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권위와 권력....혼돈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 정치학 수업
[신간] 권위와 권력....혼돈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 정치학 수업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2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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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다 이나다는 1929년 도쿄 출생. 2013년 사망.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 평론가. 필명 ‘나다 이나다’는 스페인어 ‘nada y nada(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없다)’에서 유래했다. 게이오대 의학부 졸업. 게이오대 의학박사. 게이오대학병원, 이노카시라병원, 국립요양소 구리하라병원에서 근무하며 정신과 의사로서 알코올 중독 치료 등을 담당했다. 작가의 꿈이 있던 그는 꾸준히 소설을 썼고, 1959년부터 1967년에 걸쳐 소설 여섯 개 작품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라 최다 후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는 메이지대 국제학부에서 ‘인간론’을 강의했다. 2003년에는 『老人?宣言(노인당 선언)』이라는 책 출간을 계기로 인터넷 가상 정당 ‘노인당’을 창당하여 활동했다. 또한 일본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평론가로서 사망 닷새 전까지도 블로그를 통해 일본 정부의 우경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저서로는 『海(바다)』『神話(신화)』『トンネル(터널)』『童話(동화)』 등의 소설을 비롯하여 『마음을 들여다보면』『常識哲?: 最後のメッセ?ジ(상식철학: 최후의 메시지)』『おっちょこちょ?(덜렁이 의사)』『いじめを考える(이지메를 생각하다)』 등 70여 종에 이른다.
 

하루에도 수많은 가짜 뉴스가 팩트의 가면을 쓰고 우리 주변 곳곳을 침투한다. 유명인이나 언론을 입맛에 맞게 살짝 세탁하면 가짜 뉴스에 힘을 실어줄 작은 권위 하나쯤은 생긴다. 진실 왜곡, 편견의 재생산, 혐오의 합리화 등을 조장하는 가짜 뉴스는 대체 누구에 의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 구조의 비밀과 진실을 꿰뚫는 사고의 힘을 40여 년 전 출간된 이 책 『권위와 권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1974년 출간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일본 정치 교양의 고전으로, 전후 사상의 혼란 속에서 사상이 아닌 우리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사상은 단지 거짓 권위와 권력을 감추기 위한 말 바꾸기에 지나지 않다면서 말이다. 지금은 당시와 같은 사상의 혼란은 없지만 여전히 거짓 권위와 권력이 가짜 뉴스라는 가면을 쓰고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메시지는 40여 년이라는 간극을 무색하게 한다. 

지금처럼 기관과 대중매체, 전문가 등 갖가지 권위를 내세우며 쏟아지는 말들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그 해답을 자립하는 인간에서 찾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저자와 학생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정치와 일상, 사회 곳곳의 권위와 권력의 속성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하고 답해나간다. 그들의 대화가 바로 거짓 권위와 권력을 꿰뚫어보는 힘, 그 자체인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힘을 키우지 않은 죄는 우리를 이리저리 휘둘리고, 동원되고, 더 이상 ‘개인’이 아닌 ‘무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이 책은 혼란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의심과 질문의 힘이 되어줄 것이다. 

“반이 단결하지 않는다”는 고등학생 A 군의 고민에서 시작한 이 책은 A 군과 저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대화는 단결을 위해 권위와 권력과 같은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학생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대화는 기관의 권위, 대중매체의 권위, 평론가의 권위 등 사회 전반 곳곳에 뿌리 박힌 권위와 권력의 교묘한 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위를 더욱 넓혀 체제 전복을 위해 단결만 강조하다 권력 교체에 그치고 마는 혁명의 한계까지 나아간다. 어느덧 대화는 ‘왜 단결이 필요하냐’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대화는 결론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저자는 A 군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정답이라고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A 군이 의심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하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A 군과 저자의 대화는 권위와 권력에 휩쓸리지 않고 자립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그 자체다. 반드시 정답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질문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왜곡된 권위와 권력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 힘에 우리가 얼마나 휘둘리는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지금처럼 다양한 가치가 상충하는 혼돈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사회의 아버지인 교회가 오랜 기간 어떻게 지역 사회에 권위와 권력을 행사했는지 낱낱이 파헤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교회는 아동 성추행을 오랜 기간 자행했고, 경찰과 검찰, 언론은 이를 모른 체했다. 하지만 실낱같은 기자 정신이 오랜 사회의 틀을 깨고 교회의 부정을 고발함으로써 비극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까지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비틀린 권위와 권력은 언제나 착한 우리를 손쉽게 무시한다.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는 권위와 권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권위와 그 휘하에 놓인 우리의 관계를 흔히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설명하곤 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고, 이는 가정에서 시작하여 사회로 구조화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 힘은 촘촘하게 얽혀 단단하고 견고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견고해질수록 우리 눈에는 그 힘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권위이고 권력인지 잘 모른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의지인지 누군가의 조작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자식으로 자랐다. 하지만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처럼 권력적인 아버지는 착한 자식에게 가혹하다. 

권위주의와 권력주의의 문제는 명령을 따르게 하는 권위의 암시성에 있다. 권위의 암시성은 우리의 판단을 정지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우리 안의 편견을 만든다. 이런데도 우리는 권위 앞에 언제까지고 말 잘 듣는 착한 자식으로 있어야 할까. 거짓 권위와 권력이 우리를 바보로 보는데도? 

이 책은 불안과 의존의 심리 때문에 권위에 쉽게 의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존은 권위를 등에 짊어진 권력의 등장을 환영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발적인 힘이 아닌 조작에 의해 행동하게 된다. 우리조차 모르게 말이다. 그러니 멍하니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언론처럼, 이 책의 A 군처럼 말이다. 

혁명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까. 최종적인 혁명이란 존재할까. 혁명은 기존의 체제에 대항하며 새로운 이상 사회를 구축하려는 소수의 반항이다. 하지만 혁명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실현됐는가. 프랑스 혁명이 그러했고, 가까운 한국의 현대사만 보더라도 혁명은 최종적일 수 없었고 새로운 혁명을 낳을 뿐이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그리고 우리가 꿈꾸던 이상 사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동안 많은 혁명들이 현재 체제의 강한 부정으로 미래를 이상화했고, 혁명 후 현실과의 격차 때문에 새로운 혁명을 끊임없이 낳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명은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혁명 체제 유지를 위해 그동안 자신들이 부정해왔던 권력 체제를 답습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혁명을 함께 이룬 민중은 단결이라는 미명하에 혁명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혁명은 현재에 대한 민중의 반항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 책은 혁명 후 현실에 지친 우리가 간과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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