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바라보는 한국 ‘한국은 이미 친중 국가’
일본에서 바라보는 한국 ‘한국은 이미 친중 국가’
  • 홍형 통일일보 논설주간
  • 승인 2018.11.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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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문명사적 전환기가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한정된 지면에 적는 건 힘든 일이다. 오늘은 필자가 도쿄에서 보는 한국, 필자가 접하는 일본 사회에 비치는 한국, 그리고 한국 문제 전문가들의 시각과 생각 등을 두서 없이 소개한다.

필자도 직업상 종종 한반도 상황에 대한 설명을 말과 글로 요구 받는다. 대상이 재일한국인들인 경우도 있고, 일본인들인 경우도 있다. 물론 불특정 다수인 경우도 있다. 언론들이 전하는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부탁 받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언론 보도가 석연치 않아 설명을 의뢰 받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테마, 사안에 대해서도 늘 ‘문명사적 관점’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설명하려고 필자는 노력해 왔다.

그런데 ‘탄핵정변’ 이래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 한국’을 설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청중의 대부분은 탄핵정변은 물론, 그 후에 전개되어온 한국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기는 말하는 필자 자신도 혼란스럽고 허탈할 때가 많은 상황을 어떻게 알기 쉽게 전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일본인들은 한국, 특히 탄핵정변 후의 사정을 거의 모른다. 알 수 없다. 소위 한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한국이 지금 동시에 미중 대결 구조, 남북한의 대결, 한국의 내전이라는 세 개의 싸움 속에 휘말려 있음을 거의 모른다. 더욱이 한국의 내전이 이데올로기 싸움이며, 역사와 문화전쟁이라는 본질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일본인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 범위 내에서 인식하고 행동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만약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을 알려면, 그러한 인식이 형성된 과정을 살펴야 한다. 일본 생활을 통해 필자가 관찰한 결론은, 한국에 대한 인식 형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평양’ 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배경이 있다. 소련에 볼셰비키 정권이 등장한 이래 모스크바가 전 세계를 상대로 전개한 압도적인 정치 심리전, 즉 모략과 공작에 서방세계가 오랜 기간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탓이다. 공산 측에게, 아시아대륙에 반공자유민주주의 기지를 만들고 지켜온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그들이 만든 대한민국은 가장 증오하고 타도할 적이었으며, 당연히 중요한 프로파간다의 초점이 이에 맞춰져 왔다. 해방 직후부터 존재한 조선노동당 일본지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를 위한 것이었다.

한국 주사파가 방해한 일본의 올바른 한국 인식

즉,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말 사회주의권의 패퇴가 확실해지기까지 일본 언론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은 평양-공산권이다. 그리고 공산권의 프로파간다가 힘을 잃어 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이미 언론과 문화를 장악하기 시작한 한국의 주사파들, 종북세력들이 일본 사회의 ‘한국에 대한 인식의 정상화’를 결정적으로 방해하게 된다. 요즈음 말로 ‘가짜 뉴스’가 도쿄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유입되고, 전 세계로 한 없이 퍼져나가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전후의 일본 사회의 미국, 중국 등에 관한 인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뒤늦게라도 아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극히 중요한 과제인데도, 이러한 문제 의식이 지금도 한국 당국과 전문가들에게 아주 결여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한국이 북한을 해방하여 자유통일을 이루려면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지금 일본 사회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다. 수일 전에도 한국을 잘 아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몇 가지만 요약해본다. 문재인 등의 머릿속에는 평양(김정은) 생각 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지금 폐색 상태이다. 한국 경제는 대단하긴 하지만 취약점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한국의 원화는 국가간 결제에 사용되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결제수단으로 통용되는 일본 엔화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경제활동은 숨 막히는 온갖 규제들 때문에 기업이 어떻게 해볼 수 없다. 고용 문제는 인력 수습 불균형이 딱하다. 무작정 모두 대학에 가고, 대졸자들은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다.

