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의미는?
[전문가진단]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의미는?
  • 제성호 미래한국 편집위원·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1.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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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판결 의미와 파급 영향

2018년 10월 30일 우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11대 2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05년 한국 법원에 첫 소송이 제기된 지 13년 8개월만의 일이며, 2013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 패소한 피고 신일철주금 주식회사가 상고한 지 5년 넘게 지연되다가 마침내 내려진 판결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특히 위자료 청구권)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위한 협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서, 이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청구권 협정문이나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2017년 8월 용산역 광장에 세워졌던 강제징용 노동자 동상
2017년 8월 용산역 광장에 세워졌던 강제징용 노동자 동상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모(母) 조약인 한일 기본관계조약과 함께 식민지 시대 일본 강점에 따라 발생한 청구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타결한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는 한일 양국이 ‘외교적 보호권(a right of diplomatic protection)’ 행사의 차원에서 맺은 것인 동시에, 향후 상호 외교적 보호권 주장을 포기하는 국제협정이었다.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우 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양국 정부 간, 1국 정부와 타방 국민 간, 그리고 양국 국민 상호 간의 청구권 등 한일 간에 존재하는 모든 청구권은 이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completely and finally)’ 해결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에 따른 한국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개인 청구권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는 청구권 자금을 수령한 한국 정부에 청구해서 피해 구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대 한국 정부도 기본적으로 이런 입장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예컨대, 2005년 노무현 정부(민관합동위원회)는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 중 무상 3억 달러에는 강제징용 피해 보상이 감안(포함)된 것으로 보고 피해자 7만여 명에게 총 6200억 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런 입장에 대해 반대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일괄보상협정(lump-sum settlement)’방식으로 한일 간 청구권 문제를 처리할지라도 과연 ‘개인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였다. 이는 개인의 권익 옹호 문제로도 파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통적인 외교협상에 의한 해결에 대해 개인이 ‘인권’에 근거해 반기(反旗)를 든 것이었다. 또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인권법이 발전하고 인권 의식이 신장된 현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은 이 같은 기류를 수용한-그럼으로써 한국 정부의 기존 해석론을 뒤집은-사법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법부가 숙명적 관계에 있는 한일 양국 간에 어렵사리 타협·양해되어 지난 반세기 이상 ‘법적 현상(status quo)’으로 굳어져 온 ‘청구권 질서’를 뒤흔듦으로써 일본 측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 외교의 대외적 신뢰를 훼손(일관성 상실)함과 아울러 새로운 국제법적 이슈들을 야기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의 파장: 일본의 대항조치 가능성과 국제분쟁의 단초 제공

일본 정계 인사들은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판단’ 혹은 ‘국제법에 기초해 질서를 갖추게 된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 등으로 표현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10월 30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담화를 통해 이번 판결로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일본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자신의 법적 입장과 해석을 내놓을 수는 있다. 또 이를 국제법이 금지하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사법부의 행위가 국제법 위반이 되는 경우는 재판의 거부(Denial of Justice), 곧 ① 소송의 불수리, ② 재판절차의 명백한 불공정, ③ 외국인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내용의 부당한 판결을 하는 경우 등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대법원 판결 그 자체를 두고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 것은 부적절했다. 위의 발언들은 정치적·외교적 불만의 표시이자 대법원 판시 내용이 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는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제스처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한국 내에 있는 일본 기업의 재산이 압류되거나 강제집행을 당하는 단계에 이르면, 일본 측의 입장에선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이때에는 일본 정부가 ‘국제법 위반’을 명분으로, 또 국제법(특히 국가책임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에 대해 가능한 대항조치(counter-measures)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는 △주한 일본대사의 일시 귀국 △일본 방문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정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 인상 △일본에 있는 한국 기업의 자산 압류 등 일본 정부의 강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대항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국제 이슈화하기 위한 여론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대항조치의 적법성 판단은 최종적으로 공정한 제3자에 의해 이뤄지게 될 것이다).
 

