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실제로 제작되어 작동되지는 않은 ‘공학적 상상력’을 맛보다
[신간]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실제로 제작되어 작동되지는 않은 ‘공학적 상상력’을 맛보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01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아고스티노 라멜리는 베일에 가려 있을 정도로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1588년에 다양한 기계의 작동에 대한 그림과 설명을 담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을 출간하면서 기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세상에 없는 멋진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설계도를 통해 보이는 ‘종이 위에서의 공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을 출간하였다. 라멜리의 기계들 대부분은 실제로 제작되어 작동되지는 않은, ‘공학적 상상력’의 결실이었다. 취수기, 제분기, 교량, 기중기, 분수 등 총 195개의 발명품을 그렸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바퀴 독서대’가 있으며, 취수기를 비롯한 여러 기계들은 중국 책 《기기도설》에도 소개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도시는 상업으로 인해 커지고 복잡해졌으며, 부를 축적한 권력자들은 운하를 놓고 다리와 댐을 건설하는 거대한 토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 성당을 설계한 브루넬레스코, 과학 기술과 예술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 엔지니어들이 창의성을 유감없이 뽐냈다. 이들을 비롯하여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명성을 누렸고, 책을 써서 자신의 전문지식을 세상에 전파했다. 

이러한 엔지니어 가운데 군사기술자 아고스티노 라멜리가 등장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2개국 언어로 써서 프랑스에서 출간한 이 책은 기존의 책들에 비해서 그림의 세부 묘사와 도판의 질이 우수하고 설명이 자세하다. 

라멜리는 자신의 책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에 수록한 195개의 기계들을 실제로 만들었을까? 그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더라도 당시에 만들어져서 실제 작동하는 기계들을 묘사한 것일까? 

라멜리의 기계들은 실제로 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기계공학적인 재능과 독창성을 뽐내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공학적 원리를 따르면 이 세상에 없는 멋진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설계도를 통해 보이는 ‘종이 위에서의 공학engineering on papers’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잠수함이나 프로펠러 헬리콥터가 실제 제작되지 않았듯이 라멜리의 기계들도 대부분 제작되어 작동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공학적 상상력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라멜리의 이러한 노력은 기계 작동에 대한 모형을 이해하고 만드는 역사에서 이정표의 역할을 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교한 기계공학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라멜리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에는 총 195개의 도판이 있는데, 그 가운데 취수기가 110개, 곡물 제분기가 21개, 기타 제분기 4개, 크레인 10개 큰 물체를 끄는 기계 7개, 굴착기 2개, 방죽이 2개, 분수가 4개, 군사용 다리가 15개, 스크류 잭 및 분쇄기기가 14개, 투척기가 4개, 포수의 사분의가 1개, 그리고 바퀴 독서대가 1개 있다. 

그런데 취수기가 110개나 된다. 이는 농업 사회에서 농업 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실제 라멜리가 그린 그림과 설명을 보면 취수기의 목적은 왕이나 귀족의 정원에 물을 대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크고 작은 전쟁을 수행한 왕이나 귀족들은 군사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라멜리는 군사 기술에 관한 그림이 많다. 

195개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발명품이 Plate번호 188 ‘바퀴 독서대book wheel’다. 이 기계는 8권의 책을 올려놓고 손이나 발로 바퀴를 회전시키며 읽는 장치다. 도판 하단에 부품을 따로 보여주는 부품도 기법을 채용하였고, 왼쪽 바퀴 상단에는 단면도 기법을 사용하여 바퀴 독서대의 작동방법을 설명하였다. 바퀴 독서대 역시 실제로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불필요할 정도로 라멜리의 독서대가 복잡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 더불어 프랑스 엔지니어 미콜라 그롤리에 드세르비에르가 라멜리의 독서대보다 아주 간단한 독서대를 만들었다. 물론 이 둘이 독서대를 만든 이유는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능을 뽐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럼, 독서대를 설계한 이유는 뭘까?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으로 책값은 매우 싸졌으며 책은 널리 보급되었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책에 쇠사슬로 족쇄를 채워 보관했던 인쇄 혁명 이전에 비해서 라멜리의 시대에는 일종의 ‘정보 과잉’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현대에 인터넷과 웹 브라우저가 보급되면서 모니터 하나에 여러 개의 창을 열어 놓고 이 창, 저 창을 브라우징하면서 연구하는 모습은 라멜리의 바퀴 독서대가 전자적으로 구현되었다고 본다. 

예수회 선교사 테렌츠(중국명 등옥함)는 중국인 왕징과 협력하여 《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중국어로 저술하여 서양의 기계학, 역학, 엔지니어링을 중국에 전했다. 여기에 라멜리의 바퀴 독서대도 실려 있다. 더불어 핸들을 돌려서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는 취수기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기기도설》에 재현된 라멜리의 취수기는 핸들의 작동에 의해 돌아가는 기어는 제대로 묘사되어 있지만, 두레박의 상하 운동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지 못하다.

이 그림으로 미루어, 르네상스 미술의 원근법, 조감도, 투시도, 부품도 기법이 과학과 기술에도 응용되어 서양의 근대 과학 기술을 낳았지만 이런 기법이 없었던 중국에서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새뮤얼 에저튼은 주장한다. 그렇지만 중국이 라멜리의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기계를 상상해서 그리는 전통이 중국에 원래 없었고 사실적인 그림이 대우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기도설》에 있는 다른 많은 그림들은 유럽의 기계들을 정확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