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분석] '새로운 항공로 열자’는 북한 제안의 꼼수
[안보분석] '새로운 항공로 열자’는 북한 제안의 꼼수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8.12.1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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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개성서 열린 남북항공협의, 서해·수도권 비행금지구역과 관련성 높아

지난 16일 북한의 제안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북항공협의가 열렸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동해와 서해를 통한 새로운 국제 항공노선을 열자”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협의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회의에서 북측은 동·서해 국제항로 연결을 제안했는데, 우리는 추후 회담에서 계속 논의하자고 답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후 내부적으로 북한의 제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남북항공협의가 열리기 하루 전,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9·19 평양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국방부가 발표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한강 하구 일대의 비행금지구역 기준선이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국방부는 남북군사합의 내용을 설명할 당시에는 서해쪽 비행금지구역이 시작되는 곳을 강화도 서쪽 NLL로 표기했다. 그러나 11월 10일 항공고시보(NOTAM)에 공개한 내용을 보면 경기 파주시부터 시작하는 데다 수도권 북부 지역은 비행금지구역에서 아예 빠져 있었다.

국방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믿는 기자들은 많지 않았다. 급기야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마친 뒤 질문도 제대로 받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국방부는 이튿날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을 한강 하구 서쪽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두 날의 발표를 이어보면 단순 실수가 아니라 북한과 제대로 협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북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의 미비점, 북한의 국제항로 신설 제안이 전혀 별개의 것일까. 아닐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강하구 공동조사 결과자료는 북한 정찰총국의 대남침투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제공
한강하구 공동조사 결과자료는 북한 정찰총국의 대남침투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제공

북한의 요구, 5·24조치로 못 쓰게 된 B467항로

국토부의 16일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서해상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항로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물론 북한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객기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항로다. 항로를 신설하려면 유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관련 내용을 제안하고, 주변국과의 협의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항로를 여는 데는 보통 1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북한의 제안을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 등 관계 부처들과 협의하고, 북한과는 앞으로 관련 협의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과의 첫 항공 관련 협의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북한을 지나는 항로는 이미 있으며, 한국 등 국제사회는 5·24조치 전까지 10년 넘게 이용해 왔다.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항공로에는 B467과 B332가 있다. B467은 1998년 4월 북한이 무해통항권을 가진 민항기의 영공 통과를 허락하면서 생긴 항공로다. 한국에서 러시아, 북미, 유럽으로 갈 때 북한 영공을 지나가는 항로다. B332는 북한 서쪽을 통과해 중국, 일본으로 가는 항로다. 한국 항공기들은 이 중에서 B467만 사용해 왔다.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B467를 이용하는 항공기들은 한 번 지날 때마다 130만 원 가량을 북한에 지급해 왔다. 2008년 한 해에만 북한에게 지급한 돈은 58억 4000만 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B467 항로는 한국 정부가 2009년 3월 통과를 금지한 뒤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당시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핑계로 “이 항로를 지나는 여객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협박한 데 따른 조치였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나고 한국 정부가 5·24 조치를 시행하면서 사용이 금지됐다. 북한은 그 뒤로도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을 자행해 항로가 재개될 가능성은 낮았다. 이로 인해 북한에 수십억 원의 이용료는 지불하지 않게 됐지만 항공사들은 우회 경로를 사용하느라 그보다 1.5배의 비용이 더 들었다.

