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궤도의 과학 허세...아는 척하기 좋은 실전 과학 지식
[서평] 궤도의 과학 허세...아는 척하기 좋은 실전 과학 지식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2.24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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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는 이제 일반명사다. ‘수포자’는 ‘수학을 포기한 자’의 줄임말인데, ‘수포자’가 이렇게 많다면 과학을 포기한 ‘과포자’가 그보다 적을 리 없다. 그런데 의외로 ‘과학’과 관련된 화제를 피해가긴 어렵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할 때, 가상화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과학을 알아야 할 거 같다.

하지만 이미 고등학교 과정도 마치기 전에 과학은 포기했으니, 과학 기사를 읽고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그런가 보다’ 한다. 이런 이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분명히 과학을 주제로 하는데, 경쾌하고 발랄하다. 이 정도만 알면 나도 과학 관련된 화제가 나왔을 때 “내가 이건 좀 알지”라며 허세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제목도 『궤도의 과학 허세』다.

이 책의 저자인 ‘궤도’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인공위성 궤도를 전공했기 때문에 ‘궤도’라는 예명을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TV <곽방TV>,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 등 여러 플랫폼에서 과학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그 덕분에 이 분야에서는 꽤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젊은 느낌으로 만들면서 다듬어진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가상화폐, 다이어트, 연애 같은 친숙한 주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힉스, 블랙홀, 양자역학 같은 하드코어한 과학 개념들도 다루는데 모두 쉽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양자역학에 관한 ‘썰’을 푸는 거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양자역학이 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랜 시간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 내공이 집약되어 있다. 

저자는 과학을 브로콜리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무섭게 생겨서 잘 못 먹었지만, 굴소스로 된 요리를 먹은 후에는 브로콜리 마니아가 되었다는 경험을 들려주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이 굴소스 같은 역할을 해서, 과학과 친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과학의 매력을 알려주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과학은 과학자들만 하는 일인 것 같지만, 현대인들은 과학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알파고는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후 때문에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한다. 이런 이슈들을 이해하고 관련된 논의에 참여하기 위해, 과학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교양이 되고 있다. 쉽고 재미있게 과학을 소개하는 이 책은 독자들이 과학 논의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굴소스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신도림에 서 있는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트와이스 쯔위라면 어떨까? 날씬한 체형이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전철을 타러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쯔위를 알아본 수많은 시민들이 사인을 요청하거나 휴대폰으로 찍어댈 테고 아마 전철을 갈아타러 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기가 많아 시민들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면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힉스 장의 효과다. 보이는 것과 관련 없이 가장 무거운 입자는 힉스 장과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입자이고 가장 가벼운 입자는 가장 적은 상호작용을 하는 입자다.” 

이는 『궤도의 과학 허세』에서 힉스 장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힉스 장을 설명하기 위해 신도림역과 쯔위를 거쳐 상호작용에 도달한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여서 어렵다. 하지만 비유와 농담이 가득한 ‘과학 허세’는 내가 아는 언어로 어려운 상황을 풀어준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이 쉽고 신나는 것이라는 즐거운 착각에 빠지게 한다”. 

뉴스에서 하루 한두 잔 와인을 마시면 좋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면 빙하도 녹고 지구 전체가 다 따뜻해져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곳에는 한파가 닥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다. 그때 과학은 확실한 답은 아니더라도 잠정적인, 최소한 활발하게 논의 중인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학의 언어가 어려워서 과학적인 답을 구하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궁금증들을 젊은 언어와 감각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독보적이다. 연애, 다이어트, 먹방 같은 친숙한 주제에서부터 블랙홀, 힉스, 양자역학같이 가장 진지한 과학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귀신, 외계인, 자유의지 같은 과학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올 거 같은 주제까지 과학이라는 현미경을 사용해 들여다본다. 독자들은 유쾌한 농담과 ‘썰’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과 어색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과학 뭐 별거 아니네”라고 허세를 부리는 자신을 마주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과학적인 주제가 사회적인 논의나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주제는 과학을 잘 아는 전문가에게 일임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사회 전체, 국가와 지구 전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게 되고서는 이걸 과학자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편으로 과학은 세계와 우주,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필수 교양으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유사과학에 빠져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도 과학적인 지식이나 마인드는 필수다.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라도 과학을 알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많이 이에게 일단 과학과 친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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