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이용하려는 중국과 북한
유엔을 이용하려는 중국과 북한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11.01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연합(UN)의 다자주의 질서와 미국의 우선주의 노선이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의 양상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유네스코 탈퇴, 기후변화협약 탈퇴에 이어 인권이사회의 탈퇴는 향후 미북회담의 전개에 따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의 노력과 유엔사 해체 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8년 제73차 유엔 총회 모습

북한의 유엔사 해체 주장에 미온적이었던 유엔 한국대표

지난 10월 73차 유엔 총회에서 북한은 유엔사 해체와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한국의 유엔사는 괴물과 같은 조직으로, ‘유엔’이라는 이름을 잘못 사용해 유엔 헌장의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유엔의 활동이나 프로그램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통솔권도 실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1975년 열린 30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해 유엔사를 해체하고 모든 미군을 철수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됐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당시 유엔 총회는 유엔사 해체 등을 담은 북한 측 결의안과 남북 대화 촉구 등을 명시한 한국 측 결의안을 모두 통과시킨 바 있다. 여기에 우리 한국대표 측의 반론은 미약했다. ‘유엔사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지금 6위원회는 적절한 회의가 아니’라는 것이 전부였다. 미국 대표부 측은 침묵했다. 유엔사가 실질적으로는 주한미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공세에 섣불리 말려들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북한 유엔 대표는 “필수적인 약품과 엑스레이 장비, 심지어 스포츠 장비와 같은 인도적 원조 품목들의 운송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로 금지돼 있다”며 “제재가 북한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인권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제3위원회에선 인권 문제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이 되풀이됐다.

북한이 유엔에서 자신의 입장을 과거와 달리 자신감을 가지고 피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무래도 미국이 미북회담을 추진하고 있고, 동시에 유엔에 대해 미국이 거리를 두는 점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한국이 남북군사협상을 통해 평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북한은 유엔에서 적극 활용할 전략인 것으로도 관측된다.

북한의 이러한 전략은 유엔이 평화와 인권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는 입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외교통상부 인권대사를 역임했던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은 국가 간의 평화 질서 수립이 목적이었지만, 유엔 헌장으로 수립된 국제연합(UN)은 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면서 개인의 인권과 평화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인식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인권탄압을 하는 독재국’이라는 사실에 유엔 관계자들이 눈뜨면서 ‘개인의 인권 없는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집대성되어 등장한 것이 바로 1948년 12월 제3차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이다. 유엔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 인권과 평화가 하나의 결속된 아젠다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입김으로 분리되어 나가려는 징조를 보인다는 점에 있다.

전 방위로 유엔인권위 압박하는 중국

올해 3월 영국의 가디언지는 유엔의 인권 활동에 대한 중국의 집요한 압박과 방해공작을 폭로했다. 대표사례가 유엔 제5위원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었다. 이 위원회는 유엔의 행정과 예산을 담당하는 곳인데, 미국에 이어 유엔 분담금이 두 번째로 많은 중국이 인권 분야에 대한 예산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지가 밝혔던 것. 유럽위원회 유엔 전문가 리처드 고완은 “중국은 유엔 인권 활동을 과거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유엔 포럼에서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 간 ‘조화’를 강조하며 자신만의 의제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유엔 인권위 회의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권안 제안을 상정하며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인권도 그러한 상황을 감안해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기금도 2억 700만 달러(2015~2016년 기준)에서 1억 9050만 달러(2016~2017년 기준)로 줄었다.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 고등판무관은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지지가 부족하다”며 “이 직위를 유지할 수 없어 올해 사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제이드 판무관은 시리아 민간인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의 방해로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는 해당 포럼이 인권을 논의하기 적합한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절차적 투표를 요구했다.

