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서평]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1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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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을 위해서라면 역사적 장소와 흔적의 파괴도 손쉽게 이뤄지는 한국의 도시들은 쉽게 집단 기억상실증에 빠져버리는 사회의 체질을 부추겨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동체의 기억(기록), 공간의 고유한 정체성, 과거를 성찰할 수 있는 도시환경의 구축에 가치를 둔 흐름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2016년 미술, 건축 분야 등 전문가로 구성된 ‘서울시 공공미술자문단’이 출범해 도시 조형물, 공공시설, 공간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지속 가능성에 방점을 둔 도시재생 사업들이 제안, 시행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을 겪으며 사회적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모임을 기반으로 ‘4.16기억저장소’가 만들어졌고 ‘4.16기억교실’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 공동체가 겪은 참사를 기록하는 작업, 건축, 공공미술 등으로 그 기억을 물리적 형태로 남기는 작업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역시 높아졌다. 

이 책의 저자는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미술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공공미술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기념문화가 성숙한 독일의 수도이자 “도시 전체가 기념 공간”이라 할 만한 베를린을 200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한국의 기념조형물이 높이 솟은 기념탑, 위압적인 조형물, 사실적인 위인 동상처럼 여전히 권위적이고 낡은 형식에 머물러 있는 반면, 현대적이며 예술적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호흡하도록 설계된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베를린의 공공미술을 찾아다니며 작품과 설치 장소의 맥락,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느끼고, 경험했다. 긴 기간 동안 여러 번 답사하면서 기념조형물들이 어떻게 유지, 관리되는지, 주변 환경과 방문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살폈다. 또한 기념조형물의 역사적 배경, 설계 의도 및 제작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다양한 문헌, 시청각 자료를 꼼꼼히 조사, 정리했다. 현재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한 기념조형물의 좋은 선례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부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한국 공공미술의 성장을 위해 오래 품어온 공공미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베를린 기념조형물 10곳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도시는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망각에 저항하는 예술적인 방법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기념조형물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형상화했는지를 세심하게 살핀다. 이로써 하나의 예술 작품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을 발견해간다. 10가지 기념조형물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때론 길바닥에 납작하게 설치된 작은 동판(「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이거나, 기념비들의 숲(「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을 이루며, 버스 정류장(「아이히만의 유대인 담당부서」)이거나, 거대한 광고판의 형식(「빛상자들」)을 취하기도 하고, 역사의 흔적을 갖가지 형태로 품고 있는 거대한 기념공원(‘베를린장벽 추모공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기념조형물이 설치된 장소와의 연관성이 뚜렷하며, 주변 풍경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맥락과의 조화(혹은 충돌)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었던 덕분이다. 

이러한 특징은 틀에 박힌 상징과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은 대부분 넉넉한 여백의 공간을 품은 채 설명적이거나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재한다. 이를테면 나치의 야만적인 ‘분서’ 행위를 상기시키려는 미하 울만의 기념조형물 「도서관」은 책이 불태워졌던 장소, 곧 베벨 광장의 지하에 설치되었다.

지상에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사각형 투명 유리창만이 있을 뿐이고, 직방체의 지하 공간에는 도서관이라는 이름과 달리 텅 빈 책장만이 존재한다. 「도서관」은 기념비에 대해 흔히 기대되는 도드라진 형태, 뚜렷한 물질성을 거부한다. “책들의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묘지 내부” 같은 작품은 분서가 행해진 곳에 남은 침묵을 상징하며, 비워내고 고요해짐으로써 유리창 위의 관찰자들이 더 오래 응시하도록, 더 많이 생각하도록 한다.

