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유죄’가 씁쓸한 이유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유죄’가 씁쓸한 이유
  •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 승인 2018.12.24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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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위반 첫 유죄 판결,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이정현 의원이 박근혜 정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 세월호 보도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얼마 전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의 결과가 언론의 역할은 권력 견제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에 부합함에도 몇 가지 문제와 아쉬움을 느껴 지적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해 이 사건이 성숙한 민주의식, 언론의식 속에서 당사자들 간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법의 강제력에 의해 결론 나게 된 것은 어찌됐든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판결로 정부는 아무리 불공정 보도의 피해자가 되더라도 언론에 항의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억울하다고, 도와달라고 자칫 전화 한통 넣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무조건 악이고 언론은 절대선이라는 이분법적 통념과 잣대의 고정관념이 적용된 것은 아닐까. 30년 이상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방송법 위반 규정이 왜 유독 이번 사건에만 적용됐는지, 법원이 앞뒤 전후 맥락은 찬찬히 따져봤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운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시계를 2014년 4월 당시로 돌려보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거의 모든 언론은 해경 등 정부 대처에 문제가 있다며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퍼 부었고 언론대응에 미숙했던 박근혜 청와대는 난타에 거의 혼수상태 지경이 되었다. 추측해 보건데 홍보수석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 와중에 KBS만큼이라도 정부 입장이 조금이라도 반영되길 바라는 심정에 당시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었고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국장님 요거 한번만 도와주고 만약 되게되면 나한테 전화 한번 좀 해줘~ 응?” 비굴해 보일만큼 이런 저자세로 매달렸던 것 같다.

필자가 당시 언론 보도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론은 대형사건 하나 터지자 굶주린 하이에나 떼가 고기 뜯듯 청와대를 뜯을 만큼 펄펄 살아있었다. 언론은 흥분한 여론을 따라가고 때론 과장과 왜곡을 더해 여론을 적극적으로 흥분시키며 대중을 피와 살에 굶주린 이성 잃은 좀비 떼로 만들어갔다. 흥분한 군중을 따라가긴 KBS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는 언론대응해선 안 된다는 비현실적 판결

좌파세력은 언론이 박근혜 정부에 장악됐다고 입만 열면 떠들었는데, 정말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숱한 과장, 왜곡 허위보도가 나올 만큼 언론이 무소불위였던 그때 상황에서 KBS가 청와대 압력으로 보도해야할 것을 보도하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KBS보도국장이 홍보수석에게 외압을 받았다는 대화 녹취록 전문을 읽어봐도 그렇다. 읽는 사람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아무리 읽어봐도 청와대 홍보수석이 강압적으로 뉴스편집에 개입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척이나 저자세였다. 이건 개인의 주관적 느낌이니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실제 외압의 성과가 있었는가 아닌가로 판가름해야 한다. 박근혜 청와대 홍보수석이 그렇게 매달렸어도 KBS는 보도했고, 후속보도도 줄줄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오 모 판사는 30년 넘게 방송법 위반 적용 사례가 없는 그간 관행이 이유가 될 수 없다면서도 첫 사례니만큼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론 청와대가 언론사에 전화 한통 넣어도 감옥행이기 십상이다.

언론자유는 청와대가 방송사, 신문사에 아예 전화를 못 하도록 원천봉쇄할 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직무상 늘 언론을 상대한다. 언론도 권력을 감시하려면 끊임없이 권력과 소통해야한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언론사 사이에 온갖 말들이 오고갈 수 있다. 상식적이라면 청와대는 언론자유를 해치는 직접적인 요구나 위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언론사는 직업적 양심에 비추어 외압에 굴복해선 안 된다.

정상적인 민주사회라면 권력과 언론사 사이에는 충돌이 있어도 이런 건강한 자정기능이 작동한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이런 문제가 법정으로 옮겨간다면 실제 외압의 결과가 이뤄졌는지 전후 맥락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아무리 청와대라지만 부당하다고 느끼는 언론보도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좀 봐 달라”는 전화를 했다고 실제 이루어진 것도 없는데 방송법 위반으로 처벌한다면 앞으로 모든 권력은 언론대응에서 손을 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언론자유 보호’ 궁극적 목적 사라진 기계적 판결

오 판사 논리대로라면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이 특정 언론 기사를 지목해 비난하는 것도 언론사 쪽에서 법적 대응을 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보도에 의하면 김의겸 대변인은 며칠 전 청와대 전 특별감찰반 직원 김태우 수사관 폭로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사를 향해 “이제 더 이상 급이 맞지 않는 일 하지 말자”며 “그걸 데스크에게 간곡히 말씀을 해달라”고 했다. 청와대 출입하는 기자들 앞에서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대변인이 저런 말을 했다면 소속 기자와 언론사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건 외압인가 아닌가. 호소인가 협박인가.

오 판사는 박근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 전화한 시기와 이유, 말의 내용에 비춰 단순 의견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의사를 표시해 상대방 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총체적인 맥락을 따져야 한다. “뉴스편집에서 빼달라” “다시 녹음해달라”라고 말했다고 언론에 직접 간섭한 것으로 봐야할까. 그렇다면 “데스크에게 간곡히 말씀해달라”고 한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글은 분명 이정현 전 수석을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쓴 것이 아니다. 그가 언론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모르고 KBS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징징거린 사실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법원이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로 언론에 대한 외부 세력, 특히 국가 권력의 간섭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며 기계적 판결을 내린 것이 정말로 언론자유를 위한 길인지 모두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청와대 권력과 언론사 내부 권력이 짬짬이, 한통속이 돼 있는 지금 KBS의 현실은 어떤가. 지금 KBS는 겉으로는 청와대로부터 전화 한 통 안 걸려오고, 그 어떤 외부 권력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안전한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런 KBS가 문비어천가, 땡문뉴스만 쏟아내는 관제 어용언론으로 전락했다는 지탄을 받는 현실을 오 판사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언론자유를 보호하는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알권리 보호에 있지 언론사 보호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이걸 오해하면 안 된다. 30년 이상 방송법 위반 규정으로 처벌한 적이 없는 관행이 왜 여태껏 지켜져 왔는지 2심에서는 좀 더 고민한 세심한 판결이 나오기 바란다.

박한명 언론인·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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