유엔 외교관들도 같은 증언을 내놓고 있다. 루이스 차보노 유엔 인권감시국장은 “제5위원회는 인권을 위한 전쟁터가 되었다”며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인권과 관련된 것들에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보노는 “유엔 안보리에서 인권 문제에 대한 사업을 결의한다고 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관련 재원을 고갈시켜 결국 사업을 무산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유엔 주재 서방 외교관도 “중국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유엔에서 인권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유엔 안건에서 표결에 이기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4년 유엔이 총회 의결로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인권탄압자로 제소하고 3년 연속 유엔 안보리에 제제 권고를 했을 때, 중국의 입장은 명확했다. 당시 추이 유엔 중국대사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다른 어떤 나라도 북한의 내정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나름의 입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인권은)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ICC에서건 다른 어디에서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려 한다면 건설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러한 주장은 유엔이 평화와 인권을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문제로 보는 입장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어서 결국 유엔을 망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엔본부

유엔의 인도주의가 평화에 실패하는 이유

“유엔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유엔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렇게 말했다. 유엔의 총 예산 중 22%를 홀로 지불하는 미국으로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사사건건 미국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시리아 봉쇄안을 거부했다. 대신 시리아 정부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유엔의 결정이 이뤄졌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2017년 영국 가디언지가 보도한 유엔의 시리아 정부 지원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유엔 구호자금 수천만 달러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는 알 아사드 대통령 측을 통해 시리아에 지원되었지만, 이 자금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시리아 정권의 손에 들어가 반군과 반군에 협조한 주민들을 학살하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유엔 기구들은 미국과 EU의 제재 리스트에 있는 시리아 정부 부처들과 심지어 시리아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운영하는 구호단체에 총 5400만 달러(약 640억 원)를 보냈지만 자금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알 아사드 정권 국방부의 통제 하에 있는 시리아 국립혈액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500만 달러(약 56억 원) 이상을 지출했다. 시리아 전역에 100여 개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시리안 아메리칸 메디컬 소사이어티(SAMS)’ 관계자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국방부는 혈액은행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유엔의 국제 구호로 조달된 혈액이 반군과 주민들을 학살하는 정부군의 부상병들을 위해 쓰여 민간인에게 혈액 공급이 안 되자 “민간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보급품 밀반입을 감행한 의료진과 활동가들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되고 있다”라고 관계자는 탄식했다.

유엔 주재 미대사를 역임했던 존 볼튼 보좌관은 2016년 유엔의 날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워싱턴타임스에 기고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2년 동안 시리아 내전을 해결하지 못한 사실이 유엔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시리아 내전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으며 생산적인 기업과 재산이 수없이 파괴되었으나 안보리는 분쟁 해결에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제재 강화나 내전 해결을 위한 다른 중요한 조치를 봉쇄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세 차례나 된다.”

유엔과 충돌하는 미국, 反美의 도화선 될 수도

지난 9월 20일 권위 있는 세계 유엔 전문가들이 참석한 경희대의 세계평화의 날 기념(Peace BAR Festival 2018 국제학술회의에서 토마스 위즈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유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유엔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했고,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국가 주권을 강조하며 유엔과 같은 다자주의적 국제기구와 이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무시, 거부하고 있다.”

위즈 교수의 주장은 유엔 내부가 복잡한 양상으로 갈등이 깊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UN 없는 세계?(A World Without the UN?)'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에서 위즈 교수는 “유엔이 개혁을 통해 보다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멸종한 공룡들처럼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지적은 미국의 ‘America First’라는 미국 우선주의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뿐만 아니라 WTO마저 탈퇴하려는 의사를 보이는 시점에서 미국과 유엔의 갈등은 남북 간, 미북 간에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비핵화게임’에 어떻게든 중요한 영향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다.

세계 평화와 인권을 증진시킨다는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로 안전보장이사회를 만들었다.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참여하고 있다. 만장일치여야만 결정을 볼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회의는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지만, 결국 인권과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유엔의 각성과 방향에 러시아와 중국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이 유엔에 대해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마냥 비판할 수도 없는 이유다. 이러한 유엔이 미북회담의 결렬로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우려된다. 시리아 사태처럼 중국과 러시아의 입김 하에 유엔이 미국과는 다른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반미 운동의 한 축으로 유엔이 이용되는 사태가 오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