또 원래 세계대전의 비극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로 개조된 ‘노이헤바헤(신위병소新衛兵所)’는 건물 내부의 텅 빈 공간, 그 가운데 놓인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청동상, 새로 낸 천창을 통한 자연 조명이라는 최소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로 인해 형성된 여백의 공간이야말로 이 건축물의 변천사에 담긴 고통을 숙고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처럼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이 구현한 ‘덜어냄’의 미학은 과밀한 도시에서 관조의 틈새,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은 방문객 또는 시민 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게는 기념 공간이다. 홀로코스트를 기리기 위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서로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블록 2711개가 숲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콘크리트 블록들이 슬픔, 상실감, 무수한 익명의 죽음과 같은 심상을 전하는 한편, 도심의 공원처럼 언제든지 쉽게 접근해서 그 사이를 돌아다니거나 블록 위에 앉아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같은 추모지에서 우리는 역사를 기억, 기념하는 행위가 나의 일상 그리고 현재와 괴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기념조형물을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 정의하며, 미적인 체험과 더불어 역사를 이해하고 사람들이 겪은 아픔과 기쁨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텅 빈 공간이 사람을 압도한다. 그 텅 빈 느낌은 중앙에 놓인 피에타(Piet?) 형태의 조각상 때문에 더 강조되는 듯하다. 크지는 않지만 육중한 느낌의 청동상에서 배어 나오는 강렬한 기운 때문인지 여백의 빈 공간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리고 천장의 둥근 창을 관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청동상의 형태와 벽의 질감을 살려낸다. 사람들은 대부분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침묵 속에서 공간을 응시하게 된다. 은연중에 추모의 묵상과 기도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18쪽) 

사각형 투명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밀폐된 공간의 모든 벽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 책장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규칙적인 칸막이로 나눠진 열네 개 층의 책장들은 모두 비어 있다. 기하학적인 공허가 지배하는 이 공간은 2만여 권의 책들이 불타서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마치 책들의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묘지 내부를 보는 것 같다. [...] 책들이 소실되고 저자들이 추방된 곳에서 침묵과 정적만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유일하게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지점은 지상으로 나 있는 투명한 유리창이다. 투명 유리창은 하늘의 변화와 주변의 건물을 반사한다. 그 위에서 사람들이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서서 지하 도서관을 굽어보고, 그들의 그림자가 도서관의 하얀 책장에 어른거릴 때 이 기념조형물은 완성된다. (43~44쪽) 

그의 응모작은 기념조형물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명료한 상징이나 물질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수직적이고 장엄한 형태로 지상에 돌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피부에 난 상처 또는 치유되지 않은 흉터처럼 땅속에 자리 잡은 채 오욕의 역사에 대해 고요한 경고를 보낸다. 자태를 뽐내지 않고 도시의 피부에 스며들듯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공공미술의 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47~48쪽) 

소란하고 현란한 도시일수록 명상적인 공백과 여백이 사람들에게 감성적인 울림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특히 한국의 대도시에 적용해볼 만하다. [...] 답답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숨통을, 관조의 틈새를 틔워주려면 공공성이 강한 장소들을 최대한 단순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공공장소에선 자꾸 무언가 채우고 치장하고 덧붙이는 것보다 많이 비워내고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을 공공미술의 형태로 추진해도 의미 있을 것이다. (49~50쪽) 

모든 특별열차에 대한 기록을 하나하나 소상히 밝히고 강조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선 그 기록들은 이 장소에서 벌어진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추상적인 공감이나 관념적인 이해 그리고 형식적인 애도를 거부한다. 그것은 기괴한 나치 시절의 일상을 지배하던 제도화된 박해, 추방, 살인을 정확한 숫자와 단어 들로 요약해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특별열차에 강제로 실려 간 유대인들의 모습,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간 그들의 마지막 여행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려보도록 유도한다. 승강장에 깔린 186개의 철판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딛을 때마다 186개 각각의 추모비를 만나는 셈이 된다. 오래된 선로의 기억은 그렇게 되살아난다. (88쪽) 

