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 팩트체크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팩트체크 한다
  •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
  • 승인 2018.12.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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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여야 5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한 뒤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열흘간에 걸친 단식 이후에 이뤄진 합의다. 단식한 두 대표의 명분은 이른바 사표 방지를 통한 투표의 비례성 제고. 즉, 정당에 대한 투표율과 의석수의 불일치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흔히 독일식으로 알려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성 제고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바로 국회의원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 60% 이상이 ‘의원 특권을 줄인다고 해도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는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손쉽게 선거제도 개편에 합의한 것인데, 문제는 국민들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의원수가 급속히 늘어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정확히 알리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1인 2표제로 유권자가 투표 용지 왼편의 제1투표와 오른편의 제2투표를 동시에 실시한다. 제1투표는 지역구 후보 중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우리와 같고, 제2투표는 정당에 대한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제1투표와 제2투표가 따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제2투표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수를 먼저 배분하고, 제1투표 당선자를 우선 배정한 뒤 남은 의석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 순서대로 당선시키는 방식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지역의 대표성을 확보하면서도 사표를 최소화하여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비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등 소수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이 장점을 강조하면서 도입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장점보다 훨씬 큰 단점이 있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의원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도 이중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단식을 한 두 당대표는 물론이고, 합의를 해 준 나머지 정당의 대표들도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연동제 비례대표, 의원 수 증가

먼저 1차적으로 의원정수가 늘어나게 된다. 정치권과 언론은 현재 300명인 의원정수를 330명으로 늘릴 것인가 아니면 360명으로 늘릴 것인가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여야 5당은 330명 이내로 늘리는 것을 검토하기로 합의했지만, 심상정 의원과 진보시민단체연합은 360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란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더 큰 문제, 즉 선거 결과에 따라 2차적으로 의원정수를 넘는 국회의원이 선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설혹 의원정수를 330명으로 정한다 하더라도 실제 당선자수는 400명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독일의 경우 국회의원 정수는 598명(지역구와 비례대표 각각 299명)인데, 실제 선출된 의원수는 2013년 총선 때는 631명, 2017년 총선 때는 709명으로 늘어났다. 정수가 598명인데 선출은 709명이라니 쉽게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이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고 그래서 우리가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되는 제도인 것이다.

도대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의원수는 왜 이렇게 늘어나는가? 헤어·니마이어 방식이나 생그라·쉐퍼스 방식과 같은 수학공식이 등장하는 등 다소 복잡하지만,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구투표(제1투표)와 정당투표(제2투표)가 연동되면, 다음 3가지 경우가 있게 된다.

첫째는 A당이 정당투표에서 10%를 득표하고 지역구 투표에서도 같은 10%의 의석을 확보하는 경우다. 이때는 투표의 비례성이 확보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둘째는, A당이 정당투표에서 10%를 득표했는데, 지역구 투표에서는 5%밖에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다. 이때는 비례대표 명부에서 5%에 해당하는 숫자만큼 더 당선시키면 되므로 큰 문제가 없다.

마지막 경우가 문제다. A당이 정당투표에서 10%밖에 얻지 못했는데 지역구 투표에서는 그보다 많은 20%가 당선되는 경우다. 이때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비례성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지역구 당선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 20%를 10%로 강제로 줄일 수는 없다. 따라서 비례대표를 늘려 비례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초과의석 제도와 균형의석 제도다.

(1)일단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은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높아진다 하더라도 모두 추가로 당선된다. (이를 초과의석이라 한다) (2)그렇게 되면 각 정당간 정당투표 득표비율이 깨진다.

독일과 다른 한국, 시기상조

A당은 10%의 지지를 받았는데 의석은 20%를 가져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B당, C당과 D당에도 추가로 비례대표를 얹어 줘 정당득표율 비율을 맞추게 된다. (이를 균형의석 또는 보정의석이라 한다) 바로 이 초과의석과 균형의석 때문에 독일의 최종 당선자수는 저절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제도 때문에 독일의 경우 의원정수가 598명인데도 2013년에는 정수보다 33명이 많은 631명, 2017년에는 정수보다 무려 111명이나 많은 709명이 최종 당선되었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는 의원정수를 30명 늘리느냐, 60명 늘리느냐를 놓고 논쟁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크고 통제할 수 없는 초과의석과 균형의석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얘기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과 진보단체에서는 국회의원 세비 총액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동결하고 정수를 360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2017년 독일의 경우처럼 의원정수보다 100명 이상이 추가로 당선되더라도 지금 수준의 예산으로 나눠쓰자고 주장할지는 의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의심하듯 처음에는 동결했다가 의원수가 늘어난 것을 빌미로 다시 세비 인상을 시도할 개연성이 커지는 대목이다.

독일과 우리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에 큰 격차가 난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독일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 10명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7위가 교황이었는데, 놀랍게도 1위부터 6위까지가 정치인이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100위 안에도 정치인이 들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깊다면 100명이 아니라 200명이 늘어난들 국민들이 동의해 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우리나라에서 높은 신뢰를 받는 독일 정치라는 환경을 무시하고 평면적으로 독일의 선거제도를 도입하여 의원 수만 늘리려는 시도는 강력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
하버드대 정책학 석사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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