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셰르파, 히말라야 원정대,두 문화의 조우
[신간]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셰르파, 히말라야 원정대,두 문화의 조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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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셰리 B. 오트너 Sherry B. Ortner 는 인류학자. 미시간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가르쳤으며, 2004년부터 UCLA의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랫동안 현지조사를 통해 네팔의 셰르파족을 연구해왔으며, 그 최종 결과물인 이 책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으로 2004년에 최고의 인류학 책에 수여되는 J. I. 스탤리 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문화연구로 방향을 튼 오트너는 문화 이론과 페미니스트 이론 분야의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문화의 숙명》(국내 출간) 《의례를 통해 본 셰르파족》 《고등 종교: 셰르파 불교의 문화·정치사》 《여성·문화·사회》 《젠더 만들기: 문화의 정치와 성애》 《뉴저지의 꿈: 자본, 문화, 그리고 58년도 졸업생들》 《인류학과 사회이론: 문화, 권력, 행위주체》 《할리우드가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 쇠퇴기의 독립영화》 등이 있다. 2001년에 스웨덴 인류학 및 지리학회에서 가장 영감을 준 인류학자에게 수여하는 레티우스 메달Retzius Medal을 수상했다.
 

히말라야 원정대와 셰르파 

20세기 서구 사회에서는 많은 히말라야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히말라야의 고산을 등반하려면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원정대의 등반에 참여하게 된 것이 에베레스트에 사는 소수민족인 셰르파였다.

이들은 높은 보수, 개인적인 출세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등반에 참여했으며, 물품 운반, 요리와 청소, 루트 개설 등을 담당했다. 초기 원정대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고산 등반은 남성이 독점했던 위험한 스포츠였다. 목숨을 건 행위인 히말라야 등반을 추동해온 남성성은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1920~30년대 서구의 등반가들은 당시 천박한 물질주의에 결여된 영성을 구현하기 위해 산에 올랐다. 이들은 금욕주의, 신비주의 혹은 도덕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이런 낭만주의적 남성성은 셰르파를 ‘자연’ 상태 혹은 ‘아이와 같은 때묻지 않은 존재’로 바라보게 했다. 

한편 등반을 군사 원정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초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히말라야는 오직 군사 작전을 통해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전에 ‘순수한 존재’로 여겨졌던 셰르파는 ‘통제하기 어렵고’ ‘규율이 안 잡혀서’ 엄한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졌다. 등반의 군사화, 즉 경쟁과 위계를 강조하는 군대 모델은 오히려 셰르파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셰르파는 자신들의 평등주의적 문화를 바탕으로 서구 등반가들을 ‘친다크’, 즉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자애로운 보호자로 바라보았고, 이러한 위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평등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 원정대와 셰르파의 관계에서 ‘우정’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셰르파와 원정대는 학교를 짓고 지역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두 문화의 조우 

이 책은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도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모인 두 집단의 만남의 역사이다. 

오트너는 원정대와 셰르파 두 집단의 만남을 해석하기 위해 ‘진지한 게임’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진지한 게임이란 한편으로는 매우 진지하면서도 동시에 재미있는 게임처럼 참여자들에게 창조성, 진취성, 행위자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게임은 시대적 상황을 포함한 사회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권력 관계를 내재하고 있다. 등반에 참여한 원정대와 셰르파는 상호 얽힘과 상호 생산의 관계였지만 이 둘 사이에는 엄연한 권력 관계가 존재했다. 이 둘의 조우는 ‘권력의 비대칭성이 수반되는 문화 간 만남’이었다. 

셰르파는 힘과 자원 면에서 비대칭적인 게임에 참여하면서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를 가진 원정대의 관행과 규범 들에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이들은 게임의 룰을 무시하거나 변형시키면서 관계를 재구성해나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셰르파들은 더 나은 보수와 장비, 더 많은 존중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마침내 등반대원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셰르파는 ‘등반’을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등반 중에 신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수도원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수행과 연민의 감정을 수련하고, 때로는 등반가에게 산에서 살생을 하지 못하게 권유함으로써 산을 정화시키는 노력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셰르파는 단순히 권력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권력을 조정하고, 조건을 개선하는 존재임을 증명해냈다. 

히말라야 등반의 최근 경향 

히말라야 등반 초기 원정대의 마초성은 산을 여성화하고 등반가와 산의 관계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마초성에 반기를 든 서구 여성 산악인들은 1970년대 페미니즘 물결로 ‘평등주의’를 내재화하고 혼성 혹은 여성만의 단독 팀을 구성해 등반 원정에 오른다. 마찬가지로 여성 셰르파 또한 등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구 여성 산악인의 등장은 성적 모험, 성적 정화, 금욕주의라는 복잡한 역학을 만들어내면서 두 남성 집단 간의 조우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욕망과 교섭을 만들어낸다. 가부장적 위계는 서구 남성 등반가나 셰르파 남성 모두가 공유한 권력 질서였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제 에베레스트는 단순히 동서양 문화의 조우의 장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 등반대와 여행자가 참여하는 거대한 관광지가 되고 있다. 원정대가 동원한 기술 장비, 산소, 자본, 광고 마케팅이 현란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은 셰르파와 포터 들이며, 등반은 이들의 노동에 전폭적으로 의존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등반가도 셰르파의 노동 없이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두 집단의 조우를 통한 상호구성성과 진지한 게임에 주목해온 오트너는 셰르파를 폄하하고, 종속시키고, 착취하는 일부 기업형 등반대의 급증으로 ‘게임’의 장의 질서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인류학의 고전 

오트너는 탁월한 현장 연구자로, 인류학 이론을 선도해온 학자이다. 1970~80년대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실천 및 행위자 이론을 선도했고, 당시 폭발적인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페미니스트 인류학을 설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9년에 출간된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은 그의 60년에 걸친 학문 여정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30년 동안 진행한 히말라야 현지조사 결과를 집약한 셰르파 연구의 완성판이자 인류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오트너는 이 책으로 2004년 가장 훌륭한 인류학 저서에 수여하는 J. I. 스탤리 상을 받았다. 또한 그간의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에는 스웨덴 인류학 및 지리학회에서 가장 영감을 준 인류학자에게 수여하는 레티우스 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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