추모석을 제작한 이유는 나치가 추방하거나 살해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추모의 대상에는 유대인 외에도 정치범,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여호와의증인처럼 나치에 희생된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그는 이런 추모석 제작을 일명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로 부르며 계속해오고 있다.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은 stolpern(걸려 넘어지다)와 Stein(돌)이라는 독일어 단어들이 합쳐진 것으로 ‘걸림돌, 장애물, 난관’ 같은 의미를 지닌다. [...] 길바닥의 추모석들은 나치에 희생된 이들이 망각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걸림돌이나 장애물로서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이 추모석들을 밟고 다닐수록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더욱 활발히 되살아날 수 있다고 작가 군터 뎀니히는 생각한다. (103쪽) 

로니 골츠는 잊힌 역사적 장소에 대한 기억을 버스 정류장이라는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되살려놓았다. 그 때문에 역사적 장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시민들에게도 쉽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버스 정류장 뒷면 중앙에 적힌 글귀가 사람들을 생각으로 이끈다. 긴 울림을 지닌 짧은 문구는 “왜 이 정류장이 경고의 장소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18세기 유대인 신학자의 말을 빌린 “구원의 비밀은 기억 속에 있다.”는 답변이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은 기억의 매개체가 되고,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잠시 동안이나마 과거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있다가 떠나간다. (158~159쪽) 

도시의 환경에서 기념조형물은 어떤 존재인가?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삶 속에서 기념조형물은 도시의 역사를 어떤 형태로 담아내야 하는가? 프랑크 틸의 「빛상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작가가 도시 풍경을 대표하고 대중의 시선을 끄는 광고판의 형식을 차용했던 데에는 이런 고민들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역사를 상기시키는 기념조형물이 현대적인 광고기술의 형태를 취하며 진화하는 방식이다. (175쪽)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앞에서 소개한 아홉 곳의 기념조형물들과 다른 그만의 특징을 품고 있다. 바로 불행한 과거를 반성, 경고, 추모, 상기시키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 ‘축제’의 성격이다. 세계의 예술인들이 모여 자유로운 벽화 축제를 벌이면서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은 화합과 통일의 기념조형물로 승화되었다. 죽음의 경계선은 예술의 벽이 되어 자유로운 지구인들의 순례가 이어지는 하나의 성지로 변모했다. (227쪽) 

지금 우리가 베를린의 공공미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어떻게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은 도시를 ‘기억의 예술관’으로 만들 수 있고,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의 모범적인 사례로 조성될 수 있었을까. 기념조형물 설치를 논의하고 공모에서 제작까지, 진행 과정에서 배울 점이 있다. 먼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여론을 형성하고 반대나 논란이 생길 경우에는 수년간의 토의가 필요하더라도 여러 주체의 의견을 모아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가령 홀로코스트 추모비의 제작 과정을 보면, 시민운동으로 설치 여론이 모아진 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 위해 두 번의 공모를 진행했고, 반대 의견을 수렴해 설계안에 지하의 정보관을 추가했으며, 시공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콘크리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등 준공까지 7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속적인 관리와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일 재통일 후 베를린장벽의 동쪽 면에 그려진 벽화로 생겨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2009년과 2015년에 대규모 보수 작업을 진행했고, 2010년대 초에는 고급 아파트 건설 계획으로 일부 구간이 철거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관리에 드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벽화에 통제용 울타리를 쳐 분단의 상징물을 거리에서 다시 격리시키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으며, 여러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장벽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다.

한편 나치에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출생 연도 및 추방된 연도 등의 정보를 작은 동판에 새겨 희생자의 마지막 거주지 앞 보도에 설치하는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제작된다. 이뿐 아니라, 사료를 분석하거나 희생자의 이웃을 인터뷰해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각 지역의 청년 학생들이 담당한다.

저자는 이처럼 각 기념조형물이 만들어진 과정과 이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참고할 점들을 고루 들려준다. 그렇게 저자가 안내하는 베를린 예술 기행을 따라가다 보면 기념조형물이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진행 중인 그 무엇’이라는 저자의 결론에 자연히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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