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취의 시대.... 마취의 역사를 통해 본 자본주의의 두 얼굴
[서평] 마취의 시대.... 마취의 역사를 통해 본 자본주의의 두 얼굴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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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의 발명은 인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혁신일 것이다. 마취제가 발명되기 전까지 통증은 어떤 의사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수술대에 누워 그 시간을 고문처럼 여기는 사람의 비명과 몸부림은 아마도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취제의 발명은 그런 근심거리를 없애주었고, 이후 의사들은 평온한 수술실에서 환자의 정신(혹은 신체) 상태 때문에 방해받는 일 없이 자신의 기술을 펼칠 수 있었다. 이후 마취제는 의사와 화학자들의 노력 속에서 진화를 거듭했고,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 책 《마취의 시대》는 1846년 의사이자 화학자인 찰스 토머스 잭슨(Charles Thomas Jackson)과 치과의사인 윌리엄 그린 모턴(William Green Morton)이 미국 특허청에 마취제의 발명 특허를 신청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철학자이자 법이론가인 지은이 로랑 드 쉬테르는 이로써 ‘마취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마취제 발명 일화로 운을 떼지만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취제 발명과 개발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육체적인 마취만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마취, 더 나아가 흥분하기 좋아하는 ‘군중’을 잠재우는 정치적 의미의 ‘마취’까지 이야기는 확장된다. 

지은이는 먼저 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약물로 등장한 클로랄 하이드레이트(chloral hydrate)와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의 발견과 사용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취의 개념은 일종의 ‘분리’다. 곧 조증이나 울증 증상의 치유라기보다는 조증과 울증을 일으키는 ‘요인’을 무감각해지게 함으로써 환자들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따르는데,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 일부를 도려냄으로써 정상이 아닌 그들을 ‘정상’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두고 결코 증세가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공허한 존재가 됨으로써 사회가 안정을 얻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국소 마취제 코카인으로 옮겨간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 코카인 연구에 참여했던 인물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라는 점이다. 코카인 성분이 국소 마취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의학계는 또다른 축복을 누리는데, 거기에 더해 코카인의 새로운 가능성이 드러난다. 곧 부작용이 없는 훌륭한 각성제로도 기능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코카인은 신경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억제제 형태로 작용해 우울한 요소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어주었다.

다시 말해 코카인은 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신경에 대해서도 마취제로 기능했고, 따라서 정신을 떠받치는 신경계를 무의식 상태에 빠뜨릴 수 있었다. 결국 코카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이후 산업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전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물질로 진화했다. 지은이는 수백만 항우울제 소비자에게 매일 시행되는 마취(감각의 제거)에서 치료제를 자처하는 코카인은 단지 우울증의 조증적 이면을 드러낼 뿐이며 여기서 말하는 치료는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불면증은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한 병 가운데 하나였는데, 클로랄 하이드레이트의 또다른 효능이 알려지면서 불면증 치료의 새 지평이 열린다. 클로랄 하이드레이트는 양극성장애에서 조증을 잠재우는 물질이지만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약이었다. 그러나 이는 밤을 통제하려는 정치권력(혁명이 모의될 수도 있으니)에게 혹은 적절한 수면을 통해 노동자가 다음 날 왕성한 노동력을 발휘하기 원하는 고용주에게도 꼭 필요한 약이었다. 지은이는 앞으로 세계는 불면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넘어섬으로써 노동시간을 더 늘릴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먹는 약, 곧 피임약 개발에 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피임약은 이른바 신체의 기능을 일부러 고장 내 임신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리인데, 지은이는 이 원리가 항우울제의 작용 방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화학전달물질을 통해 뇌의 감각을 조정해 정신질환자들이 마치 ‘잘 지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은이는 피임약의 작용 방식에는 기능장애를 통해 인간을 기능적으로 만드는 이상한 모순이 잠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곧 여성이 아이를 자주 낳아 노동시장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은이는 군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치가 그 안에 잠재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흥분’을 어떻게 잠재우려 했는지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사회심리학자들은 군중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군중을 조증과 울증의 극단을 오가는 불안정한 집단으로 바라보았다. 지은이는 스키피오 시겔레(Scipio Sighele),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가브리엘 타르드(Gabriel Tarde) 같은 학자들의 이론과 생각을 통해 부정적 의미의 ‘군중’(crowd)과 긍정적 의미의 ‘공중’(public)에 관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지은이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광기와 인간 고유의 존재를 ‘마취’라는 개념을 통해 차단하려는 이 시대를 마취의 시대, 곧 ‘나르코자본주의’ 시대라 일컫는다(이 책의 원제는 “Narcocapitalism”이다. 여기서 접두사 ‘narco-’는 마비, 마취, 최면, 마약 등을 뜻한다. 다시 말해 ‘나르코자본주의[Narcocapitalism]’는 마취?마비된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울러 물질 덩어리를 뜻하는 단어와 대중을 가리키는 단어가 모두 ‘mass’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면서, 개인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요소가 제거된 채 인간이 기능적인 물질 덩어리로 취급받고 있는 현 상황을 독특한 어조로 비판한다. 그러면서 집단이나 개인이 인간 고유의 본질, 곧 긍정적인 광기와 흥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회로 나아가가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현대 정신약리학의 짧은 역사이자,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어떻게 마취되어가는지를 다룬 현대 정치이론이며, 존재론적 차원의 우울증을 철학적으로 탐색한 인문서다. 지은이 로랑 드 쉬테르가 색다른 지적 모험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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