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김정은에 면죄부 줄까?
프란치스코 교황, 김정은에 면죄부 줄까?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8.11.06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수회 출신 교황, 한국 정의구현사제단·중국 공산당 등에 친밀한 태도 보여

한국 언론들은 지난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방북 초청을 사실상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한 김정은의 방북 초청 메시지를 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능하다(Available)’고 말했다는 부분을 근거로 삼았다.

한국 언론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수장이면서,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도덕성이 가장 뛰어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전 세계 12억 8000만 명의 가톨릭 신자들은 현 교황의 행태를 두고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황청을 공문 방문중인 문재인 태통령이 18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환담했다 / 연합
교황청을 공문 방문중인 문재인 태통령이 18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환담했다 / 연합

중국 공산당의 주교 임명 허용한 예수회 출신 교황

세계 천주교 성직자들은 현지 국가의 국적이면서 동시에 바티칸 소속이다. 바티칸의 수장인 교황은 세계 각국의 천주교 성직자들을 인정하고 임명한다. 이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인정하는 종교적 활동이자 권리이다. 그러나 교황이 가톨릭 성직자를 임명하는 것을 거부하는 나라도 있다. 북한과 중국 등이다.

바티칸과 중국 간의 갈등은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한 뒤부터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마오쩌둥이 정권을 잡은 뒤부터 종교 활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자 중국 공산당은 1957년 당 산하에 괴뢰 천주교 단체 ‘중국천주교애국회’를 설립하고, 여기서 신부 서품과 주교 임명을 했다. 실제 임명은 중국 공산당이 했다. 때문에 바티칸은 중국 공산당 선전조직인 ‘중국천주교애국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바티칸이 인정하는 중국 천주교회는 대만에만 있었다. 중국 주재 바티칸 대사관은 1947년 중국 교구가 생길 때 난징 지역에 설치됐다가 1949년 본토에서 쫓겨난 뒤 대만 타이베이로 옮겼다. 바티칸은 1949년 이후 70년 동안 대만만을 천주교회가 있는 중국으로 인정했다. 중국 공산당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펴고, 1970년대 이후 미국마저 대만을 등졌을 때도 바티칸은 대만과의 수교 관계를 유지했다.

1978년 폴란드 출신으로서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하고, 그를 적극 지지했던 반공주의 가톨릭 단체 ‘오푸스 데이’가 득세하면서, 바티칸과 중국 간의 관계가 정상화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이후로 즉위한 교황들도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려면 신부와 주교를 바티칸이 임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하지만 2013년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로 예수회 회원이었다. 세계 각국의 좌파 언론들은 그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항상 검소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촉구하며,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격찬했다.

이런 칭찬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이민자 유입을 막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을 비난했다.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향해 화학무기 공격을 가한 뒤 미국이 이를 공격하려 하자 반대했다. 또한 북한과 이란, 쿠바, 시리아, 중국, 러시아 같은 전체주의 독재정권들에게는 대단히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의 전통적 가치를 부정한 것은 이밖에도 동성애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터뷰, 칠레에서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했다가 적발된 후안 바로스 주교 편들기, 낙태한 여성들에게 사제들이 무기한 용서를 해주라는 지시 등은 가톨릭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다.

기존 가톨릭 신자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을 준 내용은 “서방 진영은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아니다. 바로 중국 공산당이 신부 서품과 주교 임명을 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관련 내용은 2017년 10월 반공매체 ‘대기원시보’에서 처음 나왔다. 2018년 2월에는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언론들이 “바티칸이 오는 3월 중국 공산당의 주교 임명을 허용하는 협약을 맺고 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지하 가톨릭은 강력히 반발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외면했다. 이와 관련된 마지막 뉴스는 지난 9월에 나왔다. 중국 공산당이 가톨릭 사제를 임명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바티칸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중국 정부가 2014년 자체 임명한 쓰촨성 청두의탕 유안게 주교를 교황청은 승인했다. 주교 임명은 교황의 고유 권한이다.
중국 정부가 2014년 자체 임명한 쓰촨성 청두의탕 유안게 주교를 교황청은 승인했다. 주교 임명은 교황의 고유 권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속한 예수회의 목표는 ‘신성로마제국 부활’

바티칸 수장이 전체주의 독재정권에 교회의 권한을 양보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1648년 30년 전쟁 끝에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킨 ‘베스트팔렌 조약’ 체제가 시작된 이후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는 교회가 독재정권과 손을 잡은 적은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런 행태를 바티칸 전체로 연결시키면 이해가 어렵다. 그러나 그가 평생 충성을 다했던 예수회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1534년 이그나시우스 로욜라가 설립한 예수회는 사실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말살하기 위해 만든 종교군대 성격의 조직이었다. 현재 국내외의 예수회는 스스로를 “16세기와 달리 지금은 영성활동과 대민봉사활동을 병행하는 수도회”라고 주장하지만, 과거는 달랐다. 실제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예수회 활동이 금지된 나라들이 적지 않았다. 종교의 탈을 쓰고 현실 권력 장악에 열을 올리면서, 민주주의와 왕정을 붕괴시키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수회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지적은 프랑스 역사학자 에드몽 파리가 쓴 책 ‘예수회의 비밀 역사’에 나와 있다. 에드몽 파리는 이 책에서 “예수회는 로욜라가 로마 가톨릭의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이루려 창설한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그 목표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 교회를 건설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5세기부터 천년 동안 유럽을 사실상 지배했던 신성로마제국 정치체제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회가 실제로는 현실 정치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는 주장은 에드몽 파리 외에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예수회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대단히 좋은 편이다. 단적인 예로 서강대학교와 정의구현사제단이 그렇다.

