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말의 탄생....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서평] 우리말의 탄생....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1.24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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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우리말 사전’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말 사전 편찬사, 그 50년의 역사를 집중 조명하다 

저자 최경봉은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편찬실에서 근무하며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편찬에 참여했었다. 그간 어휘의미론, 국어학사, 국어정책과 관련한 연구를 해오면서, 《어휘의미론: 의미의 존재 양식과 실현 양상에 대한 탐구》, 《의미 따라 갈래지은 우리말 관용어 사전》, 《국어 명사의 의미 연구》, 《국어 사전학 개론》(공저), 《국어 선생님을 위한 문법교육론》(공저), 《우리말 문법 이야기》, 《근대 국어학의 논리와 계보》, 《한글과 과학문명》(공저),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공저), 《우리말의 수수께끼》(공저), 《영어 공용화 국가의 말과 삶》(공저), 《한글민주주의》 등을 저술하였다.

이 세상에는 수천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언어공동체들 중 자신들의 언어로 만든 ‘사전’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사전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다른 언어들을 대응시켜서 만든 대역사전(어떤 언어의 단어에 그 단어와 뜻이 같은 다른 언어의 단어를 대응하여 만든 사전, 예컨대 한영사전, 영한사전 등)에만 기록되어 있는 언어가 대부분이지, 한 언어만으로 기록한 사전으로 좁히면 그 수는 더욱 줄어든다. 한 언어의 규범이자 기준이 되는 사전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이자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한 민족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만을 사용하여 기록한 사전을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모국어인 ‘한글’로 만들어진 우리말 사전을 가지고 있는 언어공동체다. 각 가정마다 두꺼운 국어사전을 한 권씩 책장에 꽂아두며 찾아보던 시기가 있었고, 근래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사전 서비스를 이용한다. 우리는 보통 띄어쓰기 등을 비롯한 맞춤법이나, 사용하려는 단어의 뜻이나 용례를 찾아볼 때 사전을 찾아보곤 한다. 우리말 사전이 있기에 국민들이 통일된 규칙을 기반으로 효율적이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기준 역할을 하는 사전이 어떤 의도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말의 탄생》은 이러한 인식에 경종을 울리며, 최초의 우리말 사전(《큰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50년 동안의 길고 험난했던 전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최경봉 교수는 직접 발로 뛰어 얻은 수많은 자료와 사진을 토대로 우리말 사전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는지, 일제의 탄압이 한창이던 시기에 그들은 왜 목숨까지 걸어가며 사전을 편찬하려 했는지 살펴보며, 우리 역사에서 우리말 사전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표준어란 아주 오래된 규범 같이 느껴지지만, 실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신생 언어 규범’이다. 이런 표준어가 어떻게 동서를 막론하고 각국의 근대를 만들어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국가 체제가 질서 있는 의사소통 과정 속에서만 유지, 발전될 수 있다고 할 때 근대 민족국가는 모국어의 규범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모국어 문법서를 발간하고 모국어 사전을 편찬하는 것과 같은 일은 규범화의 시작이면서 결과였다. 

비록 서구와 시간차는 있었지만, 우리 역시 국가적으로나 전 사회적으로 말의 규범화 작업은 중요했고, 이를 집대성한 결과물인 사전 편찬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 역사에서 근대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이 시기가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시기이자 동시에 종속이라는 불행의 씨앗을 키우는 시기라는 점이다. 한일병합 이후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목표가 사라지자, 우리말 연구와 정리 사업의 방향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족혼을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식이 우리말 사전 편찬사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대, 조선어 규범화와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일이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받으며 시작될 수 있던 데는 ‘언어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조선어사전은 우리 민족이 식민 지배하에서 마지막까지 지켜낸 우리말을 집대성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 작업이 해방 후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현재의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표현해내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말 사전의 탄생이 진정한 우리말과 우리글의 탄생이었음을, 그리고 우리말 사전이 탄생했던 시기가 근대 민족국가가 탄생하고 몰락하고 재건되던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사전 편찬사는 곧 근대적 소통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모국어 정리 사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에 당대의 지식인들 및 그들과 이해를 같이 하는 부르주아들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 국가의 지원으로 모국어 정리 사업은 이루어지고, 모국어 정리 사업의 꽃이었던 사전은 이처럼 다수의 참여 속에서 그 권위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정과 달리 식민지배라는 특수 상황에서 사전 편찬을 진행했던 우리의 경우는 어떻게 사전의 권위를 세울 수 있었을까. 모국어 정리의 결과로 사전을 펴내는 것이 아니라 사전을 통해 모국어를 정리한 것이 우리말 사전 편찬사의 특색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취지에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조선어사전’을 만들기 위한 조선어편찬회가 조직되고, 편찬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민족정신을 내세운 조선어학회가 좌·우파의 고른 지지를 받는 독립운동 단체로 인식되어 민간단체에 불과한 조선어학회의 사전이 민족의 사전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또한 사전편찬회의 결성으로 이 사전의 의미를 집중 조명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같은 조선어 신문들 역시 그 필요(통일된 어휘 지침 필요, 문맹 타파로 인한 독자 수 상승 및 판매 증가로 인한 사세 확장)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우리말 사전의 권위를 단단하게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사전 편찬을 위해 모국어 정리를 단행하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의 중류 계층이 사용하는 말’이라는 규정으로 표준어 기준을 정함으로써, 어휘의 미세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 지역 혹은 한 계층의 말로 대체해버리는 것은 표준화 과정의 폭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사정을 반드시 언어의 단순화 과정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모국어 정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전을 통해 정리를 시도했던 우리의 특수한 사전 편찬 방향 때문에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사정은 어휘 간 미세한 의미 차이를 규명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학술단체가 이 일을 진행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조선어학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말 사전 편찬은 지식인들만의 사전이 아닌 조선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관심을 갖고 호응을 보내는 민족 사업이 되면서 그 권위까지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문 정리의 방향을 잡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이봉운과 지석영, 이능화와 국문연구소 사람들. 근대 국어학의 대부 주시경, 직접 사전을 편찬했던 조선어 교사 심의린, 사전 편찬사업에 뛰어든 식민지 지식인들의 모임인 광문회와 계명구락부 사람들……. 비록 완성된 형태의 사전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우리말 사전의 기초를 위해 평생을 다 바친 사람들이다. 이들의 노력을 밑받침 삼아 사전 편찬을 하려던 김두봉, 평생 모은 사전 원고를 조선어학회에 기증한 이상춘, 대사전이 아니긴 하지만 최초의 조선어사전이라 할 수 있는 사전을 펴낸 문세영, 108명의 발기인을 모아 편찬사업의 시동을 건 이극로, 수양동우회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초토화된 조선어학회의 추락을 지켜보기 힘들어 자살한 신명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윤재 등 조선어학회 사람들, 조선어학회 정신을 이어받아 끝까지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한 정태진, 김병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사전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그들에게 사전 편찬은 힘들게 캐낸 원석을 가공하여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으리라. 그 보석을 엮어내는 일의 흥미로움이 그들을 사전 편찬의 길로 들어서게 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전 편찬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만든 우리말 사전이 땀과 피가 섞인 노력의 결정체이자 그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묻어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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