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의 위헌성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위헌성
  • 원영섭 변호사
  • 승인 2018.12.17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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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법절차를 통해 죄를 선고 받는 등 판사가 범죄자에게 내리는 심판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는 당연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오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죄의 심판은 바로 신의 영역이었다.

제정일치사회에는 법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기에 죄의 심판은 신의 심판이거나 신의 대리인의 심판이다. 동서양 모두 신이나 하늘로부터 왕의 권한을 위임받았고, 그 권한을 관료가 재위임 받아 범인을 심판했다. 신이라는 초월자가 내리는 심판은 그 승복의 문제가 아주 간명하다. 신이 인간을 벌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을까

종교와 법이 분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 심판에 대한 승복의 문제가 남는다. 그 법관이 피고인보다 지식이 많은지, 도덕적인지, 인생을 더 잘 살았는지 피고인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같은 인간인 그 법관의 심판에 피고인은 승복한다.

그 승복할 수 있는 정당성과 권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인류는 치밀하게 사법제도를 가다듬었다. 절차는 공정해야 하고, 판결문은 논리적으로 완결해야 하며, 법관은 엄격하게 선발되어야 했다. 국가는 3심제 등 소송제도를 발전시키면서, 법관이 다른 그 무엇으로부터 독립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과정은 그 공부량에 있어 누구라도 고개를 숙연케 할 정도다. 그 훈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정의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일련의 절차는 결국 정당성과 권위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법대 위에 앉아 있는 법관이 개인적으로 똑똑하거나 착하거나 경험이 많거나 부자여서 피고인이 그 심판에 승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쌓아온 정당성과 권위 위에 법관이 앉아 있기에 그 심판에 승복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법부의 정당성과 권위란 사법이 올바로 기능하기 위해 모든 법조인이 지켜줘야 하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기구에서 국회가 법관을 탄핵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다수결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의 나라다. 현대 국가는 그 통치구조를 어떻게 구성하든 사법부의 독립이 보장되도록 한다. 사법부의 독립이 지켜져야 하기에 사법부를 제외한 다른 누구도 사법부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법관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결정을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법부의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덮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잘못은 사법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정치를 하는 입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절차를 지켜봤다. 그것이 여론조사 상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결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을 떠나서 그 탄핵재판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 여론조사는 오로지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고, 촛불집회는 광화문거리를 뒤덮었다.

그 상황에서 탄핵재판은 거대한 민의에 몸을 그대로 맞기지 않았었나. 그 당시 사실상 검사 역할을 한 주요 언론사들은 지금 정정보도를 내고 있고, 상당수는 와전된 소문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은 여론재판, 언론재판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탄핵재판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사법부의 정치 탄핵은 사법부 권위를 무너트린다

이 탄핵재판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자당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찬성했던 그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정의를 구현한 열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죄의 유무나 탄핵 찬성 여부를 불문하고 보수진영 전체가 모조리 궤멸되었다. 핵무기가 그 일대를 절멸시키듯, 보수진영의 다음을 이어갈 최소한의 정당성과 권위마저 붕괴되었다. 결국 탄핵은 환부만을 도려내는 치료법이 아니었고 환자까지 죽이는 마지막 심판이었다.

설사 지금 사법부가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탄핵으로 사법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자유한국당의 당협위원장인 필자는 당해 봐서 안다. 사법부 전체가 피폭된다. 법관 탄핵을 찬성한 그 법관을 비롯하여 누구도 ‘정당성의 붕괴’, ‘권위의 붕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정당은 정치적 퍼포먼스를 통해 정당성을 회복하는 방법이라도 있다. 다당제에서 자유한국당이 소멸하더라도 다른 정당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바른정당이 이미 그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정치적 퍼포먼스도 할 수 없고, 다른 기구로 대체하지도 못한다. 탄핵에 대한 극심한 반작용으로 공정하지 못한 재판만 양산될 것이다.

법관 파면 방식은 금고 이상의 형이나 탄핵소추뿐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가 의결된 순간 해당 법관은 직무가 정지된다. 법관을 탄핵하는 이유가 금고이상의 형을 확정 받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국회의 탄핵의결로 해당 법관을 재판에서 신속히 배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것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탄핵소추라는 국회의 정치행위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알 수 있다. 법원은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정치인들이 무리를 짓는 편당(偏黨)의 장이다.

법원의 진정한 가치는 부풀어진 민의, 그릇될 수 있는 다수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러기에 법관을 정치적 다수로 탄핵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인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보다 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다. 검찰의 수사는 진행 중이고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또다시 언론보도만으로 탄핵소추를 하는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정당성과 권위는 법관 개인을 모시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 국민들을 위한 현대 국가의 소중한 무형자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만든 소중한 자산을 자기 손으로 폐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원영섭 변호사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전 자유한국당 서울 관악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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