한국 예수회의 간판 ‘정의구현사제단’과 서강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 당시 서강대를 비공식적으로 찾았다. 이곳에 있는 예수회 사무실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을 만났다. 교황은 당시 제주해군기지 반대활동을 벌이다 온 김성환, 김정욱, 이영찬 신부, 박동현 수사 등을 만나면서 “여러분은 최고(또는 최후)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격려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으로 유명한 문규현 신부는 이튿날 페이스북에 “한국 예수회 형제들을 찾아주신 교종, 특히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다 구속, 연행, 부상, 재판 등을 당해온 강정마을 예수회 공동체 신부님들과 수사님을 격려하셨다”고 적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했던 예수회는 국내 우파 진영에도 잘 알려진 ‘해방신학’을 중남미에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외 좌파 언론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1970년대 예수회의 해방신학 전파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가 마르크스 이념에 너무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교황과 예수회의 좌경화 활동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을 격려한 것은 그 또한 역시 예수회 회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정의구현사제단은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뿐만 아니라 사드 배치 반대, 탈원전 정책 촉구, 연합사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 미북 평화협정 체결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한국 예수회의 본산이 있는 서강대는 1948년 한국 가톨릭이 발의하고 당시 교황 비오 12세가 승인하면서 설립을 추진, 1960년 예수회가 개교한 대학이다. 외부에서 보는 서강대는 국내 명문 사립대이자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예수회의 횡포를 문제 삼는 학교 구성원이 적지 않다. 관련 이야기는 2016년 9월부터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강대는 당시 남양주에 제2캠퍼스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 그런데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한 예수회 신부들이 제2캠퍼스 건립을 계속 반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때 서강대 학교법인 정관 내용도 알려졌다. 법인 이사장은 반드시 예수회 신부가 맡아야 하고, 이사진 12명 가운데 6명이 예수회 출신으로 채워져 있어 사실상 예수회가 비영리 학교법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예수회에 대한 서강대 학생과 교직원들의 불만은 제2캠퍼스 건립이 무산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7년 8월에는 서강대 교수와 교직원 등 20여 명이 공금을 횡령·유용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학교 측이 이를 10명으로 축소해 재단 이사회에 보고한 사실까지 드러나 학교 명예가 실추되기도 했다. 서강대 일부 학생들은 이런 문제가 모두 예수회의 ‘불투명한 재단 경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 초청 거절한 교황, 방북하면 김정은 정권 용서할까?

아무튼 예수회는 순수한 가톨릭 수도회의 모습보다는 현실 정치와 연관이 있는 활동, 특히 좌익 진영에 힘을 보태는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한 말과 비슷한 시기의 행동은 전체주의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교황이 김정은의 공식 방북 초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날 대만의 방문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바티칸 방송은 1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만 정부의 초청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된 이후에도 유럽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단교하지 않았던 바티칸이 대만 정부의 공식 초청을 거절한 것이다. 대만 언론들은 “천제러 부총통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방문 초청을 했지만 바티칸 측은 ‘현재로서는 교황의 대만 방문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대만 외교부는 “교황은 세계 종교와 도덕성의 영수로서 숭고한 위상을 갖고 있다”면서 “교황은 2013년 즉위한 뒤 30여 개 나라를 ‘사목 방문’했다”며 대만 방문을 계속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대만 정부의 바람을 충족해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바티칸과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면 “공산당의 주교 임명을 받아들인 바티칸은 조만간 중국과 공식 수교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바티칸이 중국 공산당과 수교를 할 경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해야 하는데 이는 곧 대만과의 단교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국가는 현실적 이익 때문에 대만과 단교를 했다. 그러나 바티칸은 종교를 근간으로 한, 도덕성을 중시하는 나라다. 이런 곳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만과 단교를 하고, 지금도 수십만 명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탄압하는 중국 공산당의 전체주의 독재정권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가톨릭 사회의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행동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바티칸이 내놓은 답변을 보면, 김정은이 초청만 한다면 교황이 방북할 가능성은 적지 않아 보인다. 바티칸은 “김정은의 공식 초청이 온다면 방북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이 방북하면 김정은 정권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조선노동당의 괴뢰단체를 앞세워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교황이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김정은을 정상적인 국가 지도자로 취급하며 축복을 할 경우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동시에 국제사회가 강력히 추진 중인 북한 비핵화 또한 “주권을 가진 정상적인 국가를 강대국들이 위협하는 것”이라는 김정은 정권의 대외 선전에 교황의 메시지가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20만 명 이상의 자국민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인권을 유린하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로 한국, 일본 등 주변국을 위협하는 범죄 집단 같은 정권을 정상적인 정부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대남적화통일 전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꼴이 돼 1930년대 교황청이 독일 나치당의 협박에 굴복해 가톨릭 정당을 해산하라고 명령한 일에 비견될 정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