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프라하의 도쿄바나나.... 다섯 가지 오미야게 과자를 따라 걸어보는 일본 과자로드
[신간] 프라하의 도쿄바나나.... 다섯 가지 오미야게 과자를 따라 걸어보는 일본 과자로드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0.30 0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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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남원상은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동양사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여러 스포츠신문, 온라인 매체에서 객원기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글쟁이 생활을 시작했다. 졸업한 뒤 동아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국제부 등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재직할 당시 일본 사회, 문화 등을 다룬 블로그를 운영해 방문자 수 1,000만 명 이상을 기록한 파워블로거였으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일본 문화 전문기자로 선정돼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타이어, 코오롱에서 브랜드 스토리 제작, 경영진 연설문 작성 등을 맡았다. 현재는 UCI코리아 소장으로서 도시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과자를 선물하는 나라 

경주에는 황남빵이, 통영에는 꿀빵이, 천안에는 호두과자가 있다면, 일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오미야게 과자’(지역 명물과자)가 있다. 황남빵이든 꿀빵이든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어디 그 맛이 직접 가서 먹는 것만 할까. 어느 지역에 가서 유명한 과자를 한 상자 해치우고도 모자라 바리바리 사 들고 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건 그런 맛이 있어서고, 그런 재미가 있어서다. 

일본에는 이런 ‘과자를 선물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타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올 때에도, 출장을 다녀올 때에도 양손에는 어김없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과자 상자가 들려 있는 곳이 일본이다. 이를 가리켜 ‘오미야게お土産 과자’라 한다. 오미야게에서 お(일본어에서 명사, 동사 등의 앞에 붙여 존경이나 공손함을 표현한다)를 빼고 한자만 읽으면 ‘토산’, 즉 어떤 지방에서 특유하게 나는 물건을 뜻한다. 오미야게의 뜻이 그러하다면 오미야게 과자란 어떤 지방에서 특유하게 나는 과자를 뜻할 터. 경주 황남빵이라든가, 통영 꿀빵이라든가, 천안 호두과자 등은 모두 한국식 오미야게 과자가 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오미야게’가 갖는 의미는 좀 더 복잡하다. 이는 본래 신사 참배를 위해 방문한 여행지에서 받은 부적이며 특산품 등을 가리키던 말로, 신이 내린 은혜를 공유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준 데서 비롯됐다. 요컨대 ‘오미야게’에는 지역 특산품이라는 뜻에 선물이라는 뉘앙스가 더해져 있다. 오늘날에는 신사 참배만이 아니라 여행이나 출장으로 방문한 타지에서 사 온 물건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풍습으로 굳어졌다. 또한 타지에 사는 지인이나 친척들을 방문할 때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특산물을 선물하는 것도 오미야게에 속한다. 쉽게 말하면 기념품이나 토산품을 선물하는 것이 오미야게인데, 이렇게 선물하는 것이 과자로 굳어짐에 따라 ‘오미야게’ 하면 ‘오미야게 과자’를 가리키게 됐다. 

이 책에서 다룰 소재가 바로 오미야게 과자다. ≪프라하의 도쿄 바나나≫는 야쓰하시(교토), 도쿄 바나나(도쿄), 시로이 고이비토(홋카이도), 우나기 파이(시즈오카), 히요코(후쿠오카) 등 일본 각지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오미야게 과자를 타래 삼아 일본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비단 이들 오미야게 과자가 갖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면만이 아니라 산업적인 면, 즉 오미야게 과자 제조사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작은 상점에서 시작해 오미야게 과자로 성공을 거두면서 탄탄한 중견기업이 된 제조사들 이야기는 일본 시장이나 기업에 대한 소묘이기도 하지만 가파른 경제성장, 버블경제 붕괴로 요약되는 일본 근현대 경제사에 대한 소소한 각주이기도 하다. 

