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간의 본능...우리는 어떻게 자유의지를 갖도록 진화했는가
[신간] 인간의 본능...우리는 어떻게 자유의지를 갖도록 진화했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0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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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케네스 밀러는 브라운대학 생물학 교수로 세포생물학과 일반생물학을 가르친다. 세포막 중에서도 엽록체 틸라코이드막의 구조와 기능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해왔다. 가톨릭교 신자임에도 지적 설계론을 포함한 창조 이론에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과학 논문과 리뷰는 《사이언스》, 《셀》, 《네이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의 선도적 학술지에 발표된 바 있다. 조지프 러빈과 함께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생물학 교과서를 공동으로 저술했다. 

밀러는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콜로라도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 교수를 거쳐 1980년부터 브라운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인 『다윈의 신을 찾아서(Finding Darwin’s God)』(1999)에서는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과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단지 하나의 가설(Only a Theory)』(2008)에서는 지적 설계론과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에 관해 다룬 뒤 그 내용이 미국 내 과학 풍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서술했다.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지적 설계론을 교육 과정에 넣어 가르치려다가 2005년, 아홉 명의 학부모가 이에 반대하며 벌어진 재판이다. 재판 결과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라 사실상 종교이며, 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는 것은 정교 분리에 대한 공격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밀러는 이 재판에 원고 측 전문가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미국과학진흥회의 과학대중참여상(AAAS Award for Public Engagement with Science), 진화연구학회의 스티븐 제이 굴드 상, 빌라노바대학의 그레고어 멘델 메달, 노트르담대학의 라에타레 메달(Laetare Medal) 등을 수상했다.
 

인간은 진정 무의미한 생존 기계에 불과한가? 

진화론은 명실상부 현대인의 교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생물학, 사회학, 언어학, 철학, 페미니즘, 심리학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다윈이라는 거인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화론에 불안과 의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멍청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은 모두 종교적 도그마에 사로잡힌 무지한 창조론자들인가? 브라운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케네스 밀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자신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지적 설계론’, 즉 이 거대하고 복잡한 우주가 어떤 지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됐다는 이론의 허점을 지적하는 대중적 활동으로 유명하고, 미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생물학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한 밀러는 이 책 『인간의 본능』에서 왜 어떤 사람들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진화론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오늘날 진화가 일부 사람들에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이 하등동물과 같은 기원을 공유한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 윤리, 사회, 의식, 자유의지 같은 인간 본성이 단순히 진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진화심리학의 주장은 일부 사람들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저자는 진화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유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차지한 위치가 얼마나 숭고한지 깨닫게 된다고 역설한다. 진화의 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인간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아무리 봐도 없지만, 이 사실은 결코 인간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과 종교가 우주와 우주 속 인간의 자리를 이해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갈 수 있다는 저자의 신념과도 이어진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꽤 많지만 그 가운데서 ‘자유의지’이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은 저자가 생물학 교수인 동시에 가톨릭 신자이다 보니 진화를 인문주의적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인문학과 과학이 적절히 배합된 책 역시 흔치 않은데, 이 책은 과학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레퍼런스가 풍부하다. 과거와 현대의 문학 작품, 철학 고전, 과학 명저 등을 고루 언급하는 박학다식과 치우침 없이 폭넓은 저자의 교양이 돋보인다. 

진화와 자유의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1장 ‘숭고한 비전’에서 인간의 자리를 정의해주던 이야기를 잃은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이야기하며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갖는 특별함을 언급한다. 저자가 『종의 기원』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책 결론에서 드러나는, 다소 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다윈의 자연관 때문이다. 다윈은 각각의 생명체가 고유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선형적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에 일종의 ‘숭고함’을 부여한다. 자연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생명이 온갖 위기에도 끝없이 진화하고 생존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또한 진화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기제가 몇몇 개체로부터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자연의 복잡성을 추출해냈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다윈이 진화론에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시적인 숭고함을 불어넣으려고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다윈이 진화론의 설득력 여부를 떠나 적어도 사람들에게 진화론이 숭고하게 여겨지지는 않으리라 염려했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단일한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게 된 것이라면 인류를 짐승들로부터, 심지어 단세포 생물로부터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실제로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의외로 진화론 자체의 합리성과는 관련이 없는 편이다. 오히려 다윈이 염려한 대로,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인간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가깝다. 예컨대 1925년 7월 21일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있었던 소위 ‘원숭이 재판’은 지식과 합리성을 갖춘 진화론과 무지하고 미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로 묘사되곤 한다. (당시 과학 교사 존 스콥스는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테네시 주 법률을 어기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맞붙은 재판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놓치는 점은 재판의 근거가 된 ‘버틀러 법’, 즉 공립학교에서는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의 버틀러 법이 진화론 자체를 가르치는 걸 막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종의 기원』은 학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도 상관이 없었다. 다윈이 그 책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틀러 법이 정말로 막고 싶었던 건 ‘인간’이 다른 온갖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생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었다.

