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창출에 실패한 한국의 정당
리더십 창출에 실패한 한국의 정당
  • 주동식 인터넷신문 ‘제3의길’ 편집인
  • 승인 2018.12.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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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북의 체제 대결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김씨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체제가 존립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남북의 국력은 비교 불가능이다. 경제, 인권, 과학기술, 사회적 성숙도 등 모든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김씨조선을 압도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유가 뭘까?

결국 정치투쟁의 패배가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김씨조선은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분명한 통일전략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 근거해 일관된 실천을 해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친일 문제를 비롯한 근현대사 정통성 투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린 것도 결국은 정치투쟁에서의 패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왜 거기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까? 정치란 본질적으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와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의 문제를 총괄하여 단일한 전선을 형성해내고 이를 지휘 감독하며, 투쟁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배치하는 것은 결국 정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광장을 넘어 정치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정당정치의 실패이며 보수세력은 이 실폐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이다.
촛불시위가 광장을 넘어 정치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정당정치의 실패이며 보수세력은 이 실폐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치의 실패는 리더십 창출의 실패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에서는 왜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못할까? 그 이유를 나는 ‘말(언어)의 부재’라고 본다. 정치는 사실상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본질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행위이자 기술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가장 본질적인 무기는 바로 말일 수밖에 없다.

정치는 말을 통해 국가적 아젠다를 제시하고, 그 아젠다를 어떤 철학에 근거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정책과 정치노선 그리고 조직 원칙을 제시한다. 이것이 강령, 규약 그리고 정치 프로그램이며 가장 중요한 정치 콘텐츠이다. 이 모든 것은 말이며, 텍스트이다. 이 말과 텍스트가 리더십을 만드는 기본 재료여야 한다.

한국의 정치는 이 말과 텍스트가 정치적 리더십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즉, 그런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 프로세스와 시스템은 일시적이거나 휘발성이어서는 안 되고 지속성과 체계성, 법률성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의 물질화 형상화가 바로 정당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실패는 정당정치의 실패이다. 촛불시위 대중이 광장정치를 선호하지만, 이것은 사실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정당정치의 실패가 낳은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보수세력은 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이자, 피해자이다. 말 많으면 빨갱이라며, 정치에서 말을 배제하는 데 주력해온 것이 보수세력이다. 그 후유증을 온통 뒤집어쓰고 있는 것도 보수세력이다.

정당은 콘텐츠 경쟁을 통해 집권하는 조직이다. 이 콘텐츠 경쟁이 일일이 유권자 찾아다니며 설명해서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는 정당에 소속된 특정 인물을 통해서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나 정체성 등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특정한 정치 노선이나 정책 등을 앞세워 정치적 실천을 해온 인물을 통해서 정당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정치적 리더십은 정치 콘텐츠의 인격화여야 한다. 정당은 이 콘텐츠가 인격화할 수 있는 프로세스와 규율, 조직문화를 갖추고 정치 리더십을 생성해내는 모체여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당은 그 모체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이 사실이 명백해진다. 정치가 아닌, 정치권 밖의 업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의 검증을 대신한다. 대표적인 것이 안철수의 사례이다. 하지만 문재인, 박근혜, 홍준표 등도 예외가 아니다.

진성당원들에게 결정권이 돌아가야

정당 내부에서, 정치 콘텐츠로, 자격을 갖춘 당원들에 의해 정치 리더십을 검증받는 프로세스가 없으니 정치권 밖에서, 정치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정치적 리더십 검증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당 정치 파행의 근본 원인이다. 정치적 능력이나 리더십과 전혀 동떨어진 인물들이 정치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정당의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왜곡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이권 정치이다. 어느 조직이나 돈을 대는 사람이나 집단이 조직을 주도한다. 정치 콘텐츠로 리더십을 만들지 않으니 정당도 돈 대는 사람의 뜻에 따라간다. 그러니 정당에서 유통 거래되는 것이 정치 콘텐츠와 가치가 아니라 정치적 이권이다. 이것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핵심 요인이다.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이 당원에 의해서, 정치 콘텐츠에 대한 검증이란 절차를 밟지 않기 때문에 정당정치의 주도세력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대표적인 정치 주도세력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5·16으로 등장한 육사 출신 중심의 정치군인들이다. 둘째는 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우리 정치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한 이른바 86세대들이다. 이 두 집단은 이념성, 조직성, 훈련도, 지적 능력 등에서 대한민국 다른 집단들보다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쉬운 위치였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시대적 과제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 세력으로서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바로, 본질적으로 비정치적 집단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그것이었다.

군인들은 정치를 하라는 조직이 아니라 국방을 위해 특화된 조직이다. 학생들은 사실 이념적 철학적으로 성숙하기 어려운 연령적 경험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한계가 한국 정당정치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정치세력의 경우 사실상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정치군인들에게 정치란 행정의 하부 단위였다. 이들의 정치적 리더십은 당원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정치 콘텐츠의 검증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 의한 사실상의 ‘임명’에 의해 이뤄졌다.
 

경제가 아닌 정치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북한 김씨조선에 패배하고 있는 모양새다
경제가 아닌 정치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북한 김씨조선에 패배하고 있는 모양새다

보수가 살려면 정당정치 정상화 해야

사실상 정치를 한 적이 없이 정치적 경험이 없으니 태극기부대가 많이 모여도 어떻게 정치적 행동을 만들고 성과를 조직할지 모른다. 정치로 닳고 닳은 좌파에 비하면 유아적 수준의 정치 인식과 훈련도를 갖고 있다.

영남 출신의 원로 변호사에게서 들은 얘기다.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탄핵이나 문재인의 집권을 보면서 마치 부모님 상을 당한 것 같은 우울함을 느낀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동시에 하는 얘기가 “그래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자유한국당 놈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혜택 받고 잘먹고 잘살던 웰빙족들 아니냐”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불신은 엘리트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그들이 정치적 리더가 되는 프로세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프로세스에 의해 무능한 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을 갖는 것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총선 때마다 40% 가량 교체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교체율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세대교체 얘기가 나온다. 이건 뭘 말할까? 밀실형, 낙하산식 공천으로는 세대교체 나아가 리더십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얘기 아닐까?

한국의 정치, 특히 보수정치가 살려면 정당정치를 정상화해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 정치가 한번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정당정치의 주역을 만들어내고 그 주역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주역이란 바로 당원이다. 진성당원에게 당의 핵심 의사 결정권을 줘야 한다. 그래야 토론이 이뤄진다. 토론은 공천과 조직책 선정 등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만 조직된다.

그 토론이 바로 정치적 콘텐츠가 유통 검증되는 통로이다. 이것이 정치의 선진화이다. 보수 정치가 좌파를 이기는 길은 그들보다 더 선진화된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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