과자의 신을 모시는 나라 

일본에서 과자가 차지하는 위상은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애초에 과자(일본에서 과자는 떡, 만주, 양갱에서부터 케이크, 페이스트리, 초콜릿, 사탕까지 포괄하는 넓은 단어다)는 신사에 바치던 신성한 음식에서 출발했으며, 과자의 신을 기리는 신사까지 있다니 말 다했다. 심지어 1장에 등장하는 ‘이치몬지야 와스케’라는 과자점은 서기 1000년에 세워졌으니 무려 천 년이 넘도록 운영되고 있다.

이뿐인가. 역사가 100년이 넘는 과자점이 수두룩한 데다, 이들은 아무리 많은 주문이 쏟아져 들어와도 맛이 변할 우려가 있다며 분점은커녕 대량생산까지 고개를 단호히 내젓는다. 과자 하면 흔히 불량식품을 떠올리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오미야게 과자만으로 하나의 산업이 일궈졌는지도 모른다. 일본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도쿄 바나나’라는 이름은 익숙하지 않은가.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마다 손에 도쿄 바나나 한 상자씩은 들려 있게 마련이니, 이 작은 바나나 모양 빵을 한 번쯤은 먹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왜 도쿄 ‘바나나’일까? 지역 명물과자답게, 오미야게 과자는 지역색을 반영하는 재료를 쓰거나 해당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가령 한국에서도 익숙한 센베이 과자의 일종인 ‘야쓰하시’는 천 년 고도 교토에서 300년이 넘게 먹어온 오미야게 과자다. 얇은 쿠키와 화이트 초콜릿으로 이루어진 ‘시로이 고이비토’는 그 하얗고 반듯한 모양새며 설산이 박힌 패키지 디자인에서 눈雪의 고장으로 유명한 홋카이도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탄광촌 광부들의 간식에서 출발한 ‘히요코’는 후쿠오카산 밀가루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장어 파이를 뜻하는 ‘우나기 파이’는? 설마 정말로 장어가 들어갈까, 싶겠지만 정말로 장어가 들어간다. 다만 분말 형태로. 장어로 유명한 도시(하마마쓰)에서 만들어지는 오미야게 과자다. 

이들에 비하면, 도쿄 바나나는 별종에 가까워 보인다. 잘 알려져 있듯 바나나는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재배된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등지에서만 일부 재배되는 정도. 그렇다고 해서 도쿄에서 생산되는 과자도 아니다. 서울이 그렇듯 도쿄도 지대가 높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인접한 다른 도시에 공장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도쿄 바나나는 도쿄를 상징하는 오미야게 과자로 자리 잡았다. 지역색이 부재한 대도시 특유의 감수성을 오히려 지역색으로 내세운 덕분이다. 

말하자면 오미야게 과자를 맛본다는 것은 지역색이 뚜렷한 일본 각지를 맛보는 일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도쿄 바나나≫가 한편으로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또 한편으로는 저자의 오랜 이력이었던 기자의 시선으로 이들 다섯 가지 오미야게 과자를 따라 다섯 개 도시를 찬찬히 걸어보는 여행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자만으로 하나의 산업을 일군 나라 

일본 오미야게 과자 시장 규모는 연간 9,400억 엔을 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로 10조 원에 가깝다. 2018년 서울시 복지 예산이 10조 원임을 상기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다. 1년 동안 오미야게 과자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 인구 천 만 도시의 한 해 복지 예산에 버금가는 것이다. 심지어 오미야게 과자는 오로지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다. 시즈오카 오미야게 과자를 홋카이도나 후쿠오카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고집스러움에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더해지면서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언제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는 과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선물로서나 기념품으로서 갖는 의미가 퇴색되지 않은 것이다

무엇 하나 성공을 거두면 줄줄이 분점이 생겨나고 온라인이며 홈쇼핑이며 대량 판매 라인이 세워지는 한국을 떠올려보면 실로 놀랄 만한 광경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른 양국을 단순히 비교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이들 오미야게 과자 제조사들이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시대에 조응하는 신제품을 계속 내놓으면서 성공을 이어가는 과정은 분명 한국에서도 곱씹어볼 만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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