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처벌 찬성에서 반대로, 그들이 변심한 진짜 이유
가짜뉴스 처벌 찬성에서 반대로, 그들이 변심한 진짜 이유
  •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8.11.23 15: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짜뉴스 처벌 대신 차별금지법 제정 주장으로 바꾼 섬뜩한 의도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정부·여당이 드는 가짜뉴스 피해라는 게 예를 들어 ‘문재인 치매설’인데 그게 어떤 피해가 있을까요? 그리고 ‘문재인 치매설’이 피해를 발생시킨다면 피해를 입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사소송 등으로 단속할 일이지 피해가 명백하지 않은 허위를 처벌하는 가짜뉴스 법을 만들거나 검찰을 동원하여 소위 선제수사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말을 못 하도록 퍼뜨린 사람 처벌하면 그분들은 그런 믿음을 갖지 않거나 그런 것들을 자기들끼리 사적으로 주고받는 행태를 멈출까요? 그런 걸 믿고 싶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거지 그런 거 때문에 사람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뀐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런 정보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뀌는 거라면 저는 그렇지 않은 진실을 유포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설득 시킬 수 있어야지 ‘그건 허위니까 퍼뜨리지 마’라고 칼을 들고 들어가서 체포하는 건 민주국가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인용한 위의 글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가 고발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경찰은 이런 지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문 대통령 치매설이나 대북지원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방송과 인터넷 게시글이 허위정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를 요청했다. 경찰이 삭제 요청한 게시물 중에는 ‘신의한수’나 ‘개미애국방송’과 같은 우파성향의 유튜브 방송 콘텐츠물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방심위는 이들 게시물을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통신·권익특별위원회에 넘겨 자문을 구했고, 특위 측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이 없는 이상 허위 정보 등에 대한 국가기관 심의는 최소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참석 위원 전원 합의로 ‘해당 없음’으로 자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위의 판단이 법적 구속력은 없기 때문에 조만간 열릴 통신 소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심의 절차를 거쳐 최종 결론이 나온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 길들이기에 방해가 되는 가짜뉴스 처벌법

좌파진영에서 활동하는 박 교수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듯 이전 정부에서 주장하던 입장에서 돌변한 여타 소위 진보적 지식인과 달리 아직까진 자기 소신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학자다. 박 교수 지적대로 경찰은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라며 자의적인 판단으로 무조건 삭제부터 요청할 게 아니라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왜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수 있는지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치매설로 인해 문 대통령에게 어떤 명백한 피해가 발생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당국은 문 대통령이 ‘대한미국’으로 오기하거나 세월호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쓴 문구 등은 대통령 건강과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라는 ‘진실’을 국민에게 확인시켜 주고 그 ‘진실’이 널리 유포되도록 하는 것이 자유민주 국가에서 나갈 방향이다. 그런 충분한 선제적 조치 없이 처벌부터 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그저 대통령 심기 경호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요즘 가짜뉴스 논란을 두고 좌파진영에서 갈라지는 의견 차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은 주로 가짜뉴스, 다시 말해 허위조작 정보 처벌에 무게를 두고 좌파 야당인 정의당과 이 정권 지지층이라 할 민변, 언론노조와 미디어오늘, 언론개혁시민연대, 오픈넷과 같은 시민사회세력은 표현의 자유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다.

대통령 치매설, 북한 쌀지원 의혹, 국민연금 200조 퍼주기설 등 주로 문재인 정권이 싫어할만한 내용물에 가짜뉴스 낙인부터 찍고 조리돌림 하듯 좌파언론이 일사분란하게 패대기를 쳤던 초반과 달리 좌파시민사회세력 일부는 ‘표현의 자유 수호’ 측면에서 오히려 자유한국당과 가까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에겐 이런 현상이 지금 갈등을 빚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의 아슬아슬한 관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좌파진영에서 문재인 정권의 가짜뉴스 처벌방침에 반발하는 정의당이나 민변, 언론노조 등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문 정권보다는 오히려 본질적으로 민주노총과 더 가까운 포지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민주당이나 정부당국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가짜뉴스 처벌이 아니라 우리 사회 혐오와 차별에 대항해 차별금지법 제정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가짜뉴스 처벌을 주장하던 초반과 달리 왜 반대의견으로 돌아섰을까.

필자 분석으로는 가짜뉴스 처벌법이 문 정부와 긴장과 협력의 양면적 관계인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처벌법이 제정되면 아무래도 정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악으로 보는 수구보수 세력에게만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 역시 마찬가지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여론으로 문 정권을 밀고 당기며 지분행사를 마음대로 하기 힘들어진다. 이들이 가짜뉴스 처벌대신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함정을 비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방관자 된 보수우파, 결론은 좌파 프레임에 구속

이런 의도는 지난 달 추혜선 국회의원과 오픈넷 미디어오늘 주최로 열린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 표현의 자유의 위기> 토론회에서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한 발언을 통해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발언의 자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공격과 명예훼손 등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 싸워야 할 사회적 과제”라며 “한국 사회는 차별과 혐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때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에 앞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예를 들어 군인권센터 임 모 소장의 병역거부 행태에 대한 비판이나 서울시에서 여는 퀴어축제에 대한 반대, 제주도 난민 신청한 예멘인들을 함부로 비판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비판들은 주로 보수우파 성향의 국민이나 시민사회가 제기해왔던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정권 비판은 자유롭게 하되 정확히 보수우파 세력을 겨냥해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가짜뉴스 처벌법 제정이냐 아니면 차별금지법 제정이냐와 같은 논쟁에서 보수우파의 의미있는 목소리나 결집된 힘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이 논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있겠지만 보수우파 시민사회나 자유한국당에서 정확한 논리대응이나 정권과 좌파세력이 무시할 수 없는 강도의 압박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소외현상은 없었을 것 같다. 지금 이대로라면 보수우파는 가짜뉴스 논쟁의 결과도 좌파들의 논쟁 결과, 힘 대결 결과의 처분을 고분고분 따르는 길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가짜뉴스를 놓고 대립하는 문 정권과 좌파세력 논쟁의 결과가 어떻든 보수우파는 그들이 짜 놓은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얘기다. 사실 그런 흑역사가 한 두 해가 된 게 아니지만 명색이 자유를 목숨처럼 수호한다는 보수우파의 처지로는 딱하기 그지없다.

어찌됐든 자유 없이 살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문 정권을 비판할 자유를 박탈당할 가짜뉴스 처벌법이든 본격적인 사상통제법인 차별금지법이든 찬성할 수 없다. 북한 비핵화라는 거대 아젠다에 가려 자유진영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