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구름, 하늘, 햇빛 그리고 비를 통해 보여지는 예술과 문학
[리뷰]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구름, 하늘, 햇빛 그리고 비를 통해 보여지는 예술과 문학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12.2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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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지어진 탑에서 휴가를 보내던 저자는 추위에 잠에서 깨어 문득 20년 전, 100년 전 혹은 400년 전에 여기 머물렀던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추위를 느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이 책에는 날씨를 대하는 예술가들의 각양각색의 태도와 그것이 작품에 미친 영향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영국의 시인 초서, 14세기 루트렐 시편집의 작가, 18세기 윌리엄 터너와 제인 오스틴, 19세기 브론테 자매, 존 컨스터블, 20세기 버지니아 울프에서 현대 작가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까지… 수 세기에 걸쳐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공기 속을 걸었던 작가, 예술가들이 모두 저마다 다른 것을 느끼고 그것들을 소설, 시 그리고 그림과 음악에 투영시켜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사전적 의미의 날씨가 아닌 인간의 상상 속에 매일매일 창조되는 날씨 이야기를 다룬다.

햇살, 비, 바람, 구름, 안개, 서리, 눈보라, 폭풍우, 천둥, 번개, 홍수, 가뭄! 우리 몸과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매일 날씨를 경험한다. 날씨는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를 하나로 엮어 주는 가장 효과적인 끈이기도 하지만, 또한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각자가 체감하는 느낌은 모두 제각각 다른 것이기도 하다. 저마다 개인적인 기억과 기분으로 날씨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또 하나, 우리에게 날씨의 어느 한 부분은 작가나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순간 덧없이 지나가는 날씨에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반응했는지 또 날씨의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를 작품에 영원히 기록해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너선 스위프트가 1713년 ‘Bloody cold(얼어 죽겠다)’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 구름 속으로 녹아들고 싶다던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 구름을 병에 담아 저장해두고 싶었던 존 러스킨 등등. 이 책에는 날씨를 대하는 예술가들의 각양각색의 태도와 그것이 작품에 미친 영향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저자인 알렉산드라 해리스는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가와 예술가의 작품에 영감을 준 작은 디테일은 물론이고 다양한 작품에 대한 각각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려준다. 

날씨는 엄청난 자연의 힘과 결합하고 포착하기 어렵다는 속성 때문에 거의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날씨를 신성한 것으로 여겨왔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가장 최악의 벌이 재난을 가져오는 날씨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기독교에서 죄지은 인간에게 내려지는 징벌 중 하나가 변화무쌍한 날씨이다. 날씨가 전부 비유적인 의미나 상징으로 쓰이던 시대가 있는가 하면, 강우기에 쓰인 숫자들이 천상의 신들을 모신 신전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시간을 거슬러 떠나는 날씨 여행은 대략 8세기나 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방랑자>라는 애가에서 시작하는 연대기이다. 영문학의 시발점은 얼음과 우박 그리고 겨울의 고독과 같은 ‘추위’에서 시작한다. 앵글로색슨 시기의 작품은 겨울에 대한 인식은 비할 바 없이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반면 따뜻함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고 태양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문학에서 따뜻함은 태양이 아니라 연회장에서 타오르는 실내 불빛이었다. 

저자는 축축한 들판과 서리가 내린 초원을 가로질러 두꺼운 안개를 통과하며 독자인 우리를 이끄는데 겨울은 항상 춥고 봄은 항상 화창한 튜더 문학과 번개, 천둥, 폭풍의 기괴한 우주쇼에 매료되었던 엘리자베스 시대를 거쳐 18, 19, 20세기 그리고 현재의 21세기까지,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광범위하지만 혼란스럽지 않게, 수많은 예술 작품을 통과하는 이 멋진 ‘시간 여행’에 독자들은 분명 매료될 것이다. 

14세기에는 아무도 매일같이 밖을 쳐다보며 자기가 본 것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링컨셔의 한 목사만 제외하면. 링컨셔의 목사 윌리엄 머를은 7년 동안 날씨 일지를 꾸준히 썼는데, 1337년부터 1344년의 날씨 상황을 정확히 기록해놓았다. 17세기의 서리 지방의 목사 윌리엄 엠즈는 작은 공책에 빽빽이 날씨를 적어 놓았다. 현재 윈체스터 대학에 보관된 그의 일기는 인간이 어떻게 날씨와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전환기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윌리엄 쿠퍼의 말이다. 그는 겨울에 대해 진정한 기쁨을 가지고 시를 쓴 최초의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그에게는 ‘겨울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신선한 공기가 없음” 샬럿 브론테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 말은 과장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날씨가 실제로 우리 삶의 플롯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날씨를 소설 속 인물들의 나날의 삶 속에 끼워 넣었다. 다만 오스틴의 관심은 날씨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날씨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이 책은 소설, 희곡, 건축, 시, 그림, 일기, 편지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문화적 날씨를 담은 한 편의 파노라마와 같은 책으로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 담긴 그들의 경이로운 감각의 기록들이 약 60여 점의 아름다운 도판과 함께 풍부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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