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농지개혁에서 K-POP까지
[책소개]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농지개혁에서 K-POP까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08 1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경제가 성취한 것은 기적이었다.

건국 이후 지난 70년 간 우리 경제가 성취한 것, 그것은 기적이었다. 우리 경제 성공의 기적은 기본적으로 불굴의 정신을 가진 국민들과 지도자들의 합심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매 순간을 되돌아보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적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광복 이후 국토분단의 와중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 광복 이후 좌파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우세한 이념 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자유시장경제체제가 국가 정체성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된 것, 건국 후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북한 공산세력의 정복 야욕을 분쇄하여 나라가 보전된 것,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기적을 이뤄 원조 받던 나라에서 유일하게 원조 주는 국가로 전환된 것이 모든 것들이 논리적·체계적 논의나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무언가 신의 섭리가 작용한 결과인 것만 같다.

이 책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경제정책 70년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집필된 것이다. 본 책자는 건국 이후 70년 동안 전개된 53개의 사건과 정책을 역대 9명의 대통령을 중심으로 시대별로 해설하고 있다. 개별 주제는 시대를 대표하는 정책과 사건들 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 경제는 외형적으로 볼 때 성공의 심벌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올수록 크고 작은 문제가 부문마다에 표출되고 있다. 우리 경제 70년 동안 전개된 53개의 사건과 정책들을 개괄하면, 성공을 칭송하기보다는 실패를 비판하는 글이 더 많다. 정부정책의 성공 덕분에 우리 경제가 오늘에 이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부정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호적 대외여건에 힘입어 오늘의 우리 경제가 탄생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첫째 대내적 온갖 갈등과 정책실패로 경제의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둘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의 구조적 변화는 경제는 물론 정치와 사회에 미증유의 충격을 가져와 정책 대응을 계속 옥죌 것이다.

셋째 남북 화해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핵 위협 속에 남북 대치가 계속되든 화해가 이뤄져 통일이 되더라도 엄청난 통일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는 모두의 큰 관심 사항이다. 넷째 통제를 벗어난 이익집단의 발호 속에 이념 간, 지역 간, 소득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 제반 여건을 생각하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순탄치 않은 경제 앞날 우리가 할 일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에서 배우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 국민 다수가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공자도 “미래를 설계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비록 작은 책자이나 집필진의 정성과 열정으로 쓰인 이 책자를 통해 지난 70년 간 우리가 이룬 기적의 역사를 국민들이 이해하고 향후 새로운 도약을 마련하는 지침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편저자인 최광 교수는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그리고 메릴랜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와이오밍대 경제학과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과학원(KAIST) 겸직교수,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영국 요크대 객원교수, 일본 히토쯔바시(一橋)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책속으로

해방 당시 농촌사회에는 여전히 신분제가 잔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지개혁을 통해 지주의 경제적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농촌에 잔존하던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별이 없어지고 노비와 같은 처지에 있던 천민이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농촌사회의 구성원들은 신분에서 보다 자유롭고 평등해졌다. 상민들도 양반과 마찬가지로 문중이나 시제와 같은 유교적 전통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경쟁은 자식세대에 더 많은 교육투자를 유도했다. 이러한 인적자본에 투자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p. 27

베트남 파병은 베트남 특수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 해소 및 외환보유고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이와 함께 수출의 급격한 증가와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진출 및 대기업으로의 성장은 우리나라 경제가 한 발짝 크게 도약하는 데 튼튼한 발판이 되었다. 베트남 파병은 경제기적의 도화선이었다.-p. 131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 이후 1980년대 초까지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은 국유화였다. 자본주의 종주국이던 영국조차도 노동당의 애틀리 총리 집권 이후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했다. 철도, 통신, 정유 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이 몰수되다시피 국영기업으로 전환되었다. 신흥 독립국들은 국가 주도를 더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브라질,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알제리 등이 모두 국영기업방식으로 기간산업을 건설해나갔다. 그런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민간 기업들을 중화학 건설의 주역으 로 내세운 박정희 정부의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신흥독립국들 중 오직 대한민국만 중화학공업으로 성공을 거뒀다. -p. 160

경제민주화 정책사고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고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권력을 정치권력에서 시장경제에 되돌리는 것이다. 규제완화, 노동개혁 등을 통해 “관료·노조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권력을 시장에 돌려주는 경제운영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을 기약할 수 없다. 정치권과 독점 노조가 움켜쥔 경제권력을 놓는 것이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포괄적 규제로 기능해온 경제민주화의 정책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시장의 활력은 질식되고, 규제 당국의 재량만 커지게 된다. 그 희생은 역설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짊어질 수 있다.-p. 316

한국 경제의 모순을 해소하고 개량하는 길은 국가경제를 활짝 개방하는 길밖에 없다.

정부의 새로운 역할은 사회와 문화 영역을 포함해 활짝 열린 대규모 시장을 창출함에 둬야 한다. 그 첫걸음은 기업과 시장에 대한 제반 규제를 혁명적으로 철폐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해 양질의 일자리가 대량 창출될 뿐 아니라 소득분배의 구조가 장기적으로 개선된다. 규제의 혁명적 철폐는 한국의 기술과 숙련노동을 선호하는 외국의 대기업이 한국으로 진출하는 유인을 제공하며, 이는 국가경제의 산업연관을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p. 337

케이팝(K-POP) 밴드인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 출신 보이밴드인 그들에게 열광한다. 얼마 전엔 싸이가 그랬었고 샤이니, 빅뱅 같은 그룹들도 전 세계에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음원 판매 수입, 공연 수입, 광고 수입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의 가치가 1조 원을 넘는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 성공의 모두 크기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들의 성공으로 인한 한국인,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 개선 효과, 그들로 인한 관광객의 증가, 연관 산업에로의 긍정적 파급효과가 당사자들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훨씬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자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의 성공에 버금할 정도의 성공이라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라고 본다. -p. 518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