한국은 확실히 역동적이기는 하다. 한국은 장기적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순발력에 강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위기도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은 지금의 폐색 상태를 일거에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일’이야말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아직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법치, 민주적 제도(의 안정성), 가치관 등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상이 한국 언론에도 소개되는 그러한 일본인들끼리 나눈 이야기이다. 물론, 한국인들 앞에서는 이처럼 노골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아마 한국인인 필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모르고 한 것이다.

많은 일본인들이(바로 위에 인용한 인사를 포함) 아직도 중국은 떠오르는 나라, 미국은 지는 나라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일본이 ‘앞으로 미국을 택할지, 중국을 택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심지어 중-러시아-북한의 힘이, 미-일-한국의 힘을 능가 하는 추세라고 말하는 전문가조차 있다. 아연할 따름이다.

일본의 지식인들 속에는,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사실도 잊거나 부정하는 이러한 외교, 안보 음치들이 많다. 미국 대학에서 미국인들을 많이 접해본 사람들조차 그렇다. 물론, 미국의 민주당 내지 좌파 언론과 주로 접촉,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9월 25일)과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연구소 연설(10월 4일) 등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거나 가볍게 무시한다.

일본내 반미친중 분위기도 한 몫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거의 보도하지 않지만, 일본 사회에는 다양한 이유로 미국에 거리감을 표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일본은 미국의 보호국이라고 자조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자립(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는 일은 드물지 않다. 필자는 일본에 보수주의가 있는 지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강력한 우익들은 존재한다.

우익 중에는 좌파까지를 아우르는 폭넓은 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있다. 그러한 우익세력 중 한 단체의 기관지(월간)를 본 적이 있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다. 그렇다, 기독교도들이 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반도로 침입해온 이슬람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전개했던 770년간(서기 722년부터 1492년까지)의 투쟁을 지칭하는 단어다. 스페인을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다. 이 기관지에는 ‘레콩키스타는, 점령 전후체제로 빼앗긴 일본의 주권, 영토, 정신의 회복운동을 표징(表徵) 한다’라고 쓰여 있다.

물론, 이들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닉슨 쇼크이다. 동서냉전 때 닉슨 대통령이 나토로 가해지는 소련의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돌연 중국과 화해함으로써 일본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972년의 이 쓰디쓴 기억이 일본의 ‘자주 외교’의 최대 명분이다. 아무튼 미국에 대해서도 저토록 거리감을 갖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베 총리가 500여 명의 경제인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10월 25일)하기 위해 떠나기 전날 (10월 24일) 국회에서 ‘납치, 핵,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과 수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필자는 도쿄에 살면서, 일본이 평양 측의 일본과 주일미군을 겨냥한 미사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 방법론이 논의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유사시에 일본을 겨냥한 기지를 파괴하겠다는 주장뿐이다.

일본인(지식인)들의 전략적 센스를 말하는 이유는, 자국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조차 둔감한 이들이, 한반도 문제를 전략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하려 할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로 알려진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2017년에 펴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로 알려진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2017년에 펴냈다.

먼저, 일본 사회가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결정적 이유의 하나는 한국이 친중 국가가 됐다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은 한반도(한국)를 중국에 대한 완충지대로 생각한다. 완충지대가 무너지면 저들이 위험해 지고, 미국의 일본 방어전략에 차질이 온다고 생각한다. 한반도가 대륙을 자유화 하는 공세적 기지라는 발상 자체가 없다. 그런데, 실은 6공화국 이후의 한국의 친중 풍조, 친중파의 원조는 일본의 친중파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필자는 한반도 분단에서 일본의 원죄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전후 일본이 저지른 과오는 짚어보자는 편이다. 우선, 동서냉전 시기에 일본은 딴 짓을 했다. ‘정경 분리’와 ‘전방위 외교’ 라는 것을 발명했다. 실리주의, 실용주의라고 할까. 일본은 중공과 수교 시 대만을 버렸다. 그리고 대만을 버린 일본을 대한민국은 그대로 따라 했다. ‘정경분리’니 ‘전방위 외교’니 하는 것은 특히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향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까지 상정한 적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문제의 본질에 대면하기보다 흔히 기능적으로 접근한다. 한국에 대해 못마땅한 소리를 하지만, 실은 그런 말을 할 자격과 여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말로는 가치관 외교니 하는 말을 때때로 하지만, 정작 자유라는 ‘가치’(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걸고 전쟁해 본 적이 없다.

