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름답고 신비한 산사 답사기...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산지승원
[신간] 아름답고 신비한 산사 답사기...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산지승원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0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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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종호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막걸리를 탐하다』 『침대에서 읽는 과학』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전2권)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전2권) 『과학문화유산답사기』(전4권) 『미스터리와 진실』(전3권)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 삼국유사』 『과학 삼국사기』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파라오의 저주』 『천재를 이긴 천재들』(전2권) 『세계 불가사의 여행』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 등 100여 권을 집필했다.

2018년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 불교 문화의 총본산인 천년 산사 7곳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명목으로 세계유산목록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한국의 13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총 7개소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7개 사찰이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 1 000년 이상 신앙·수도·생활 기능이 살아 있는 종합 승원으로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며 개별 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 관리 계획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고 적었다. 더불어 세계유산위원회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산사 내 건물 관리 방안 강구 산사 종합정비계획 수립 세계유산 등재 이후 증가하는 관광객 대응책 마련 산사 내 건물을 신축할 때는 세계유산센터와 사전 협의 등 4가지를 권고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7개 산사가 갖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해 많은 독자가 궁금증을 표명하며 이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답사 일정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일괄적으로 답사한 후 귀경하는 것을 기본으로 경북 영주 부석사 경북 안동 봉정사 경남 양산 통도사 경남 해남 대흥사 전남 순천 선암사 충남 공주 마곡사 충북 보은 법주사 등과 같이 잡았다. 

제1부는 한국 사찰의 개요 즉 건축 사찰 불상 불탑 등을 설명하며 제2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7개 사찰에 대해 설명한다. 제1부는 사찰을 이해하는 기본 요소라 볼 수 있는데 필요불가결하게 어렵게 생각되는 전문적인 용어도 포함된다. 물론 독자들에게 생소한 전문적인 용어들은 가능하면 건축적 전문성보다는 현장에 부연하는 내용을 기본으로 설명한다. 특히 한국 목조건축의 기본을 설명하는 데 다소 어렵다고 생각이 들면 처음부터 용어 전체를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 번 읽어가면서 목조건축의 진수를 파악하기 바란다. 

전문가들은 불교 국가가 많은 아시아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한국의 사찰들이 관광 명소보다는 자연과 공존하고 참선 공동체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유산을 견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즉. 이들 보편적인 가치를 지켜간다면 한국의 다른 산사들도 추가로 등재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2018년에 지정된 7개 산사를 포함해 더 많은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뜻으로 여타 한국의 간판 사찰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랑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첫 번째 답사로 부석사를 선정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수많은 사찰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역사와 자랑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충분한 필요충분조건이 있다는 뜻인데 일부 건축학자들은 부석사가 불국사와 함께 한국 사원 건축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불국사가 인공미의 극치라면 부석사는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불국사의 전면 석축이 목구조 형식을 본떠 쌓은 것이라면 부석사의 석축은 생긴 대로 아래에서 위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것이다. 돌 종류도 다양해 큰 돌 작은 돌은 물론 둥그스름한 돌 네모난 돌 각양각색의 돌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사람이 쌓았지만 불국사처럼 인공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 두고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깊은 산속의 절이었던 봉정사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72년 극락전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공민왕 12년(1363) 지붕을 중수했던 사실을 담은 묵서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고려 중기인 12~13세기 또는 최소 1363년 많게는 고구려 시대까지 그 연원을 보기도 한다. 봉정사의 창건을 12~13세기로 올려 잡는 것은 일반적으로 목조건물은 150~200년 정도 지나면 중수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기록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그전까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졌던 부석사 무량수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또한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도 연대를 상향시킬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었으며 화엄강당 고금당 등이 있다. 봉정사는 한국에서 한 장소에 국보 건축물 2곳이나 있는 등 한국 목조건축의 계보를 고스란히 간직해 내려온 건축박물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통도사는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금강계단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통도사가 통도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는 3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산의 모양이 석가모니가 직접 불법을 설법한 인도 영취산과 통한다고 해서 명명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통해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통도사의 근본정신을 말한다.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 되고자 출가하려는 자들은 부처가 행하고 실천한 언행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익히고 배워야만 승려가 된다는 의미다. 곧 한국 불교 계율의 중심지로서 모든 승려는 이곳에서 계(戒)를 받아서 산문(山門)에 들어서라 했다. 

대흥사가 있는 두륜산의 옛 이름이 ‘한듬’이었으므로 대흥사는 오랫동안 한듬절로 불렸다. 옛말에서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듬’이나 ‘둠’ 등은 ‘둥글다’라거나 ‘덩어리’라는 뜻을 가진다. 바닷가에 갑자기 큰 산이 솟아 있어 그렇게 불렸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한듬은 한자와 섞여 대듬이 되었다가 다시 대둔(大芚)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절도 대듬절 대흥사로 바뀌었다. 대둔산은 중국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한반도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다시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와 해남 땅에서 긴 여정을 마친다는 설명도 있다. 그래서 백두산의 ‘두(頭)’ 곤륜의 ‘륜(崙)’을 따서 두륜산(頭崙山)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륜(崙)이 ‘바퀴 륜(輪)’으로 바뀐 것은 두륜산 연봉들이 바퀴처럼 둥글게 휘돌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선암사는 산사의 모범답안같이 청정하고 아름다운데 그중에서도 특히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다. 선암사는 조계산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는 선암사천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계산이 바다에 가깝고 고온다습한 기후의 영향으로 산 전체가 울창한 활엽수림으로 뒤덮여 있는데 겨울의 한기를 이겨내고 신록으로 조계산이 물들기 시작하면 사찰 곳곳에 있는 벚꽃과 목련·모란·앵두·모과·철쭉·영산홍·동백·상사화·옥잠화·치자·파초·부용 등 갖가지 화초와 꽃나무가 잇달아 피어난다. 혹자는 선암사를 화훼 전시장처럼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그 빛깔과 모습이 다채로운데 고풍이 흐르는 전각들과 어울려 한국의 어느 사찰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암사는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1954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의 제1차 불교 유시(諭示) 이후 분규 등을 거치면서 많은 건물이 피해를 보고 소실되는 등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선암사는 아직도 한 세기 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마곡사는 1851년에 쓰인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초창은 자장이요 재건은 보조(체징體澄)이며 3건은 범일(梵日)이요 4건은 도선(道詵)이며 5건은 학순이다”라고 한국 불교사상 고명한 승려들의 연관설을 싣고 있다. 특히 백제 무왕 41년(640)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신라인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등 신빙성이 약하다. 삼국 말기 백제와 신라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백제의 핵심부에 신라의 승려인 자장이 창건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다. 그러나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전기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명종 2년(1172)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했다고 알려지므로 연대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속리산 이름의 유래는 법주사가 창건된 지 233년 지나 신라 선덕왕 5년(784) 진표율사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 하던 소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진표율사를 맞이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도 저렇게 뉘우치는 마음이 절실한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오죽하랴 하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원래 법주사의 옛 이름은 길상사로 길상초가 나는 곳에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속리산은 충청북도 보은군과 경상북도 상주군에 걸쳐 있지만 흔히 보은의 속리산으로 불린다. 법주사가 대부분 보은 땅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 속에 있으면서도 평탄하고 넓은 터전에 골라 앉은 법주사는 수많은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 등을 지녀 보은의 얼굴 구실을 한다. 또한 괴산 땅에 속하지만 같은 속리산국립공원에 드는 화양동 계곡은 바위와 숲 계류가 어울려 빚은 좋은 경치로 예부터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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