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문재인 정부....신재민 폭로가 의미하는 것
흔들리는 문재인 정부....신재민 폭로가 의미하는 것
  •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성균관대 석좌교수
  • 승인 2019.01.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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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김동연 전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에 의한 불필요한 적자국채 발행 시도, 기재부의 국채 조기상환에 대한 청와대의 취소 압력, 청와대의 민간회사 KT&G 사장 교체 개입, 청와대의 서울신문 사장 인사 개입 등 네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국채 발행 시도가 무산되고 조기상환이 예정대로 진행되어 실질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그런 조짐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그리고 KT&G와 서울신문에 대한 인사 개입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건전한 상식이다. 관련 당사자나 기관이 해명을 하나 현 정부가 내세운 ‘정의’나 ‘법대로 하겠다’는 기치에서 보면 초라한 변명일 뿐이다.

신 전 사무관을 공익제보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이고 본질은 청와대의 인사 개입이 실정법을 위반하는지 여부이고 기재부와 청와대의 판단의 국기문란 가능성 여부이다.전임 경제부총리 중의 한 분이 말했듯이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게 상식이다. 그게 당연한 사람의 도리다.” 못 본 척하고 지나쳤더라면 전도가 양양했을 한 젊은 공직자의 양심 선언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이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청와대 압력설을 폭로하는 신재민 전 사무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청와대 압력설을 폭로하는 신재민 전 사무관

청와대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7년 적자국채 발행을 압박했다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는 본질적으로 초과세수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과 관련되어 있다. 김 부총리의 소위 ‘정무적 판단’에 따른 국채 추가발행 시도는 국가 재정운영에서의 건전재정원칙과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것이고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된다.

국익에 반하는 정무적 적자국채 발행은 ‘국기문란’

언론에 보도된 기재부의 설명에 따르면 2017년 적자국채 발행 한도 28조 7000억 원 중 남은 한도인 8조 7000억 원의 처리를 놓고 “4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 세계잉여금으로 남기자”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한다. 세금 징수가 전망치에 비해 23조 원이 더 걷혀 201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추경 편성 등에 활용하고도 14조 원 가량 초과세수가 남았던 모양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초과세수를 활용을 두고 두 가지 입장이 대립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 전 사무관이 소속됐던 국고국은 국고채 상환을 통해 적자국채를 늘리지 않도록 하자는 입장을 견지했고 거시경제운영을 담당하는 경제정책국에서는 초과세수를 세계잉여금으로 남겨 경기활성화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 같다.