미국이 지금 중국과 ‘정경분리’로 대처하고 있나? 그런데 일본은 미국이 대한 거리감과 견제 심리로 미국에 대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중국 카드를 거론하는 것이 일본이다. 일본 국민들 중에 지금이 제2의 청일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 재계뿐 아니라, 자민당 국회의원 중 친중파가 아마 100명은 넘을 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거짓과 반역세력에 의한 촛불정변을 대하는 일본 언론의 태도는, 52년 전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대하던 것과 극히 유사하다. 중국에 대한 정보력을 자랑해온 일본에서 당시, 문화혁명을 중국 자체를 후퇴시킨 反문명적 폭난(暴亂)으로 다룬 매체는 거의 없었다. 선동된 군중들에 의한 한국의 촛불혁명의 배후가 누구인지 등은 일본 언론의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문명사적 사변을 취재, 추적할 전문가도 없다고 보이지만.

최근에는 아직 소수이지만 몇몇 전문가들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정권과 김정은 체제는 ‘黨對黨’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주사파 정권에 대해 경계심을 더해 가는 미국 측의 비판적 주장과 정보가 많이 전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은 물론, 외국에 한국이 친중적이라는 이미지가 강력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한국 자신의 책임이다. 특히 한국 사회 자신이 스스로 수구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안타깝다. 외국에서 볼 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예를 들어보자.

한국 정부가 외빈을 접대하는 국가적 행사에 등장시키는 조선조 때의 의장대를 보면 필자는 늘 위화감을 느낀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왜 조선왕조의 의례를 계승해야 하는가? 이런 것이 민족주의이고 전통인가? 의견이 갈리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조차 의미도 애매한 울긋불긋한 복장으로, 절대군주에게 바치는 신하의 예를 표하는 의식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최고 가치인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군 의장대는 군대의 정복이나, 예복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정복과 예복을 두고, 조선왕조의 복식을 부활시킨 의도와 주체가 누구인가? 외국에서 보면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라기 보다, 맹목적 수구적 고집처럼 보인다. 더구나 조선왕조는 중국을 상국으로 모셨던 봉건국가 아닌가?

일본은 한국을 중국의 방파제로 인식, 대륙을 자유화하는 거점 인식 키워야

남북정상회담이 몇 차례 있었다. 평양에서 북한군 의장대 행사가 한국인 모두의 눈에 띄었다. 소위 ‘국명’에 ‘조선’이 들어간 북한군 의장대는 스탈린의 소련군이 원형이다. 반국가단체를 수호하는 敵이지만, 분위기만은 의장대답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게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한국은 내전을 겪으며 극심한 혼란 속에 빠져 있지만, 이러한 상황을 자초한 것은 한국민들의 무지와 게으름이다. 6공화국 이전의 한국 대통령들은 그 자신이 전쟁 중인 대한민국의 최고사령관이라는 것을 한시 라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이 두려운 대통령들을 암살하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 후의 대통령들은 5년 임기를 무난히 마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들은 특별한 사안이 없어도 마치 수학여행 하는 학생들처럼 외유를 즐겼다.

