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 철학의 왕국.... 호락논쟁 이야기
[신간] 조선, 철학의 왕국.... 호락논쟁 이야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1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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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경구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등에 재직하면서 17~19세기의 정치?사상?지식인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썼다. 현재 한림대학교 인문한국HK 교수로서, 한림과학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는 《원문역주 각사수교各司受敎》(공역), 《조선후기 안동김문 연구》,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조선 후기 사상사의 미래를 위하여》, 《정조와 18세기》(공저),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공저) 등이 있다

책은 한마디로 전환기에 처한 왕국에서의 철학 논쟁을 다룬 것이다. 17세기가 저물고 18세기가 시작되던 시점은, 안으로 주자학으로 국가를 재건했던 시기가 끝나고 바야흐로 세속화가 진전하는 시기였다. 밖에서는 오랑캐로 멸시했던 청나라의 융성이 확연했다. 일본, 베트남 등도 신국神國, 남제南帝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안에서는 양반·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보았던 중인·서민·여성 등의 역량이 신장되었다. 오랑캐가 문명에 다가설수록 화이華夷 질서는 흔들렸고, 서민·여성이 성인이 될 가능성이 커질수록 명분 질서는 요동쳤다. 

이에 대응해 조선의 선비들은 주작학적 질서와 명분으로 조선의 재건과 동아시아 변화에 적응하려 했다. 기존의 사단칠정 논쟁을 계승하면서도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주제, 즉 마음, 타자, 사람 일반의 문제에 매달렸다. 숙종 후반부터 순조 초반 붕당정치에서 탕평정치를 거쳐 세도정치가 정립되는 시기, 철학과 사회의 문제는 정치와 얽히면서 한 번 더 꼬였다.

논쟁의 최종 승자가 된 노론은 영조 대부터 북당北黨과 남당南黨, 시파時派, 벽파僻派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학파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정치적 분쟁이 일어났다. 철학적 다툼이 조선의 정치·사회 흐름의 숨은 추동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 후기를 정치적 이해가 아니라 사상 중심으로 파악하기에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호락논쟁이란-호락호락하지 않는 호락논쟁 

학자 외에 국왕, 정치인, 남인과 소론 학자, 때론 중인까지 왕성하게 참여한 호락논쟁湖洛論爭은 호론湖論(충청도의 노론 학자)과 낙론洛論(서울의 노론 학자) 사이의 논쟁이므로 이렇게 불린다. 이황, 이이가 주역이었던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 서인과 남인 사이에 벌어졌던 예송禮訟과 함께 조선의 3대 철학논쟁으로 꼽히지만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가장 큰 이유는 호락논쟁의 주제들이 꽤 난해하기 때문이다. 논쟁의 주제는 보통 세 가지로 간추려진다. 첫째, 미발未發에서의 마음의 본질에 대한 논쟁. 미발은 감각이 발동하지 전의 마음의 상태이니, 이 주제는 간단히 말해 인간과 마음[心]의 정체에 대한 논쟁이다. 둘째,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논쟁. 여기서 물성은 인간을 둘러싼 외물外物로서 타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셋째,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마음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인성물성논쟁은 청나라로 대표되는 오랑캐에 대한 인정 여부와, 성인과 범인의 이동異同을 둘러싼 다툼은 서민·여성에 대한 인정 여부와 연결되기에 논쟁은 치열하고 그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왜, 지금 여기서 호락논쟁인가

호락논쟁의 주제와 그 속에서 활동했던 인간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관련해서도 생각거리를 풍성하게 던진다. 

논쟁의 첫 주제였던 마음을 보자. 근대 이후 우리는 인간의 정체를 두뇌와 신경의 작용에 연관해 설명하고 있다. 심학心學이 사라진 자리를 사이콜로지psychology 곧 심리학心理學이 채웠다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정신, 의지, 도덕, 감수성의 총체로서의 마음이 다시 주목받는 듯하다. 마음의 주재성과 외물에 대한 조정력을 중시했던 유학의 마음공부야말로 지금 충분히 재음미될 수 있다. 

호락논쟁은 타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관련해서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다문화, 남녀, 장애인, 난민 등의 문제 또한 타자에 대한 이해가 해결의 고리다. 앞으로는 로봇,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타자에 대한 인정 문제가 부상할 것이다. 호락논쟁의 여러 장면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공존하는 노력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특한 구성, 풍성한 읽을거리 

굳이 분류하자면 사상사 관련 서술인 이 책은 몇 가지 장치를 통해 딱딱한 이론 소개를 넘어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첫째 지은이는 전형적인 ‘철학사’ 서술을 우회해 철학사 서술에서는 보통 간과되기 마련인 주변 정보들을 활용해 ‘이야기’라는 색채를 입혔다. 지금은 매우 낯설어진 사유방식인 성리학에 그들의 마음과 일상, 정치?사회 이론, 활동과 관계망 등을 복원해 정치·사회적 요인까지 복잡하게 얽힌 이 문제를 입체적으로 풀어나갔다. 결국 이 책은 부제에서 ‘호락논쟁 이야기’에서 보듯 이상을 향한 철학과 세속 질서로 움직인 사회 속에 있었던 조선 철학자들의 이야기다. 

둘째 이를 위해 역사 이야기와 철학 이론 설명이 교차되는 독특한 구성을 택해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서장에서는 호락논쟁을 개괄적으로 소개했다. 사전적인 정리이므로 처음에 읽어도 되고, 나중에 읽어도 된다. 본문의 1장·3장·5장·7장은 역사 이야기가 뼈대고, 2장·4장·6장·결론은 철학이나 이론에 대한 소개가 뼈대다. 관심에 따라 이 장들만 떼서 연결해 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세 번째 미덕은 여느 철학이론서 또는 사상사에서 만나기 힘든 풍부한 도설圖說이다. 각 장마다 7컷 정도의 그림과 사진을 실어 본문에 생동감을 더했다. 소재는 등장인물의 초상, 유적지가 기본이고 당시 생활을 상상케 하는 회화 자료 또한 풍부하다. 그림 가운데는 중국, 일본은 물론 서양화가의 작품까지 있다. 그림 설명에서도 가급적 자세한 정보를 더하여 깊이 있는 해석을 도왔다. 부록에 실린 연표와 학맥·관계도 역시 주목할 사항. 덕분에 책을 수시로 뒤적이거나 다른 정보를 찾는 수고가 줄어 진지한 독자들이 반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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