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1888-1897)
[신간]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1888-1897)
  • 김민석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1.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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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스물다섯 살의 한 선교사가 조선 땅에 입국했다. ‘제임스 S. 게일’이란 이름을 가진 파란 눈의 그는 사십여 년간 조선 땅에서 조선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정동에 모여 살면서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던 대부분의 외국인과 달리, 게일은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조선인들과 어우러지며 깊이 교류하였다.

특히 그는 조선의 마지막 10년이라 할 수 있는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의 시간을 담은 책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는데, 해당 원서는 서방 세계에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소개한 최초의 저서이다. 이미 여러 권 소개된 바 있는 게일의 다른 기독교 서적과 달리 이 책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역사박물관’에 해당 원서의 초판이 전시되어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책이다. 

게일은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출간하였고,『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수많은 우리 고전과 조상들의 저서를 읽고 번역할 정도로 우리말에 능통하였다.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 등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에 소개하였고, 역으로 『텬로력뎡(천로역정)』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그는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겼는데, 단군 조선에서부터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집대성해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껏 우리에게 게일은 선교사로서 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위대한 한국학자이다. 그런 그가 서양 세계에 미지의 나라인 ‘조선’을 처음으로 알린 책이 바로 본서이다. 게일은 이 책에서 그간 우리가 역사책으로만 접해온 ‘아관파천’, ‘을미사변’, ‘명성왕후 시해’ 등 본인이 직접 겪은 역사의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는 이번 책은 잃어버렸던 우리 역사를 되찾은 듯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역자 최재형이 우연한 기회로 발굴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역자가 이 위대한 한국학자의 존재와 그가 우리에 관해 쓴 너무나도 소중한 이 저서를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되었다. 

역자는 지난 2006년,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본문 중 ‘한국인에 대하여 게일만큼 잘 아는 이는 없다’라는 문구가 발단이 되었다. 언니가 그림을 그리고 동생이 글을 쓴 이 책의 원제는 『Old Korea』로, 1919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인 자매가 몇 달 동안 머물며 느낀 것을 그림과 글로 엮어 1946년 서양에서 출간되었다. 평소에도 우리 문화와 역사에 관해 관심이 많던 역자는 대체 게일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평을 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는데, 게일은 단순히 한국인과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삶에까지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게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었다

사실 한영사전이 우리나라 말고 다른 곳에서 먼저 나왔을 리가 없으니 세계 최초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한영사전은 연세대학교 설립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창립자인 언더우드가 1890년 출간하였는데, 이 책 서문에 공저자로서 게일과 헐버트를 밝히고 있다. 게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897년 지접 자신의 이름으로 한영사전(한영자전, 최초의 Korean-English Dictionary)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증보판은 1967년 사무엘 마틴이 새한영사전(New Korean-English Dictionary)을 출간할 때까지 무려 70년간이나 그 독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게일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문학을 번역 출간하였다. 

1895년 그는 영국 작가 John Bunyan의 『The Pilgrim’s Progress(1678)』를 순 우리말로 번역 출간하였는데, 1888년 이 땅에 발을 처음 내디딘 지 불과 7년 만에 번역서를 출간할 정도로 그는 우리말에 통달하였다. 또한 그는 세계 최초로 우리 문학을 서양에 번역 출간하였다. 청파 이륙의 『청파극담(1512)』과 수촌 임방의 『천예록』에 전하는 이야기(야담)를 모아 『Korean Folk Tales』라는 이름으로 1913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하였고, 서포 김만중이 1687년 쓴 『구운몽』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는 제목으로 1922년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심청전』과 『춘향전』도 번역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역한 『청파극담』이나 『천예록』 모두 한문본이고, 『구운몽』 또한 언문본(한글본)과 함께 한문본을 모두 참고해 번역할 만큼 그는 단순히 우리말(한글)에만 통달했던 것이 아니다. 

또한 그는 정동에 모여 살던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서양인이 살지 않는 곳에서 조선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며, 사랑방에 앉아 한학을 공부했다. 『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그야말로 수많은 고전과 우리 조상의 저서를 읽고 번역했다. 

그는 구한말 역사의 현장에서 너무도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원군을 만났고, 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과도 알고 지냈다. 고종의 아들 의화군과 친구였고, 이범진, 박영효, 이상재 등 수많은 관리들과 밀접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미국 유학을 위해 추천장을 써주기도 했다. 청일전쟁의 현장에 있었다. 고종의 고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왕후가 시해되던 날 고종을 알현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였다. 오늘 출간되고 있는 많은 우리 역사서에서도 명성왕후 시해와 관련한 역사적 해석이 명확하지 않은데, 본 서에서 그리고 다른 기록으로 저자는 명성왕후 시해 직후 흘린 고종의 눈물과 울분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는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였으며,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다. 

선교사이자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든, 누구보다 뛰어난 한국학자로서 그가 성경 번역에 깊이 관여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표현 자체이다. 여호와 혹은 신에 해당하는 호칭에 대해 천주, 상제를 주장하는 다른 선교사에 맞서 우리 문화와 언어에 더 깊은 이해가 있던 게일은 순 우리말이면서 기독교와 관계없이도, 이미 온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개념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던 ‘하나님’을 주장하였고, 관철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긴 그는 진정한 한국학자였다. 

그의 이름 뒤에 ‘목사’라는 호칭이 붙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단순히 선교사 또는 목사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사십 권이 넘는 국영문 저서를 출간하고, 이 땅과 이 땅의 사람에 관한 수백 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긴 대학자이다. 이미 1895년 『동국통감』을 번역하여 우리 역사를 서양에 소개했고, 단군 조선에서 삼국시대, 고려,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였다. 그는 이 연구와 집필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우리 선조들의 역사서를 직접 읽었고, 현장을 답사했으며, 우리 역사와 관계있는 중국 역사는 물론 불교, 유교, 도교 등의 사상사까지 직접 연구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낯선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가 우리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출간한 최초의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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