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분야별 大진단] 여론 시장의 혼탁을 우려한다
[미래한국 분야별 大진단] 여론 시장의 혼탁을 우려한다
  • 박성희 미래한국 편집위원·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
  • 승인 2019.01.14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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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Rousseau)의 편지에 처음 등장했다고 전해지는 ‘여론(l’opinion publique)’이라는 말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와 시민의 탄생을 상징한다. 그보다 두 세기 늦긴 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 언론을 갈망해온 우리에게도 ‘여론’이란 절식하고도 소중한 개념이다. 여론이 조성되는 자유로운 공론장과 지식과 재화를 지닌 시민계급의 부상, 그들이 견인하는 시민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 자유 공화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32년 전 민주화 운동 이후 우리의 공론장은 자유로워졌는가. 거기서 조성되는 여론은 건전하며, 사회적 담론은 공정하며, 갈등의 조정과 상호 이해가 이뤄지는 개념상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눈부신 미디어 기술에도 불구하고 양분된 사회의 의견은 양극화로 치닫고 있으며, 덜 성숙된 시민사회와 미완의 언론 자유는 가짜뉴스의 부작용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정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미디어를 남용할 줄만 알지 법과 제도를 통해 공론장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런 이유로, 2019년, 우리 사회의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할 것이 우려된다.

 

기존 언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언론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존 언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언론 환경이 조성되었다.

건전한 여론 시장에 관심 없는 文정부

문재인 정권의 출범과 함께 가장 시끄러웠던 곳은 방송국이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공영방송 이사진을 무리하게 교체하고, 여당이 된 과거 야당이 방송법 개정에 미적거릴 때부터 방송의 공공성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었다. 카멜레온처럼 환경에 민감한 방송의 변화가 뒤따랐다.

앵커와 기자 등 방송에 나오는 얼굴들이 대거 교체되고, 현 정권과 이런 저런 연으로 엮인 배우와 탤런트와 개그맨들이 방송에 단골로 얼굴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중 일부는 고액 출연료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종편에서 일부 패널이 급하게 교체된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시시콜콜 예를 들기 민망할 정도로 방송가는 기민하게 바뀐 정권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유 우파 논객들이 유튜브로 옮아간 것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튜브에서 높은 조횟수를 기록하자 정부 여당은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유튜브를 손보는 법안을 검토했다가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고 주춤했다. 최근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튜브를 ‘정복’하겠다며 팟캐스트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최대 관전 포인트중 하나이다.

현 정부가 건전한 여론 시장에 관심이 없는 것은 일명 ‘드루킹’의 댓글 조작 공방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루킹 김동원 씨가 “댓글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문재인과 김경수”라고 옥중 항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말 특검은 댓글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고,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네이버는 기업 차원에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공론장을 살리는 일에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으로부터 공론장을 보호할 정책이 나올 기대도 없다. 온라인 여론이 쉽게 건강성을 회복할 것 같지 않은 이유이다.
 

박성희 미래한국 편집위원·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미래한국 편집위원·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

바른 소리 찾아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지금 정부는 여론의 속성을 잘 아는 탁월한 조련사다. 여론 조성을 위한 감성적 접근에 능한 현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인 탁현민의 지휘로 다양한 장면을 연출해왔다. ‘첫 눈 올 때 보내주겠다’는 멋드러진 표현을 할 줄도 안다. 연예인을 적절하게 활용해 각종 행사의 매력도를 끌어올리는 능력은 수준급이다. 그 정도는 정권의 장점으로 봐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통계청장의 경질은 향후 정부 통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고, 각종 ‘보도지침’들은 자유 언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정부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때는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내세워 정부 공식 발표에 의존한 보도를 할 것을 사전에 권고 형식으로 내려 보냈고, 통일부 장관은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할 우리측 기자단에서 탈북민 출신 기자를 배제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의 경직된 언론관은 ‘민주정부가 맞나’는 의구심을 불러올 정도였다. 공론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려면 자유 언론이 필수적인데, 정부는 반대 의견을 적폐로 몰고 다양성과 자유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인 올해 많은 이들은 경제를 가장 걱정한다. 그러나 ‘여론시장’의 혼탁함은 국가를 지탱하는 민주체제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문제이다. 공공성을 상실해가는 방송과 의견 양극화로 치닫는 온라인 여론, 거기에 미디어 기술에 힘입은 각종 조작 가능성과 온갖 홍보전문가(spin doctor)들의 활약, 진짜뉴스와 가짜뉴스 사이에서 정확하고 바른 소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2019년은 미디어를 이해하는 미디어 감수성, 건강한 의심자의 비판적 사고, 그리고 자유로운 시민의식으로 무장하고 혼탁한 여론시장의 ‘파고’를 넘어야 할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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