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분야별 大진단]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에서 읽히는 좌파의 퇴조
[미래한국 분야별 大진단]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에서 읽히는 좌파의 퇴조
  • 박정자 미래한국 편집위원·상명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1.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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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천 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배급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12월 29일 현재 누적 관객 수가 900만 2239명이라고 밝혔다. 누적 관객수가 북미를 제외한 세계 1위, 누적 수익도 본고장 영국의 수익(약 5863만 달러)을 훌쩍 뛰어넘었다.

70~80년대 유행했던 흘러간 록밴드의 음악 영화일 뿐인데 한국 관객이 이처럼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싱얼롱 떼창 관람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는가 하면, 한 사람이 여러 번 영화를 관람하는 N차 관람도 일반화되었다. 지난 11월 개봉되어 연말이면 한 풀 꺾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예상했지만 관객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영화 성수기 12월에, 더구나 ‘마약왕’ 등 1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은 한국 대작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된 시점에 일어난 일이어서 이 현상은 한층 더 놀랍다.
 

그룹 퀀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성공은 관객들이 좌파코드에 식상했다는 반증이다.
그룹 퀀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성공은 관객들이 좌파코드에 식상했다는 반증이다.

뮤직 밴드 퀸의 탄생 과정을 담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그들의 공연을 그대로 재현한 완벽한 싱크로율의 비주얼, 그리고 전설적인 1985년 ‘라이브 에이드’의 무대가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들 말한다. 한국 배급사의 숨은 마케팅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퀸 신드롬은 아무래도 유별나다. 한국만의 독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좌파 논객들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 영화를 누르고 인기 몰이를 하는 현상에 대해 ‘성소수자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 운운하며 좌파 코드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의 반응은 좌파적이기 보다는 차라리 우파적이다. “최근의 한국 영화가 기존의 흥행 공식을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영화평론가들의 설명에 그 단서가 있다. 기존의 흥행 공식이란 무엇일까? ‘변호인’, ‘화려한 휴가’, ‘26년’, ‘남영동 1985’, ‘내부자들’, ‘부러진 화살’, ‘도가니’, ‘택시 운전사’에서 최근의 ‘마약왕’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은 좌파 코드였다.

좌파코드 영화들에 대한 피로감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영화들은 국가와 공권력, 기업, 언론 등 기득권은 악이고, 국민은 공권력의 가혹한 탄압을 받는 희생자라고 끈질기게 주장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울면서 관람한 후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다는 영화 ‘변호인’(2012)만 해도 부림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노무현을 암시)를 등장시켜 공안 사범이 곧 민주화 열사라는 공식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2015년 약 916만 관객을 동원했던 ‘내부자들’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들을 돕는 정치깡패와 유명 신문사 논설주간을 등장시켜 한국의 기득권 사회가 자기들끼리 서로 이익을 공유하는 부패한 집단임을 강렬한 액션과 섹스 장면으로 보여줬다. 빽 없고 족보 없어 늘 승진에서 탈락하는 정의로운 검사가 정치인, 재벌, 언론 등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을 응징하는 장면들에서 관객들은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꼈다.
 

박정자 미래한국 편집위원·상명대 명예교수
박정자 미래한국 편집위원·상명대 명예교수

기득권세력의 성적 타락을 보여주기 위해 선정적인 섹스파티 장면도 도입되었는데, 이것이 관객을 흡인한 숨은 요인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내부자들’은 수많은 명대사들을 유행시키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 ‘내부자들’을 만든 우민호 감독(47)이 지난 12월에 출시한 영화가 ‘마약왕’이다. 1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만든 영화다. 이 영화를 관객들은 외면했다.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처럼 여겨지던 1970년대 근본 없는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이 되고, 결국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우민호 감독은 제작 의도를 밝혔다. 마약을 수출하면 애국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언제 있었는지,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눈뜨고 살아 있는 이 나라에서 참으로 뻔뻔스러운 왜곡이 아닐 수 없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박정희의 유신시대와 그대로 일치되는 영화 무대에서 ‘마약왕’은 ‘내부자들’의 공식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다. 국민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권력의 민낯을 이두삼이라는 마약 거래상의 일대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수출로 상을 받는 이두삼의 모습과 어두운 방직공장에서 쉬지 않고 노동하는 방직공장 여공들의 모습을 오버랩 시키면서 그 시절의 진정한 수출 역군은 한 달 600원 봉급에 하루 16시간씩 노동 했던 방직공장 여공들임을 암시한다.

국가가 엄격하게 개인을 통제하던 시대에 마약을 자유롭게 유통시키던 상류층 세계와 먹고 살기 힘들었던 평범한 서민들의 세상이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려 애쓴다. 한 마디로 한국 산업화 시대는 법보다 권력이 우선이고, 권력과 돈이 함께 법을 움직이던 그런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속 세대가 지금의 보수 세력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미 똑같거나 비슷한 작품들을 수없이 봤던 관객들은 이제 피로감을 느낄 때도 되었다. ‘마약왕’을 본 관객들은 ‘내부자’를 만든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산만하고 개연성도 없고 조잡하다고 했다. ‘마약왕’ 130분 동안 예비군 훈련 가서 영상교육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관객에게 좌파 이념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는 영화에 이제 관객들은 식상한 것이다.

이들 옆에 마침 퀸의 영화가 있었다. 순수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경쾌하거나 혹은 슬픈 퀸의 노래에서 그들은 차라리 위로와 안도감을 느꼈다. 거대 서사(敍事)의 퇴조가 바로 포스트모던의 특징이라면, 한국은 이제 본격적으로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시작되려 한다.

새해의 문화 전망? 당연히 좌파 코드의 퇴조라고 나는 확신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뜬금없는 쾌속 질주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알려주는, 저 멀리 지평선에 나타나기 시작한 조그만 얼룩이다.

박정자 미래한국 편집위원·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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