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도시 생활자가 된 동식물의 진화 이야기
[리뷰]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도시 생활자가 된 동식물의 진화 이야기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2.1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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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도시를 은근히 좋아한다.“ 

저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생물학자이다. 생물학자에게 도심은 연구를 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도시는 필요악이며, 진정한 생물학자라면 도시에서는 가급적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다’는 일종의 불문율도 있다. 그들 대다수는 ‘진짜 세상은 도시를 벗어난 곳, 숲과 계곡, 들판에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연’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생물학자이면서도 순수한 자연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의 앞머리에서 그는 운을 떼자마자 자신의 은밀한 사랑에 관해 먼저 고백한다. 사실 그는 ‘도시성애자’이기도 하다. 
 

질서정연하고 번드르르한 모습, 척척 잘 돌아가는 부분보다는 도시의 때 묻고 자연스러운 부분, 기억에서 지워진 곳들, 올이 다 풀린 카펫처럼 해어진 곳, 인공물과 자연물이 만나 생태학적인 관계를 맺는 도시의 취약한 부분이 좋다. 생물학자의 눈으로 볼 때 도심의 혼잡함과 부산스러움, 그리고 철저히 부자연스러운 겉모습은 수많은 생태계가 모인 축소판 같다. (본문 9쪽) 

이런 그의 눈에 ‘도시 생활자가 된 동식물’이 포착됐다. 도시에 터전을 마련한 각종 새와 작은 포유류, 곤충, 식물이 우리의 우려와 달리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며 순조롭게 번식하고 있다면? 그들을 살아남게 한 진화의 힘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처음에는 분명 낯설었을 도시라는 세계에 적응하기까지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는지, 저자는 자연의 여러 개체들과 그들이 놓인 환경의 변화를 면밀히 추적해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인간과 공생하는 동물, 그리고 인간이 만든 생태계에서 이들이 찾아낸 서식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전 지구적인 도시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어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이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다. 


자연에 관해 논할 때 우리는 보통 ‘인간’ 혹은 ‘인위적인 요소’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한, 청정하고 고유한 환경을 떠올린다. 저자는 먼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미 이야기를 꺼낸다. 개미는 환경에서 얻은 물질로 집을 짓고 그 점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개미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 쓰는 일개미들은 주변에서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공수해 온다. 물론 사람도 그렇게 한다. 식량과 주거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개미의 서식지는 계속 확장되고 번성한다. 인간의 도시도 마찬가지다. 개미 사회가 커질수록 해당 지역에는 변화가 생기고, 주위에 살던 다른 곤충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생존 기술을 익혀 개미 사회에 흡수되기도 한다. (이런 곤충을 ‘개미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미 사회나 먹이사슬 전체에서 개미의 역할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활동은 자연을 파괴하고 먹이사슬을 훼손한다고만 여긴다. 우리가 ‘도시 생활자로서의 자연’을 이해하고 공생하려면, 이 관점부터 리셋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을 이야기할 때 왜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인간을 배제하려고 할까? 저 멀리 나무에 매달린 개미집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왜 인간이 만든 도시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까? 개미가 열대우림에서 발휘하는 생태학적인 기능에는 찬사를 보내면서 인간이 풍경을 지배하는 방식에는 왜 혐오감을 드러낼까?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 (본문 35-36쪽) 

런던 지하철역 터널 안에 사는 모기와 개미집에 얹혀사는 딱정벌레를 비롯하여 집까마귀, 집참새, 검은머리물떼새, 나방, 도마뱀, 앵무새, 쥐, 까마귀, 비둘기 등의 도시 속 진화 이야기는 하나하나 흥미롭다. 때때로 이들은 오히려 인간이 의도치 않게 제공한 것들을 활용하여 기회로 삼는다. 살아남기 위해 자연은 가능한 한 변화하고 적응한다. 하지만 생존한 개체들은 저마다 다른 서사를 가진다. 이들을 진화하도록 이끈 요인, 변수의 영향, 발현되는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업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앞으로 더욱 풍부한 도시 생태계를 가꾸기 위한 인간의 임무에 대해 힘주어 말한다. 우선 생물의 진화를 고려한 도시 설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정원사처럼 굴지 말고, 조경하듯 생물 종을 선별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채워지도록 그냥 내버려 둘 것’, ‘생물 종을 토종과 외래종으로 구분하여 무조건 외래종을 배척하거나 토종을 고집하지 말 것’, ‘굳이 통로를 만들어 도시 내 자연을 연결하기 보다는 차라리 곳곳에 특색 있는 환경이 유지되도록 제대로 분리할 것’ 등 현재 생태학적 도시 설계에 바탕이 되는 신조와는 다소 어긋나 보이는 제안들이다. 제도적인 부분이기에 삽시간에 개선되기는 어렵겠지만 반드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각종 진화 양상을 관찰하는 데 도시민의 관심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인상 깊다. 실제로 일본의 자연 복원 사업의 일부인 도시 농업에는 60대 이상 노인 인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스네일스냅(Snailsnap)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는 네덜란드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팽이 사진을 업로드할 수 있는데, 연구진은 이렇게 수집된 수천 장의 사진을 분석하여 도심에 사는 달팽이의 진화 방향을 조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누구나 시민 과학자가 되어 생태 도시를 위한 연구에 일조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 진화 관찰단’이 형성된다면, 모든 도시의 생태계에서 나타나는 다윈설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위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음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을 주저앉히기보다는 일어서서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도시 진화를 관찰하고 모니터링하고 파악함으로써 진화 과정을 촉진하고 조정하도록 도시환경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인간이 가진 생태계 엔지니어로서의 기능을 엔지니어링할 수 있다.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생물들을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방법 대신 친환경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다윈의 법칙을 적용하고 더욱 건설적인 방식으로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본문 314쪽)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를 다 읽고 나면, 뻔뻔히 인도를 차지한 비둘기들이 갑자기 달라 보일 것이다. 유독 칙칙한 비둘기를 발견하고는 ‘저런 새들이 말이야, 저기 서 있는 가로등에서 아연이 떨어져도 잘 견딜 수 있을 거란 말이지’ 하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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