북한이 이번에 제안한 항로는 북동쪽으로 향하는 B467과는 달리 북한에서 한국 서쪽 영해를 가로 지르는 방향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중국 동북 3성의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가 사용할 수도 있지만, 북한이 평양 순안공항 등에서 동남아시아나 중국 남동부로 갈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서해 NLL 무력화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북한이 제안한 국제항공로를 정부는 검토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 제공
북한이 제안한 국제항공로를 정부는 검토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 제공

북한의 NLL 무력화, 한국 국민 생각과 다른 방식

남북군사합의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그 내용을 보고 “문재인 정권이 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서해평화수역 조성과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다며 군사활동금지구역과 비행금지구역을 확대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조금 앞서 나간 주장이다. 남북군사합의로 지정한 비행금지구역, 그 중에서 서쪽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8km로 줄어든 비행금지구역을 1990년대 초반과 비슷하게 되돌린 것이다. 그보다는 비행금지구역을 경기 파주 서쪽으로는 정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정부 설명이 나왔을 때 청와대와 국방부는 “이 합의로 북한은 270km 해안선이 완충구역에 들어가지만 우리는 100km에 불과하다”며 마치 북한이 양보한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속지 않았다. “국방부는 남북 양측의 완충지역 거리가 80km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135km로, 북한이 50km, 한국이 85km로 우리 측이 훨씬 더 양보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한국이 서해 지역에서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한 이유로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가장 공감을 얻은 것은 노무현 정권 때 구상했던 ‘서해평화수역’을 실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의 서해평화수역은 서북도서와 한강 하구 일대를 중립지대로 만든 뒤 개성 인근부터 인천 영종도에 이르기까지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동 조업할 수도 있게 만든다는 게 골격이었다.

큰 그림에 대한 설명만 보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풀고, 북한 또한 개방적인 태도를 비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위험한 부분들이 여럿 나타난다. 우선 남북이 서해평화수역을 만드는 과정에서 한강 하구를 시작으로 인천과 영종도, 강화군 교동도 일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해류와 수심, 해저지형 등을 조사한 뒤 그 결과를 공동 소유하게 된다. 또한 한국 해병대 부대들이 주둔 중인 서북도서 주변에서 북한 어선들도 조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별 것 아니어 보이는 내용이지만 북한의 특징을 이해하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강 하구와 인천항, 강화 인근의 바다에 대한 조사 결과는 북한군이 공유하게 된다. 북한군이 보유한 정찰총국 소속 특수부대, 노동당 소속 대남공작원들이 해상으로 침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지역의 해류, 해저지형, 계절별 수온과 기상에 따른 해류 변화 등의 데이터다. 이것을 북한군과 공유한다는 말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북한의 어선은 모두 노동당 또는 인민군 소속이다. 어선을 사용해 조업하는 사람 가운데 민간인이 있기는 하나 이들은 노동당이나 인민군 해군이 가진 어선을 빌려 고기를 잡은 뒤 일부만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위험한 측면이 알려져야 함에도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서해 NLL을 포기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만 매달리고 있다. 청와대는 남북군사합의에서 북한이 “서해 NLL 주변에서 남북평화수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에 합의한 사실을 들어 “북측도 NLL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NLL 인정’이라는 작은 부분을 양보하고 대신 한국 수도권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얻은 것이다.

북한, 지난 2월 “한국 영공 통과하는 항로 열겠다”

남북항공협의에서 논의한 새로운 항로 또한 북한이 지난 2월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북한은 당시 “인천 비행정보구역(FIR,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삼은 한반도 비행구역)을 통과하는 신규 항로를 개설할 수 있게 허용해 달라”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요청했다. 지난 5월 ICAO 관계자들은 북한의 요구가 적절한지 확인하기 위해 방북했다. 이때 북한이 새로 열어달라는 항로가 ‘평양-인천 노선’임이 알려졌다.

앞서 말한 B467 항로는 인천에서 동쪽으로 날아간 뒤 북한 동해상 영공인 ‘평양 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하는 경로다. 반면 북한이 이번에 요구한 항로는 평양 순안공항 등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서북도서와 김포공항, 인천공항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 상공을 지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북한 공군 전력이 낙후돼 있기는 하나 11만 명의 병력이 820여 기의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19기의 여객기를 보유한 ‘고려항공’도 운영하고 있다. 고려항공 승무원은 모두 북한 공군 소속이다. 북한 공군이 보유한 수송기 가운데는 AN-2와 같은 낡은 것도 있지만, An-24기 6대, IL-18기 2대, IL-62M기 3대, IL-76기 3대도 보유하고 있다.

