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도시의 삶은 정말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가
[서평]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도시의 삶은 정말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02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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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늘이 회색빛이라 마스크를 챙겨 쓴다. 버스 정류장 코앞까지 왔는데 타야 할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게 보인다. 달리면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간신히 잡아탄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니 사람들로 가득 차 옴짝달싹하기 어렵다. 그 상태로 30분을 더 버티고 나서야 회사에 도착한다.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쳤지만 힘내서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창밖으로 ‘드르르륵’ 땅 파는 소리가 들린다. 끊임없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느라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육중한 레미콘 트럭이 좁은 골목을 통과하느라 주차되어 있던 차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일에 집중할 수 없어 멍하니 다른 생각이 잠긴다. ‘아,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지긋지긋한 도시, 벗어나고 싶다!’ 

도시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복잡한 교통, 주거난, 대기오염, 끊이지 않는 소음, 과밀화 이면의 고독과 우울, 사생활 침해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등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각종 언론 매체에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도시를 떠나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일 등장한다. 실제로도 그럴까? 유엔은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이 되면 약 70퍼센트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 추정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세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그와 더불어 도시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다. 점점 더 많은 도시가 인구 천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로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베를린 플리드너 병원 의학과장이며, 스트레스ㆍ우울증 분야 전문가인 마즈다 아들리는 도시와 스트레스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그토록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도 사람들은 왜 도시로 몰릴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도시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까? 도시의 유익한 점은 무엇이고 해로운 점은 무엇인가? 어차피 도시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그는 수많은 의문을 품은 채 베를린, 파리, 빈, 도쿄, 뭄바이 등 세계 곳곳의 도시를 깊이 들여다보고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또한 정치ㆍ사회ㆍ건축ㆍ예술 등 각계 전문가를 인터뷰해 그들이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도시에 관한 실제 사례 및 이상적인 도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담았다. 약 300킬로미터의 자전거 도로를 건설해 보고타의 외관을 근본적으로 탈바꿈함으로써 도시를 친근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바꿔놓은 엔리케 페나로사 시장부터, 아이들을 폐쇄되고 분리된 환경이 아니라 복잡하고 까다롭더라도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열린 도시’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 세비야 중심가 광장에 ‘메트로폴 파라솔’을 건축함으로써 죽어 있던 공간을 다양한 소통과 문화의 장으로 변모시킨 건축가 위르겐 마이어, 상류층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오페라를 일반 대중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해 베를린 시민들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 베를린 희극 오페라 총감독 베리 코스키까지 정치ㆍ사회ㆍ건축ㆍ예술 등 각계 전문가를 만났다.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 모든 도시에 대한 경험과 연구, 인터뷰를 모아서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우선 스트레스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모든 스트레스가 위험한 것은 아니며, 스트레스 그 자체보다 스트레스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 인간관계, 소음, 지나치게 많은 선택 가능성, 복잡한 교통, 도처에 숨어 있는 위험(범죄), 대기 오염, 빛 공해, 과밀과 고독 등 도시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각 장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쾰른, 본 등 세계의 큰 도시를 오가며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에 대한 인상, 테헤란에서 이슬람 혁명을 겪으며 느꼈던 공포,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을 때 높이 치솟아 오른 마천루에 압도당했던 기억, 밤마다 비명 소리가 들려 불안에 떨다가 투렛 증후군을 앓고 있던 이웃이 내는 소리임을 깨닫고 안심하게 된 일, 공기 맑은 스리랑카에서 휴가를 보내며 TV에서 보았던 베이징 스모그의 비현실적인 장면, 이민 2세대로서 겪어야 했던 이방인을 향한 사회적 배척, 무심코 오가던 광장을 아름답고 행복한 공간으로 순식간에 뒤바꿔놓은 길거리 연주 등 저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다양한 장면들을 통해 각 장의 중심 주제를 이끌어낸다. 도시를 연구의 대상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도시를 사랑하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과정은 도시에 살고 있는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더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도시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사회적 능력(사회성)을 발휘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지지를 얻어야만 무리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타인과의 공존에서 발생하는 자극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사회적 안테나’를 세우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 능력을 키운다. 도시는 확실히 더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사회적 자극의 규모 또한 훨씬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시민의 뇌는 그 같은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시스템도 좀더 강력하고 신속하게 기능한다. 도시 사람들이 더 많은 자극을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자동적으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볼 수는 없다. 도시민에게는 더 잘 단련된 시스템과 더 섬세한 안테나가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특유의 현상 중 하나는 범죄 자체보다는 언제 범죄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안감이 반드시 실제 위험 가능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도시와 사람들이 이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연구와 노력을 해왔다. 

도시는 특히 파악하기 어려울 때 두려움을 유발하는데, 1930년대 시카고의 주택국장을 지낸 엘리자베스 우드는 이런 사실을 도시계획에 적용해 두려움을 줄이고 실제 범죄율도 낮췄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공동체가 끊임없이 관찰할 수 있도록 중앙 광장 둘레에 주택을 배치함으로써 안전 증대 효과를 낸 것이다. 또한 심리학자 히로키 고타베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순조롭게 질서에 의해 유지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의했다. 예를 들어 중앙광장에 주 2회 정기적으로 장이 서거나 특정한 요일에 정확히 쓰레기가 수거된다면 주민들은 ‘통제 확신’을 갖고 안정감을 얻는다. 사람들은 질서 있는 환경에서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그렇지 못할 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예측 불가능한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소음, 교통, 대기오염 등에 따른 스트레스에 더 강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 아이들이 더 불안정하고 위험한 조건에서 산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도시 생활의 단점은 장점에 의해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시골보다는 도시에 사는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생활습관,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기 쉽다. 사회적 문제, 가족 내의 문제, 학습 장애, 의료 시스템에 대한 지원도 대개 도시에서 더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부모가 도시 생활을 좋아한다면 굳이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시 외곽으로 이사하기 위해 주말마다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도시보다 시골로 이사하는 편이 더 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물론 우울증 등의 각종 기분장애, 건강하지 못한 환경 조건에 노출되어 있기는 하지만, 잠깐만 생각을 해봐도 도시에는 의사, 병원, 심리치료사, 약국, 광범위한 보건 시스템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민의 건강상태가 시골 주민에 비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시골에서는 종류를 막론하고 질병이 치명적인 단계로 발전할 위험이 더 높다. 의학 발달의 혜택이 아직까지는 도시에 먼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살률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시골 지역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연구와 통계가 나오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2018년 10월 중앙자살예방센터 ‘전국 시도별 연령표준화 자살률’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서울이 18.1명으로 가장 낮았고, 충청남도 26.6명, 충청북도 23.2명, 강원도 23명 등 자살률에서 농촌과 도시의 심한 격차를 보였다). 

마즈다 아들리는 도시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편견을 조금 더 현실적ㆍ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아무리 매스컴에서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어도 도시화를 막을 수는 없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도시를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곳을 유익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시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만을 좇는다면 그저 힘겹게 버티는 삶이 되겠지만, 도시가 주는 혜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방법을 찾아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도시는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유익한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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