남북군사합의서 내용 중 특히 문제가 많은 부분이다. 평화수역이니 공동어로구역이니 하는 주장은 남한내 좌파세력이 줄곧 주장하던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이라는 것도 북한의 경비계선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거리나 면적으로나 모두 우리가 불리하게 적용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군사합의서를 그대로 따른다면 6·25전쟁 이후 우리 해군이 피로 지킨 NLL 수역이 북한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무력화(無力化) 된다는 점이다.

종전선언·유엔사 해체·평화협정·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로드맵

2007년 군축과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좌파단체가 집회를 가졌다. 들고 나온 피켓에는 커다랗게 주한미군 철수를 적어 놓았다. 종전선언·유엔사 해체·평화협정 체결하라는 주장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2007년 그들의 주장은 오늘날 현실화 되고 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이 나온 이후 좌파단체들은 ‘종전선언’에 더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핵폐기에 대한 등가성의 상응조치는 종전선언이 이미 많이 얘기가 됐고 다른 상응조치들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종전선언에 목을 매는지 엿볼 수 있다. 종전선언 다음 단계는 바로 유엔사 해체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모 공중파 방송은 토론 프로를 통해 유엔사 해체의 연기를 피웠다. 2007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좌파단체의 로드맵처럼 흘러가는 듯하다. 유엔사가 해체되고 평화협정까지 이어진다면 주한미군의 주둔은 존립 기반이 없어지게 된다. 굳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만약 2020년 총선에서 국회의 3분의 2를 범여권이 장악한다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당장 실현될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고려연방제가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 고려연방제는 사실상 북한 주도의 남북합방이다. 문서 하나로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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