각 기종은 50여 명, 80여 명, 170여 명, 250여 명을 태울 수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등도 사용하는 IL-76 수송기는 보잉 B767급으로 화물 50톤을 수송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김정은과 북한 고위층의 전용기로 사용되는 IL-62M과 수송기 IL-76을 제외하고 다른 수송기는 평소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로 운용 중이다. 이들이 한국 수도권 상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평시에, 유사시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한국 하늘 열어주면 손해만…북한 하늘 열어줘도 실익 없어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함을 보이는 행태를 떠올리면, 조만간 한국 영공이 북한 공군에 활짝 열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서해 NLL과 수도권 앞바다 또한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은 북한에 그런 요구를 할 수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일본, 호주, EU 등의 대북제재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자행한 데 대한 조치로 2016년 3월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유엔 회원국은 북한에 항공기·승무원 제공 등을 해서는 안 되며, 대북제재 위반품목을 싣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항공기에 대해서는 이착륙은 물론 영공·영해 통과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결의안이 나온 뒤 전 세계는 고려항공의 취항을 모두 취소했다. 중국과 러시아만이 노선을 그대로 유지했다.

미국은 북한 유일의 항공사 고려항공을 2016년 12월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2017년 9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제재 행정명령 13810호에 서명, 북한 영공을 경유한 항공기는 180일 동안 미국에 이착륙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북한 영공을 통과해서 가는 B467 항로의 경우 북미 노선 이외에는 별 필요가 없다.

즉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에 따라 한국 국적 항공기들은 북한 영공을 통과했을 경우 수백만 원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6개월 동안 미국 노선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어서 별 실익이 없다. 게다가 북한 영공을 통과할 때 지불하는 통행료의 경우 그 금액이 억 단위가 되고 지불수단 또한 달러가 될 경우에는 미국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제재 규정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각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와 남북예술단 상호방문 공연, 한국 항공사 전세기의 북한 방문 사례 등을 앞세워 “제재 내용과 무관한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하순부터 2월까지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대표단의 방한, 한국 스키선수들의 마식령 스키장 방문, 3월 한국 예술단의 전세기 이용 방북,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 공개 당시 중국에서 원산 갈마공항까지 세계 각국 기자들이 방북한 점 등을 예로 들면서 “평양과 인천 노선이 생긴다고 해도 핵무기·탄도미사일과 관련이 없으면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 “문재인 정부, 트럼프 만만하게 보면 큰 일 날 것”

그러나 이런 주장은 유엔 안보리는 물론 미국을 대단히 무시하는 행동으로 보이기 쉽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과 솜방망이 처벌, 남북군사합의 당시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에 추후 통보한 점,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현지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했으니 이제는 대북제재를 좀 완화하자”고 제안하고 다니는 모습 때문에 백악관과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워싱턴 안팎에서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와 미국 중진 의원들은 여전히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며 한국의 위험한 시도를 두고 특별히 비판이나 경고를 하지는 않지만, 국내외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행동으로 인한 트럼프 정부의 스트레스가 점점 한계점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10월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국(TFI) 부차관보가 국내 7대 시중은행의 준법감시인(부행장급)과 컨퍼런스 콜을 갖고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 그보다 앞선 9월에는 미국 국무부가 “평양남북선언 가운데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거듭 내놓은 것 등이 트럼프 정부의 속내라는 분석도 계속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문재인 정부가 미국·일본과의 삼각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 편에 서서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한미연합사 해체를 서두를 경우 트럼프 정부가 지금까지 한국이 저지른 대북제재 위반을 모두 모아 공개하고 한국 기업과 정부 기관들에게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시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의 안보는 물론 경제까지도 순식간에 몰락하게 됨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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