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인터넷 강사 ‘전연이’ 해프닝은 우연일까
EBS 인터넷 강사 ‘전연이’ 해프닝은 우연일까
  •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8.11.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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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왜곡’ 미디어의 일탈 오래 방치하면 국가 일탈 부를 수도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EBS 사회탐구 강사가 인터넷 강의 중 박근혜 전 대통령에 ‘전연이(저년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뭇매를 맞은 사건을 보면서 2006년 5월에 있었던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송 모 시인의 박근혜 비방 욕설 사건이 떠올랐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다가 괴한에 커터칼 테러를 당한 사건을 보고 풍자시를 썼다는 송 시인의 시는 말이 풍자이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저속하기 짝이 없는 배설이었다. ‘박가 년 보X는 손에 달렸다지’라는 제목으로 그대로 전하기에도 민망한 욕설 시를 당시 필자가 이끌던 인터넷 매체가 단독으로 보도해 꽤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다음과 같은 기묘한 우연들이다. 아이들에게 ‘전연이(저년이)’라는 암기법을 가르친 강사가 속했던 EBS의 이사장은 여성 사회운동가이자 소설가인 유시춘 씨다. 9월에 새 이사장으로 임명됐는데, 유시춘 씨는 박근혜 대통령 비방시를 썼던 송 모 작가가 속했던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를 지냈다.

EBS 인터넷 강사의 일탈은 미디어의 일탈 결과

좌파 성향의 문인단체로 알려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는 최영미 시인이 폭로한 문단 내 미투 사건과 관련해서도 거론된 적이 있다. 최영미 시인이 올해 2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92년 등단 이후 제가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을 했던 남자 네 명은 대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가까운 문인들”이라고 폭로했던 일이다. 이쯤에서 좀 더 기억을 더듬어 보자. 알고 보면 박근혜란 인물에 대한 일종의 여혐 사건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몇 달 전엔 이종걸 당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트위터에서 ‘그년’이라고 표현했다가 논란이 되자 사과한 일이 있었다. 2017년 1월엔 표창원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나체 그림이 출품된 전시회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었다가 비난을 샀다. 탄핵은 박근혜를 대상으로 한 여혐 사건의 최종판이었다. 탄핵정국에서 박 대통령의 밀회설, 청와대 굿판설, 성형설, 마약설 등등 허위보도가 얼마나 많았나. 남성 입장에서 보더라도 탄핵을 완성시킨 하나의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코 여성혐오다. 필자는 이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EBS 인터넷 강사의 ‘저년’ 해프닝 하나 가지고 별 연상을 다한다 싶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나열한 하나하나의 사실 관계는 모두 우연에 불과하다. 유시민 전 장관 누나이자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를 지낸 유시춘이 EBS 이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인터넷 강사의 저년 발언이 나왔다는 게 아니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건 다만 이런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장해온 것이 미디어라는 사실이다. 문학계이든 정치권이든 박근혜라는 인물에 대한 허황된 이미지를 미디어가 용납하지 않았다면, 조장하지 않았다면, 비판과 견제가 잘 이뤄졌다면 EBS 강사가 그런 시도를 할 마음을 쉽게 먹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건 박근혜 전 대통령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주류 언론이든 인터넷 이든 유튜브 등 이들을 잡겠다고 혈안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맥락에서 EBS의 편향성을 봐야 한다. 견제, 감시받지 않은 미디어의 왜곡이나 편향성은 한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당 쇄신, 미디어에 대한 관점 쇄신부터

EBS는 편향성이 문제가 되고 지적받아 온 날이 한 두 해가 아니다. 지난 번 국정감사나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도 ‘빡치미’와 같은 프로그램이 ‘청년임대주택논란’ 이라던가 ‘노동안전’과 같은 주제 선정이나 편파적인 출연진 문제가 논란이 됐다. 예컨대 1부 ‘대한민국은 갑질공화국’ 편에서는 국회의원 갑질 사례를 소개하면서도 패널로 주로 민주당 소속 인사들을 출연시켜 마치 여당 의원만은 정의롭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2부 ‘을의 반란’과 같은 경우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과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연구소장이 출연했는데, 기업 노조활동의 중요성이 주된 내용이지만 대기업 오너 갑질만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강성노조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당 의원들이 그런 문제점들을 지적해도 EBS 측은 “공사법에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못하도록 명시하지 않고 있다. EBS 설립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달 한국당 과방위 간사 정용기 의원은 빅데이터 분석 결과, 문재인 대통령 관련 키워드가 높은 빈도수를 차지하면서 EBS 뉴스가 땡문뉴스화, 정치뉴스화되었다고 지적했다. EBS 뉴스는 2008년 론칭 당시 교육 분야에 한정한 뉴스를 전제로 시작했다. 2017년 말 방통위의 방송재허가서에도 교육 관련 뉴스를 제외한 보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과는 수년째 EBS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한국당의 ‘이빨’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걸 증명한다. 한국당이 EBS에 대해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편향성을 시정할 수 있도록 법안을 내놓고 문제를 제기해왔다면 지금과 같이 무시당하는 날들의 연속이 될 수 있겠나. 이건 EBS든 다른 공영방송이든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이미지를 쌓아가는 미디어와 담 쌓다 탄핵당했다. 한국당의 무관심도 그에 못지않아 보인다. 이대로라면 비슷한 길을 가리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한국당 쇄신에서 인물쇄신 만큼 필요한 게 미디어에 대한 대대적인 관점 전환이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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