김동연 부총리가 당시 조규홍 재정관리관(차관보) 등에게 적자국채 확대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한 것은 경제정책국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1월 당시 국가채무비율은 38.3%로 예산안 제출 당시 채무비율 목표치(39.6%)보다도 낮았다. 김 전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이 목표치에 비해 상당히 낮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자국채 확대를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당시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면서 재정이 경기에 긴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경기상황을 고려해 국채를 추가 발행함으로써 재정 여력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청와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김 전 부총리는 “제기된 이슈들도 국채뿐 아니라 중장기 국가채무, 거시경제 운영, 다음 해와 그다음 해 예산편성과 세수 전망, 재정정책 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다른 부처, 청와대, 나아가서 당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될 수도,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정책형성 과정”이라며 자신의 정무적 판단 배경을 최근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경제정책 전반을 책임지는 부총리로서 통상적 상황에서는 종합적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나 문제는 세금이 초과 징수돼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재원을 조달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실정법이 정무적 판단을 앞선다는 데 있다. 국채 추가 발행 시도라는 단순행위가 어떻게 국기문란 행위가 되는가? 국가채무 관리 원칙과 재정 흑자 잉여금의 처리 방법이 국가재정법에 명백히 규정돼 있다. 제86조는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건전재정 유지를 강조하고 국가채권과 국가채무 관리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잉여자금 처리 관련 우선순위를 제90조에 ①‘해당 연도에 이미 발행한 국채의 금액 범위에서는 해당 연도에 예상되는 초과 조세수입을 이용하여 국채를 우선 상환하고’ ②‘교부금의 정산에 사용하고’ ③‘공적자금상환기금에 우선적으로 출연’하도록 하고, 그러고도 남는 자금은 기존의 ④‘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회가 허용한 국채발행 한도를 넘지 않아 국채 추가 발행이 가능하더라도 세수가 넘쳐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정무적 판단’에 의해 추가로 국채 발행을 시도했다면 이는 첫째로 건전재정원칙과 국가재정법을 위반했기에 범법(犯法) 행위이고, 둘째로 재정 운용이 국가 운영의 기본이기에 그 기본에서의 일탈은 국기문란(國基紊亂)에 해당한다. 재정 건전성은 국가의 세출은 차입금 이외의 세입을 재원으로 해야 한다는 기채금지의 원칙과 회계연도에 있어서 잉여금이 있을 때에는 국채의 원리금과 차입금을 우선 상환한다는 감채의 원칙에 의해 유지된다. 김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과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이 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부총리직이 아무리 정무직이라 해도 국가재정 통계가 정무적 판단에 의해 휘둘려지거나 정도를 벗어난 재정운용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국가 재정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나라 살림살이이다. 한 치의 낭비가 있어서는 안 되고 꼭 필요한 곳에만 국민의 혈세가 사용되어야 한다. 세수가 들어오기만 하면 다 써버리려는 충동이 일고 여유자금이 관료들의 쌈짓돈이 되는 것이 관례 아닌 관례였다. 다행히 시도 단계에서 불발되었기 망정이지 만약 4조 원의 국채가 발행되었더라면 이자만 연간 1000억 원에 달하고 이 또한 국민 부담으로 귀착되었을 것이다.

고의적 부채 늘리기의 의도

세금이 초과 징수되어 예산이 남으면 부채를 조기 상환한다든지 해서 세계잉여금을 줄이는 것이 보통인데 빚까지 내가며 세계잉여금을 더 쌓자는 것은 재정운용 원칙에 어긋남은 물론 법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국가회계는 ‘단년도주의’여서 남은 예산을 차후 연도로 넘겨쓰는 방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쓰고 남은 예산을 세계잉여금에 넣어 다음해 추경 편성 시 재원으로 활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이자를 물어가며 적자국채를 찍어 ‘세계잉여금’을 미리 부풀려놓고, 이 돈을 들이밀며 추경을 요청하는 것은 정도(正道)를 한참 벗어난 불법적 행태다.

김 전 사무관의 폭로가 사실이라는 걸 전제로 할 때, 김 전 부총리가 39.4%라는 수치를 언급하고 차관보가 카카오톡 메신저에서 ‘핵심은 2017년 국가채무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라고 했던 걸 보면 청와대는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보인다.실무진이 “7조 8000억 원까지 발행할 수는 있지만 큰 무리가 따른다”고 하자 김 부총리는 GDP 대비 국채비율을 39.4%로만 맞추라고 지시했고 39.4%에 맞추려고 4조 6000억 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으로 결론이 났던 것 같다. 기재부가 갑자기 ‘정무적 고려’를 한 배경은 2017년 3분기 깜짝 성장률이 변수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관련 질문에 얼굴이 굳어지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관련 질문에 얼굴이 굳어지는 문재인 대통령

2017년 추경안에 따르면 그해 말 국가 부채비율은 39.1%로 2016년에 비해 0.9%포인트 높아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10월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성장률(1.4%)이 예상치(0.8%)보다 훨씬 높게 나오면서 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2016년과 같은 38.2%로 의도치 않게 떨어지게 됐다. 결국 2017년 국가부채 비율이 너무 낮으면 나중에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부채 비율이 x%포인트나 올랐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의식한 청와대와 기재부 책임자들이 뒤늦게 ‘부채 늘리기’에 나섰을 것으로 유추된다.

