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신간]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2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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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태형은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주류 심리학에 대한 회의로 학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기존 심리학의 긍정적인 점을 계승하는 한편 오류와 한계를 과감히 비판하고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 매진하면서 사람과 사회를 분석하는 작업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무의식의 두 얼굴』, 『자살공화국』(2017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도서), 『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2016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도서), 『싸우는 심리학』,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트라우마 한국 사회』, 『거장에게 묻는 심리학』, 『불안 증폭 사회』(2011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도서),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 『새로 쓴 심리학』 등이 있다.
 

“극단주의자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이별을 통보한 연인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사건,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테러 사건 등. 그런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쩌다 그렇게 극단적이 됐을까? 이런 극단적인 성향은 바뀔 수 있긴 한 걸까? 

뉴스 속 사람들이 아닌 SNS나 메신저 안 우리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특정 성향을 드러낸 기사나 글에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과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댓글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고, 일부 장년층은 진위 여부가 확인 안 된 가짜 뉴스도 카톡으로 공유된 글이면 무조건 믿는다. 게다가 네트워크 안에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여 의견을 나누면서 그 치우침을 더 굳건히 다지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타(차단)하고 있다. 

이렇게 공통 성향을 가진 집단끼리 나뉘고, 세대 간, 이성 간, 계층 간 배척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제 극단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가 서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한 언론사가 여론 조사 업체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인은 자기 계층의 이익만 좇느냐’는 5점 척도의 질문에 4.17이라는 높은 수치로 ‘그렇다’는 답변이 나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최근까지 각종 혐오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관련 어휘가 등장하지 않았을 뿐 가장 노골적 차별이 증가하고 있는 영역은 계층 갈등, 빈부 차별”이라며 “이른바 갑질로 표현되는 빈부 차별이 쉽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일상에는 깊게 뿌리내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갑자기 계층 갈등이라니, 그것과 극단주의가 무슨 상관인가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극단’ 하면 중용의 반대 의미인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느낌을 떠올리고, ‘극단주의자’도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극으로 치닫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내린 정의는 다르다. 심리학자인 김태형 소장은 극단주의를 심리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네 가지 특징을 이야기한 후 정의 내리는데, 이 특징들은 극단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배타성’ 
이성적 사고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 ‘광신’ 
자신이 믿는 것을 타인도 믿으라고 요구하는 ‘강요’ 
자신이 믿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증오하는 ‘혐오’ 

저자는 위 네 가지 특징을 기초로 극단주의를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정의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왜 극단주의가 서로를 차별하고 학대하는 사회를 만든다는 건지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설령 극단주의자가 나한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해도 그냥 거부하면 그만 아닌가? 

극단주의 연구자들은 극단주의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안전에 대한 위협’을 꼽는데, 신체적?경제적 위협 같은 실재적인 위협은 물론이고 가치 체계나 세계관이 무너질 수 있는 정신적 위협도 포함한다. 안전에 대한 위협은 사회 안전망과 직결될 뿐 아니라 자존감 손상이나 삶의 의미 상실과도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다. 수능 중심의 우리나라 교육은 세계관이나 정체성 확립과 거리가 먼데, 세계관과 정체성 확립에 실패하면 극단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신적 위협이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권위주의(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적 성격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력감으로, 무력감이 심하면 그만큼 힘을 갈망하게 되고 이것이 심리 전반을 규정하게 되어 권위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진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가장 큰 특징은 흑백 논리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이는 권위주의적 성격이 극단주의와 얼마나 가까운지 잘 보여 준다. 어떤 사회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강자에게는 굴종하는 반면, 약자에게는 잔인한 공격을 일삼는 사회 풍조가 확산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계층 간 갈등이나 서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사회를 언급한 앞부분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안전에 대한 위협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위협하는 대상에게 분노하고 혐오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시하거나 괴롭힌 그 사람만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거나 유사한 경험이 반복되면 몇몇 사람에 대한 혐오가 다른 사람들에게로 일반화되어 모든 인간을 혐오하게 되고, 인간을 학대하거나 공격하는 짓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게 극단주의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만약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은 극단주의를 부추기거나 최소 묵인하지 않을까? 설마 인간으로서 그러겠냐고 손사래 칠지도 모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극단주의로 민중 내 갈등을 조장해 온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사회 지배층이다. 그들은 나뭇가지 뭉치는 부러뜨리기 힘들지만,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씩 부러뜨리기는 쉽다고 생각한다(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를 할 때 반드시 분할 통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이 각종 사회 집단을 이간질시키는 간단한 방법은 ‘차별’이다. 차별당하면 억울하고, 억울하면 분노를 표출하게 되며, 이 분노는 주로 사회 지배층이 아닌 다른 계층들을 향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다른 계층들을 향한 분노와 혐오로 만들어진 극단주의가 한국 사회에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 주는데,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엄마 혐오’다. 엄마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악역을 맡고 있다. 아이를 사회가 만든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과 (본인 기준이지만) 애 잘되라고 잔소리하는 건데, 이 잔소리 때문에 아이들의 혐오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 알면 정말 놀랄 걸요”라는 한 중학교 교사의 말도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엄마는 한 아이에게 최초의 인간관계 대상이자 기본적인 인간관계 대상이기에 엄마와의 인간관계가 아이의 인간관과 인간관계를 좌우한다는 거다. 만약 아이가 엄마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 아이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다. 즉 엄마 혐오가 인간 혐오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저자는 서구 심리학(특히 미국 심리학의 집단 극단화 이론)이 어떻게 지배층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야욕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고 옹호해 왔는지 - 안타깝게도 한국 심리학계는 이런 미국 심리학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무관한 일로 치부할 수 없다 - 와 민중 항쟁까지도 극단주의로 몰아세우며 엉뚱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행태를 비판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득권의 이면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그리고 분석과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학대 위계 사회가 되어 버린 한국 사회 내 약자 혐오와 극단주의 확산의 여러 사례를 들면서 우리 사회에 맞는 극단주의 예방법과 근절 방법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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