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4일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변경 요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계처리를 바꿔 4조 5000억 원의 평가이익을 계상한 것은 회계처리기준 위반이라는 결정을 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삼성바이오에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시정 요구(재무제표 재작성), 과징금 80억 원 부과 등의 처분을 내렸다.
이어서 2018년 11월 20일에는 삼성바이오와 회계법인 2곳을 주식회사외부감사에관한법률(외감법) 및 자본시장및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 측은 이러한 처분이 부당하다는 전제하에서 행정법원에 행정처분 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최종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 줄 것을 서울행정법원에 청구했다.
이 사건은 자본시장법상의 사업보고서 허위공시에 관한 행정처분 사건으로서 법리적으로는 이러한 행정처벌 이외에도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더 나아가 증권집단소송까지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법리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법위반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처벌정도, 즉 양형의 문제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삼성바이오 뿐만 아니라 콜 옵션(call option)을 정한 합작법인 모두에게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본다.
중대한 사건인 만큼 법리적으로 충분한 검토와 합목적적인 결론이 나와야 향후 국내 바이오산업은 물론이고 국내 외국인들의 투자와 국내 노동시장의 일자리 창출, 신산업 성장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설의 오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삼성바이오 사건의 쟁점은 왜 2014년까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회계처리를 하다가 2015년에 비로소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변경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현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 기여한 시민단체들은 삼성물산의 합병과정에서 구 제일모직의 주식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이고, 반대로 합병전 삼성물산의 주식가치를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바이오를 종속회사로 회계처리했다는 것이다.
즉, 삼성바이오의 지분 43.44%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2014년까지 종속회사로 회계처리했을 당시 지분가치보다 2015년 관계회사로 회계처리한 후 4조 5000억 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익이 발생하면 일단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현 정부와 이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의 행동양식인 듯하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와 그 친성향의 시민단체들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도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했더라면 삼성물산 합병 당시 합병전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0.35주는 초과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어떠한 가설이든 다양한 시각에서의 검증이 이뤄져야 하고, 검증을 통해 사실임이 입증돼야 비로소 법적으로든 사실적으로든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친문 시민단체가 제시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삼성바이오가 최대주주로 있는 에피스의 자산가치가 2015년 이전과 이후가 같았는지를 검증해 봐야 한다.
2015년 이전의 에피스는 벤처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5년 10월 에피스가 개발한 7종의 바이오시밀러 중 자가면역질환치료제가 국내시판허가를 받았고, 2016년부터는 해외 판매가 유력했었다. 실제로 2016년 1월에는 유럽의약품청으로부터 판매승인을 받음으로써 기업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즉, 2015년 이전과 이후의 에피스의 자산가치는 크게 달랐다는 점에서 2014년 이전에도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했어야 한다는 가설은 기각되어야 한다.
친문 시민단체가 제시한 두번째 가설은 삼성바이오 측이 변경요인 없이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사와 복제약 개발기업인 에피스를 공동으로 설립하는 소위 합작법인을 설립한 바 있다.
당시 에피스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바이오젠사는 15%만 투자하고 삼성바이오가 불가피하게 85%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에피스가 성공해 회사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등 제반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가 소유한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콜 옵션(call option) 이면계약을 체결하고 에피스 주식 중 최대 49%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논 바 있었다.
즉, 에피스의 기업가치가 벤처기업으로 머물거나 하락할 경우에는 에피스가 삼성바이오의 종속회사로 남아 삼성바이오가 단독경영(종속회사)을 할 수 있지만 기업가치가 상승하면 공동경영(관계회사)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에피스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가능성이 높아졌고 단독지배에서 공동지배로 전환하게 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회계처리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그 후에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변경요인 없이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는 가설 역시 기각되어야 한다.
세 번째 가설은 삼성바이오가 자의적으로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는 국내 3대 회계법인 (삼일, 안진, 삼정)의 자문을 받아 회계기준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자의적인 회계기준 변경이라는 가설 역시 기각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삼성그룹의 구 미래전략실이 회계법인들을 상대로 압박 내지는 로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회계법인들의 자문자체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외부감사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자칫하면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전체 시스템을 우리 정부가 부정하는 모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속단은 금물이라고 본다. 물론, 이러한 가설은 법원에서 심리를 통해 충분히 검증작업을 거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러한 검증작업도 거치기 전에 추정만으로 행정처분명령을 무리하게 집행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치주의 훼손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분식회계와 보호법익
분식회계를 법으로 통제하는 이유는 시장에서의 사기행위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방지하고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함이다. 즉, ‘투자자 보호를 통한 자본시장의 육성’이 보호법익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시장법도 상장기업들이 사업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를 하거나 중요사항을 기재 또는 표시하지 아니한 때, 즉 사기행위를 한 경우에 과징금을 부과하고(법 제429조 제3항 제1호), 징역 등의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법 제444조 제13호).
그러나 사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허위공시라는 기망행위를 통해 피해자가 착오를 일으켜 처분행위를 했어야 하며, 그 처분행위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어야 한다(형법 347조 참조).
그러나 이번 삼성바이오 사건의 경우에는 회계기준변경 후 주가가 크게 상승해서 개개인의 주주들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즉, 주주들이 착오를 일으키도록 하고, 이로 인해 주주들이 처분케 해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위법성 조각사유인 정당행위에는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삼성바이오 측이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를 통한 허위공시라는 기망행위를 통해 주주에게 손해를 가했다고 보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과 친문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시장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법집행을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이는 불명확한 회계기준 때문에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아 작성한 회계처리가 주주들에게 손해를 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본시장 육성에 기여한 기업의 경영판단행위에 대해 행정벌과 형사벌을 가하는 것은 보호법익이 존재하지 않는 불필요한 법적용으로서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법집행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감독 당국의 신뢰 하락
이번 삼성바이오 사건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 중의 하나는 금융감독당국이 수시로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했다가, 또 상황 변화에 따라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내리는 등 법적 판단을 번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주식회사외부감사에관한법률(외감법)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해관계인의 보호, 국제적 회계처리기준과의 합치 등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4항에 따라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 법인 또는 단체(회계기준제정기관)에 회계처리기준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회계기준제정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5조 제5항).
즉,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해도 되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했을 당시 회계처리기준이 적합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다면 그 당시에 금융감독당국은 그 기준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어야 한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2016년 금감원의 위탁을 받아 삼성바이오를 감리한 한국공인회계사가 ‘회계처리는 적정했다’고 판단했고 이를 근거로 금융감독당국도 기준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금융감독당국이 2016년 기준내용의 수정을 요구했었더라면 이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2017년 이후부터 재감리에서는 과거와 다른 판단을 함으로써 금융감독당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하락한 것은 분명하며 자본시장에도 극심한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번 삼성바이오 사건은 종래의 회계기준인 미국식의 GAAP방식으로부터 유럽식 국제회계기준인 IFRS방식으로 변경해서 우리 자본시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회계기준을 정립하지 못했고 이를 법적용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초래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금융감독당국, 회사, 회계법인, 주주라는 4당사자 관계에서 그 책임을 금융감독당국은 제외하고 회사와 회계법인, 그리고 대주주는 물론이고 소액주주가 부담하는 것은 분명 공정하지 못한 법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문재인 정부는 공정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판단된다.
삼성바이오 사건은 법원으로 그 공이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즉, 사법부가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부디,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사법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