한국의 반일감정에 비례하여 일본에서도 한국과의 단교를 주장하는 단체가 나올 만큼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의 반일감정에 비례하여 일본에서도 한국과의 단교를 주장하는 단체가 나올 만큼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한편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은 ‘국제분쟁이 개시’되는 단초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고노 외상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 정부는 이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올해 1월 10일 신년사를 발표한 자리에서 대법원의 입장과 뜻을 같이 함을 분명히 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또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즉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일 양국 간에 ‘조약(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의 해석’을 둘러싸고 중대하고도 명백한 의견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국제법상의 법률관계(권리·의무관계) 또는 국제정치상의 이해관계에 관한 당사국 간의 심각한 의견 차이 내지 충돌을 ‘국제분쟁’이라고 한다. 우리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드러난 청구권협정의 해석을 둘러싼 다툼은 법률관계에 관한 중대한 의견 차이를 의미하는 바, 이는 국제분쟁 개시의 단서로 작용한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2019년 1월 23일 청구권협정에 기초한 ‘협의(외교적 협상)’를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이는 비난에서 행동에 나섰음을 가리킨다. 그 근거는 청구권협정 제3조 1항에 있다. 동 조항은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은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후 한일 양국 간에 청구권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발생했다고 간주하고 그 해결의 절차에 돌입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유엔 회원국으로 유엔 헌장 제2조 3항과 제33조 1항에 따라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에 일본의 협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청구권협정 제3조 2항은 분쟁이 협의에 의해 해결되지 않을 경우 3명의 중재위원(한일 양국이 각각 1명을 선정하고 이 2명이 합의하는 제3의 중재위원 포함)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협정은 중재위원회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럼에도 양국이 ‘합의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제소와 같은 사법적 절차의 추가적 진행도 가능하다. 물론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국제재판은 불가능하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국제분쟁은 국제법의 잣대에 의해 처리된다는 점이다. 국제중재위원회나 국제재판소에서는 국내 법원의 판결은 법이 아니라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하면 국제분쟁 처리기관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구속되거나 하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심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①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의 올바른 해석(이를 위해 청구권협정의 전 체결과정, 협상 과정에서 당사국의 입장 및 태도, 협정 체결 후 한일 양국이 보여준 추후 관행 등을 검토하게 된다), ②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및 한국 정부 조치(특히 강제집행)의 청구권협정 저촉(국제의무 위반) 여부, ③ 일본 정부가 취하는 대응조치의 당부(當否) 등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중재판정 또는 사법적 판결)은 양국 정부가 준수할 의무가 있다. 청구권협정 해석 문제가 국제분쟁처리기관에 회부될 경우 최종 결정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란 보장은 없다.

외교적 사안에 대한 사법부와 행정부 간 의견 교환의 필요성

여기서 2012년 ‘국가의 관할권 면제에 관한 독일 대 이탈리아 사건(일명 Ferrni 사건)’에서 ICJ가 내린 판결을 소개하기로 한다. 2008년 10월 이탈리아 대법원은 1947년과 1961년 양국 간의 조약에 따라 이뤄진 배상은 유대인 송환에 국한된 제한적인 수준인 만큼 이탈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나치의 주민 학살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배상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이 나오자 독일 정부는 나치가 이탈리아에서 자행한 전쟁범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지만, 금전적 배상은 1961년 조약으로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이미 마무리됐으므로 수용할 수 없다며, ICJ에 소송을 제기했다. ICJ는 이 같은 독일의 주장을 인용해, 피해자(이탈리아인)는 이탈리아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내용은 한일 간 청구권 문제와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위의 ICJ 판결이 일정한 시사점을 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은 ‘사법적극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조약 업무나 외교적 사안은 행정부의 소관 사항이므로 사법부는 보다 전문성을 가진 행정부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에 따라 재판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이를 ‘사법부 자제(Judicial Restraint)’ 원칙이라 한다. 특히 미국·영국 등에선 사법부와 행정부 간에 의견 교환 채널이 제도화되어 있다. 이는 행정부와 사법부가 다른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가 운영에 혼란을 피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국의 경우 이런 의견 교환 채널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법소극주의를 배척한 것이었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사법부와 행정부 간의 의견 교환을 불법적인 ‘재판거래’로 폄하하며 형사 처벌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제 관행에 비추어 보면, 이 같은 대응은 생소하고 불편한 점이 있다. 서구 국가들에서 사법부 자제 원칙이 확립된 것은 다 역사적 배경과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외관계와 관련 있는 대법원 판결은 국제정치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서 차제에 우리나라도 법원과 행정부 간에 조약업무 등 외교적 사안에 대한 의견 교환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의견 교환이 행정부의 의견에 반드시 구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한일 양국에는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이 7년간 열리지 않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65년 수교 후 50여년을 돌아볼 때 이런 위기와 갈등은 없었다며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성호 미래한국 편집위원·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제동원 보상은 국제재판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현재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 판결과 정부의 입장에 강력히 반발하며 마치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의 국내소송과 대법원 판결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면, 이제 국제분쟁으로 비화된 후 각국의 대응과 국제적 해결 노력은 후속편이 될 것이다. (외교적 갈등을 감수하면서) 식민지 불법지배에 대한 올바른 과거청산 및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정의 구현의 디딤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미 외교적·국제법적으로 끝난 일을 들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및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에 엄청난 걸림돌을 만들어 낸 것인지 향후 그 귀추가 주목된다.

청구권협정 해석에 관한 분쟁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어 버렸다. 애국심만으론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외교적 지혜와 치밀한 국제법적 대응, 성숙한 국민적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개인적으로는 국제중재나 국제재판까지 가지 않고 외교적으로 해결(예: 한일 양국 정부, 청구권 자금 사용 한국 기업, 강제징용자 사용 일본 기업 4자가 협력적으로 출연한 기금으로 보상하는 방안으로 타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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