김 전 부총리가 정무적 판단으로 국채발행을 시도하고 국채상환을 취소한 이유가 첫째 정권 말기로 갈수록 재정 역할이 커지기 때문에 자금을 미리 최대한 비축해둬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둘째 적자국채 발행을 하지 않아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너무 낮추면 향후 문재인 정부 재정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것 때문인지 아님 두 가지 이유 모두 때문인지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확정된 2017년 GDP 규모가 1730조 원이기에 5조 원 규모 국채의 추가발행은 국가채무비율에 0.3%의 영향 밖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서 볼 때 여유자금의 비축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정치적 시장 교란은 ‘용서 받지 못할 죄’

2017년 11월 15일 시행 예정인 국고채 1조 원 조기 매입(바이백)을 하루 전에 전격 취소했다. 신 사무관은 청와대가 바이백 취소를 압박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임기 연도인 2017년 국가 부채 비율을 높이려고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바이백은 국가부채와 상관이 없다.

1999년 바이백 제도를 도입하는 데 참여했던 한국은행 한 본부장은 “바이백은 정부가 일시적으로 남는 돈으로 국채를 만기 전에 되사는 조치인데 보통은 바이백한 만큼 다시 국채를 발행한다”며 “바이백을 취소하건 취소하지 않건 국가부채비율은 전혀 달라지지 않으며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 바이백이라고 하지 않고 조기상환이라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바이백으로 국가채무비율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시장에 충격이 강해지고 시장 참가자들이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공표된 국채매입 계획이 취소되자 당일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급등했다. 국내 채권시장 지표 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바이백을 취소한 날 일부 증권사 중개팀이 손절매해 금리가 0.031%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며 연 2.1%대에서 2.2%대로 상승했다. 하지만 하루 만인 15일 다시 2.1%대로 복귀했다. 11월 14일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2.417%까지 올랐다가 30일엔 2.262%로 하락했다. 이러한 시장 교란에 의한 민간부문의 이익과 손실 교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충격의 크기와 관계없이 조 단위 국고채 매입을 추진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정부의 입장이 갑작스레 오락가락해 정부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은 결코 작은 잘못이 아니다.

기재부와 청와대 당국자들의 해명이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본질과 내용이 명료해지기보다는 더 혼란에 빠진다. 정책 담당자들 간에 재정 건전성에 대해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재정법 내용의 엄중함을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내부 논의 자체가 일관성 있게 이뤄지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한 역사소설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란 말이 나온다. 이탈리아 말로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뜻이다. 용서 받지 못할 죄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가들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예산의 낭비와 방만 운영은 국가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데 이 죄 만큼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페카토 모르탈레인 것이다.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성균관대 석좌교수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성균관대 석좌교수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직자는 어떠한가? 선심용 공약을 빌미로 흥청망청 예산을 낭비하는 대통령, 낭비인 줄도 모르고 각종 명분으로 예산 늘리기에 열중인 장관들, 우선순위나 불요불급을 따지지 않는 실무자들, 사계절 내내 요란한 행사와 호화판 건물 짓기에 여념이 없는 지자체장들, 지역구와 이익집단들의 요구에 따라 낭비적 사업 챙기기에 혈안인 여의도 선량들 모두 예산 낭비가 용서 받지 못할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남미국가들에서 예산 낭비로 나라가 거덜난 것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두 기지회견에서 김 전 부총리를 입장을 옹호하면서 신 전 사무관에 대해 사무관이라 ‘자신이 경험하는 좁은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재단하면 안 된다고 질책성 멘트를 했다. 참으로 잘못된 질책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초과 징수된 세수를 바탕으로 한 추가 국채발행 시도가 불발되지 않고 실제 진행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2018년 감사원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일상 정기 감사에서 불법적 국채발행 사실이 지적되고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나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하려면 스스로 감사원에 특별 감사를 요청해야 하는 것이 맞다.

신재민 폭로’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가 공기업·공공기관 운영에 개입한다는 것이 다시 드러났으나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전임 정부 시절 임명된 기관장이 정권교체 이후 임기 전에 밀려나거나, 전문성 등을 전혀 갖추지 않은 여권 인사가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일이 너무 비일비재해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공공재원을 통해 운영하는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공익성’에 맞게 운영하는지를 살필 권한을 갖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청와대가 정부 관할하의 기업은행을 통해 민간기업인 KT&G의 사장을 바꾸려 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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