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낯선 중세...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리뷰] 낯선 중세...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18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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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특정한 관점에 기대어 서양 중세사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중세가 어떤 시대였는지 다각도로 짚어보는 『낯선 중세―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중세는 그것을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과 해석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고도 다양한 시대”다. 고대는 “서양 문명의 원형을 제시한 창조적 시대”요, 근대는 시민사회를 이루고 물질적으로 개선된 “진보의 시대”라는 긍정적 평가가 일반적인 데 반해, 중세는 “암흑기”에서부터 “황금기”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인 평가”가 오간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중세적 마녀사냥” 혹은 “봉건적 가부장제”와 같이 중세에 대한 이미지는 “척결해야 할 낡은 폐습”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럴까? 

실상을 보면, 중세는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된 만큼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문화를 이룩했다. 비톨트 쿨라(Witold Kula)가 말한 것처럼 모든 시대가 “비공시성(非共時性)의 공존 (coexistence d’asynchronismes)”을 보이듯이 “중세도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인 복합적인 시대”다. 또한 “로마적·게르만적 다양성을 기독교적 단일성으로 묶어 유럽을 탄생시킨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중세의 다양한 면을 소개하며, 낯설게 느껴지는 중세인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그 실체에 흥미롭게 근접해간다. 

이 책의 저자인 고려대 사학과 유희수 교수는 자크 르고프의 『서양 중세 문명』, 에마뉘엘 드 라뒤리의 『몽타이유―중세 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 등 중세사 연구에서 역사학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세계적 학자들의 저서를 국내에 번역하고 꾸준히 소개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책은 중세의 다채로운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가 그간 연구해온 성과를 종합하여 수십 년간 집필에 매진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적?역사인류학적 연구 성과들을 반영해 독자들에게 중세를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게 한다. 전작인 『사제와 광대』와 결을 같이하면서도, 이번 책은 전공자뿐 아니라 서양 중세사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입문서 형태로 써냈다. 

중세 문화는 어떤 측면에서 성직자 문화와 민속 문화, 기독교적 단일성과 게르만적·로마적 다양성, 이념적 보편성과 현실적 특수성, 교권과 속권, 영혼과 물질, 이성과 신앙, 현실과 상상, 이승과 저승이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공존하면서 뒤섞인 문화다. 특히 중세 문명은 그리스-로마 문명과 기독교 이념의 토대 위에 다양한 민족 집단들(켈트·게르만·바이킹·슬라브)의 정체성이 결합된 문명이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중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같은 큰 줄기뿐 아니라 중세인들의 일상과 의식처럼 소소한 경험 세계와 이것을 에워싸고 있는 정신적 바탕을 서로 연관 지으며 그 색다른 매력을 펼쳐 보인다. 특히 중세인들의 하루 일과와 의식주 생활, 기독교 신앙과 미신, 밤마다 즐기는 사교 활동뿐 아니라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전반적인 삶의 단계까지 저자가 이끄는 대로 중세의 낯선 풍경 속을 누비다 보면,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가려진 중세인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먼저 「제1부 쌍두마차의 사회」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여파로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중세 사회에서 권력의 두 축인 왕과 교황이 각축을 벌이던 독특한 지배 체제에 대해 다룬다. 이들이 “때로는 제휴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중세사를 이끌어 나가며 다른 어느 시대보다 복잡하게 정치사가 전개된 이유를 짚어 나간다. 

「제2부 지배 문화와 주변 집단」에서는 성직자?귀족?제3신분으로 구성된 ‘3신분제’와, 이 “세 신분의 울타리 밖”을 서성이던 주변인들에 대해 다룬다. 지배층 중심의 주류 사회 문화와 더불어, 중세 말 계속된 기근과 페스트로 “묵시록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들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던 소수자 집단(이단자, 유대인, 마녀 매춘부 등)의 문화까지 두루 살펴본다. 

「제3부 일상적 삶의 세계」에서는 ‘생활인’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중세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들이 가진 시간 체계와 의식주, 가족제도, 성 풍속, 장례 의식 등을 통해 “‘살과 피’를 가진 구체적 존재”로 실제 중세인들이 어떻게 살고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짐작해본다. 

「제4부 신앙과 상상의 세계」에서는 신비주의 신앙과 성인聖人의 기적, 부적과 민속 신앙, 변신 전설 등 중세 문화의 색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다소 황당해 보일지 모르나 “중세인들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세계로, 독자들의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한다. 

구체적인 사료와 생생한 예화로 가득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비이성과 야만, 폭력의 시대로 느껴졌던 중세사를 새롭고도 친근하게 바라보는 눈을 틔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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