특히 6공화국의 역대 정부가 크게 잘못한 것이 있다. 바로 역사적인 동서냉전 종식이라는 상황을 맞아, 한국이 아시아에 남겨진 냉전에서 고아가 되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고, 일본이 한국을 공격하는 평양 측의 기지로 계속 기능하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당시 자민당 부총재 카네마루 신(金丸 信)은 자신과 친한 사회당 당수 타나베 마꼬또(田邊 誠)와 함께 평양을 방문해 소위 자민당, 일본 사회당, 조선노동당의 3당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3당 공동선언의 마지막 항은, “3당은 양국 국민의 염원과 아시아 및 세계평화를 위해 즉시 자민당과 조선노동당, 일본 사회당과 조선노동당간의 관계를 더 강화하고 상호협조를 가일층 발전시키자는데 합의했다”로 되어 있다. 조선노동당의 궁극적 목표는 한마디로 한반도 적화이다. 자민당은 평양 측과 한반도 적화에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한국, 미래 글로벌 주도권 경쟁에서 이기는 편에 서야

우리가 분단 73년간 겪은 공산당과의 대결 교훈은 저들의 목표를 향한 집요함과 용어전술이다. 당시 이 3당 공동선언에 조선노동당을 대표해 서명한 것은 대남비서였던 김용순이다. 북측은 일본과의 관계가 아무리 악화되어도 이 3당 공동선언을 소중하게 내세운다.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동맹인 일본의 집권당이, 한반도 적화에 동조한 귀중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자민당도 당시는 몰랐다고 변명은 하나, 자국민을 납치한 조직의 총수(대남비서 김용순)가 서명한 이 공동성명을 파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것이 모두 공산당이 자유세계를 우습게 보는 이유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중국의 경제력이 일본을 능가하면서 중국에 대해 불안감, 초조감을 느끼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실은 한반도에 대한 일 중 양국의 입장은, 1992년의 한중 수교로 역전되었다. 그 전까지는 일본이 경제력을 배경으로 남북한에 대해 등거리 외교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경제력을 키운 중국이 한반도 전체를 영향권에 넣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끔찍한 일은, 한국이 친중 반미 국가가 되는 것이 일본에 반드시 불리한 것이냐는 속삭임이 있다. 이들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해양세력이 져서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에 완전히 넘어가면 일본도 핵무장을 할 명분이 생긴다는 계산인 것이다. 이미 일본은 해체 방향으로 움직인 한미동맹에 대신하도록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군의 세계 최강, 최첨단 정보화 군대인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질적으로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한국이 미국 및 일본과 멀어져 중국에 밀착할 경우, 우선 재일한국인들은 아주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이미 재일한국인은 규모 면에서 일본 내 전체 외국인의 17% 정도로 줄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 9월에 일본 GDP의 2%에 달한다는 유기업(遊技業), 속칭 파친코 사업에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재일한국인들에 대해 치명적 조치를 예고했다. 지금까지 허용되었던, 파친코에서 딴 경품을 다시 현금화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미 사양산업인 파친코 산업은 아마도 존속조차 어려워질지 모른다. 더구나 일본 당국은 카지노 산업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세무사찰이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교포들에 의하면 실은 지금까지 한일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될 때마다 반복된 일이라고 한다. 물론, 구조적으로 좌경화에 순응된 대다수의 재일한국인들은, 한국 사회의 정상화를 위한 한일양국의 가교 역할 등은 불가능하다.

도쿄에서 보기에 한반도 상황은 머지않아 결말이 난다. 어차피 미 중 대결의 결과가 그대로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민의 선택이다. 역사를 보면 강대국간(혹은 제국간) 전쟁은 그 결과가 역사의 방향을 바꾼다. 패배한 제국은 해체된다. 패배한 제국 편에 선 자들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던 오스만 터키제국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제국, 일본제국이 해체되었다. 3차 세계대전(동서냉전)에서 패배한 소련제국도 저들이 점령했던 모든 것을 잃고 해체되었다. 중화제국이 패배하면 당연히 1949년 이후 점령한 모든 지역(티베트, 신장위구르, 내몽골 등)을 포기함을 물론, 부자연스러운 중화제국의 지도는 바뀔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중국이 패할 때 한국이 중국 편에 서 있으면, 대한민국은 1945년 8월과 같은 운명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패전국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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