진화론은 정말 ‘냉혹한 독트린’인가? 

진화론에 대한 현대인의 이 같은 불편함과 거부감은 신앙의 위기와도 직결되는데, 저자는 작가 이언 매큐언이 2005년에 발표한 소설 『토요일』을 통해 이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토요일』에 등장하는 매슈 아널드의 시 〈도버 해협〉은 현대과학으로 인한 신앙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저자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메릴린 로빈슨의 에세이집 『아담의 죽음』을 언급하며, 진화론을 ‘냉혹한 독트린’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실감과 우려를 포착한다. 작가 로빈슨이 보기에, 우리가 그저 DNA의 운송수단에 불과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모든 미술과 음악, 문화, 심지어는 과학마저도 아무런 의미나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로빈슨은 이렇게 말한다. “현대 사상이 아담의 죽음을 선언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이 파괴됐는지는 한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진화론이 우리의 행동이 이미 정해져 있다거나,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으며, 인간을 한낱 동물, 마음이 없는 물질, 혹은 자연이 만들어낸 우연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시키지도 않고, 우리의 삶에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고 폄하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들에서 자신이 그렇게 믿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론을 둘러싼 현대과학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2장 ‘진화는 신기루인가’에서는 진화 자체가 과학적으로 왜 합리적인지 화석 기록과 유전자 게놈 분석을 통해 설명하며, 3장 ‘우연과 경이로움’에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로 대표되는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저자의 입장에서 부연 설명하며 진화론의 역사를 정리한다. 4장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주로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에 할애된다. 모든 생물의 심리나 행동 양상을 설명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는 진화심리학이 점점 더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왜곡되고 과장된 연구가 등장하게 된 사례들과 진화심리학의 한계에 대한 비판들이 제시된다. 

5장 ‘영장류의 정신’에서는 인간의 뇌, 정신 기능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 6장 ‘의식이라는 난제’에서는 인간의 의식을 물리적으로 환원해 진화의 부산물로 설명하는 과학자들을 소개한다. 7장 ‘아이, 로봇’에서는 진화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 ‘자유의지’에 대한 현대 과학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며 진화와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8장 ‘중앙 무대에 선 인류’에서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지나 이른바 ‘인류세’로 접어든 현대에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진화론은 곧 ‘아담의 죽음’인가? 

진화론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을 무의미한 생존 기계처럼 느껴지게 만들곤 했다. 그 사람들에겐 성서의 아담 같은 존재가 인간의 숭고함을 지켜주는 면에선 진화론보다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진화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인간 자체는 물론 인간의 정신 기능이나 의식, 자유의지를 진화의 산물로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인류를 다른 생명체로부터 구별하고 인류가 지구상에서 가지는 의미 역시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다윈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진화에서 숭고함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진화론을 만능 이론처럼 생각하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진화가 인류에게 플랫폼을 마련해주긴 했지만 실제로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가능성을 펼친 건 인류 자신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화는 단선적인 진보 과정도 아니고 인류가 진화의 최종 목표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화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인류는 우연히도 전례 없던 생태 지위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었다. 우주가 최초로 스스로의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한 자리를 말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자기인식을 하게 된 우주가 국소적으로 체화된 존재”인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담의 여정을 구체적인 부분까지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폄하하기는커녕 우리 각자를 정말로 귀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 고귀한 존재로 격상해준다. 바로 생명 그 자체의 유전적, 생물학적, 문화적 유산이다. 진화론은 아담의 죽음이 아니라 아담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진화론을 통해 우주에서 우리 인간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새의 날갯짓에서 시를 읽어내기 위해 날개 속의 혈관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알아서 해로울 것도 없다. 반대로 자연을 더 많이 알면 실재라는 마법에 접근할 길이 새로 열린다”던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시인 로알드 호프만의 말처럼,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이 세상은 더욱 경이롭고 숭고하게 다가온다. 진화의 손길로 빚어진 생명체가 된다는 것의 아름답고 특별한 의미를 탄탄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설명하는 이 책은, 진화론이 불편한 사람 그리고 진화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흥미롭고 유용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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