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재활센터 운영 장애인 자립 지원
직업재활센터 운영 장애인 자립 지원
  • 미래한국
  • 승인 200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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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신분으로 장애자 도와 장애인기능올림픽팀 참가 2위 개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조일묵(66)회장은 장애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장애인이 아니면서 어떻게 장애인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느냐? 오히려 장애인을 이용해 먹고 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냐?”라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회장은 지난 20여 년간 묵묵히 장애인의 복지증진과 권익보호를 위한 봉사활동을 해 지난 7일 제12회 일가상(一家賞) 시상식에서 사회공익부문상을 수상했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이며 농촌발전과 국민정신 계몽에 한 평생을 헌신한 故 일가(一家) 김용기 선생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수상 소감으로 조회장은 “남모르게 자원 봉사한 사람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상을 받게 된 것 같다”며 “그들과 함께 이 상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조회장에게 자원봉사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것이었다. 그가 한양공고에 다니던 54년은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다 폐허가 된 시기였다. 당시 그는 청소년적십자단에 가입, 고아원, 양로원 등에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농촌에서 회관 등을 지어주는 봉사를 했다. 대학 때는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청년봉사회장을 맡아 주말과 일요일에 명동성당 근처에 모여 있던 넝마지기들을 찾아가 얘기하며 전쟁 후 가족과 희망을 잃어 상처 입은 그들의 영혼을 격려하곤 했다. 조 회장이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 81년이다. 1981년은 세계장애인의 해로, 당시 일본에서 세계장애인기능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한국이 처음 참가하게 됐는데, 참여할 선수를 모집하는 일을 조회장이 하게 됐다. “1966년 일반기능올림픽 창설에 제가 관여를 했습니다. 그 뒤 14년간 기능올림픽을 진행하며 세계제패를 3번이나 했죠. 이런 경험 때문에 제가 세계장애인기능대회를 위한 한국실무위원장이 됐습니다.” 그래서 참가한 그 대회에서 한국은 93개 참가국 중 2위를 차지했다. 조회장은 장애인기능올림픽을 치르며 기능을 통한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이 장애인복지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후 장애인 직업재활 센터, 중고품 재활용 운동인 굿윌(Good Will) 프로그램 등을 추진했다. 이렇게 발을 디딘 장애인 봉사활동은 계속 이어져 84년에 조 회장은 제8회 서울장애인올림픽(1988년 개최) 조직위원장이 된다. “당시 장애인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형편없이 낮았습니다. 사람들은 ‘장애인이 무슨 올림픽이냐’라고 말하고, 서울올림픽 조직위도 저희를 거부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IPC(세계장애인올림픽 위원회)는 미국도 84년에 있던 제7회 장애인올림픽을 제대로 못 했는데 한국이 할 수 있겠냐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 폐막 후 치러진 장애인올림픽은 10만명이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개·폐회식을 치렀고, 18개의 종목은 무리 없이 진행돼 역대 장애인올림픽 사상 가장 규모가 컸고 잘된 행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회장은 또 올림픽 후 남은 100억원의 수익금을 ‘복지체육회’란 기금으로 조성, 장애인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 연금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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